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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긴 호흡과 거시적인 안목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13-08-02 조회수465 추천수8 반대(0) 신고

긴 호흡과 거시적인 안목

 

세례자 요한의 참수 사건을 묵상하노라면 마치 흥미진진하고 드라마틱한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합니다. 그만큼 극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헤로데 왕의 생일을 맞아 호화로운 대저택은 흥겨운 잔치 분위기가 물씬 풍겼습니다. 상마다 산해진미가 가득 차려졌고 잔마다 최고급 포도주가 넘쳐흘렀습니다. 악사들의 연주소리와 무녀들의 춤사위가 어울려 한 바탕 놀자판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잔치마당 지하에 위치한 어두운 지하 감방 안에는 고독한 예언자가 홀로 웅크리고 앉아있었습니다. 멀리서부터 가느다랗게 세상 사람들의 가무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다들 노느라고 자신의 존재 자체를 잊어버렸나, 생각하는 순간 저벅저벅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이 감금된 감방 앞에서 멈췄습니다.

 

그 순간 세례자 요한의 머릿속에는 별의 별 생각이 다 지나갔겠지요. 통상 왕의 생일날 죄수들을 사면하는 관습이 있었기에, 혹시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헤로데의 생일잔치를 맞아 평소 먹는 식사와는 다른 특별한 식사라도 던져주는 것일까?

 

그러나 정작 세례자 요한에게 건네진 왕의 전갈은 특별사면이 아니라 즉결심판과 단두대 처형이었습니다. 헤로디아와 그녀의 딸의 간계에 넘어간 헤로데는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될 그릇된 결정을 내려버린 것입니다.

 

헤로데는 참으로 허풍스럽고 몹쓸 인간의 표본을 제대로 보여주었습니다. 술김에 헤로디아의 딸에게 헛된 언약을 했고, 손님들 앞에 체면치레 하느라 그 그릇된 약속을 취소도 못했습니다. 그 결과 역사에 길이 남을 돌이킬 수 없는 그릇된 결정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허약한 인간의 대표주자입니다.

 

헤로데의 옆에는 헤로디아와 그녀의 딸, 두 사악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여인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의 폐륜을 집요하게 고발하는 예언자를 제거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고야마는 악녀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의인의 억울한 죽음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헤로데와 두 여인들 주변에는 구린 잔치에 초대된 구린 이들로 가득했습니다. 구차스런 권력이나마 부여잡고 있던 헤로데였기에 그에게 빌붙어 살아가려는 속물스런 인간들이었습니다. 헤로데의 결정이 그릇된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사람도 그의 결정을 중지시켜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토록 사악한 사람들 앞에 한 의인이 고독하게 서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헤로데의 불륜 앞에 쉬쉬하고 있었지만 오직 한 사람 세례자 요한만은 입을 다물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사명과 양심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목소리의 톤을 낮추지 않았습니다.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참수 사건 앞에서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정의의 하느님, 진리의 하느님께서 어떻게 이토록 큰 불의 앞에 침묵하고 계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홀로 억울한 죽임을 당하는 순간, 살인자들은 아무런 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희희낙락하며 즐겼습니다. 이 부당함, 이 불평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런 일은 오늘 우리들 가운데서도 비일비재합니다. 폭력이 합법을 이깁니다. 악당들이 선량한 사람들을 짓밟습니다. 순결이 불순함으로부터 조롱을 당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하느님의 시계는 완전히 멈춰버린 듯합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보다 긴 호흡이며 거시적인 안목입니다. 불완전한 이 지상에서 완전함을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의인들과 착한 사람들에게는 정말 억울한 일이겠지만 이 세상이 아니라 주님의 나라에 가서야만 진정한 정의와 평화가 완결됩니다. 거기 도착해야 진정 꼴찌가 첫째가 되고 첫째가 꼴찌가 됩니다. 거기에서야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진리가 실현됩니다.

 

헤로데의 생일잔치 자리에서 끔찍한 죽임을 당한 세례자 요한의 모습은 이 세상 현세 안에서 그리스도교가 성공하고 승리할 것을 믿은 사람들에게 큰 실망과 좌절을 안겨다주었습니다.

 

우리도 이 현세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면 결국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또 다른 실망과 좌절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두운 지하 감방의 처절한 고독 가운데서도 끝까지 하느님과 신념을 굽히지 않는 세례자 요한의 당당함입니다. 세상의 불의와 모순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하느님의 뜻을 추구하는 불굴의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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