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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08 조회수514 추천수2 반대(0) 신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1, 1-17)

-유 광수신부-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족보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역대 상 1장에서는 아담과 아브라함의 족보가  2장에서는 유다의 족보가 3장에서는 다윗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다. 룻기 4, 18- 22에서는 베레스의 족보가 기록.  마태오는 구약성서에서 영감을 받아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하였다.

 

왜 마태오는 구약성서를 바탕으로 기술하였는가?
구약의 예언의 말씀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는가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아브라함에서부터 예수에 이르기까지의 족보는 상당히 중요하다. 그것은 하느님이 역사 안에서 구원의 손길을 펼치시겠다고 나서신 그 순간에서부터 구원의 역사 안에서 이루시는 모든 사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고 예수 안에서 성취된다는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서 마태오가 구약 성서를 인용한 것이다. 즉 구약의 구원의 역사가 예수에 의해서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마태오 독자들은 유다인 신앙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한 사람들이다. 유다인 신앙이란 율법에 충실하고 야훼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구원의 긴 역사 안에서 선민의식을 갖고 있고 그래서 구원은 자기들 안에서 완성될 것이라는 것을 믿었던 사람들이다. 그 구원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완성되었고 성취되었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 과거의 역사를 나열시킨 것이다.

 

인류 역사는 야훼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생명의 근원이 하느님께 있다. 아브라함에게 모래알 보다 더 많은 후손을 약속하셨다. 신앙의 아버지에게 언약된 것이 다윗 왕 시대에 구체화 되었고 예수에 의해 성취되었다. 이 역사 이외에 인류 역사 안에 존재하는 다른 구원의 역사는 없다. 긍극적으로 전해주고자 하는 역사는 아브라함의 언약에서 시작하여 다윗에서 번창하고 예수에 의해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족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게네시스"라고 하고 그 뜻은 창조, 기원이라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예수님에 의해 시작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라 붙인 것은 예수의 메시아 성에 대한 신앙고백을 이끌어 내고자 하는 것이 마태오의 의도이다.
사무 하 7, 8-16절에 나단 예언이 있다.  아브라함의 신앙의 역사를 완성하실 분은 바로 예수 메시아이시라는 것이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은 역사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개체적인 것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 이 세상에 하느님이 보내신 메시아이시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1,1절에서 신앙고백이 이루워 지고 있다. 2-16절까지는 예수님이 어떤 혈통 안에서 태어나셨는가를 밝히고 있다. 즉 예수는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요, 하느님이 파견하신 메시아이시라는 것이다. 예수님이야 말로 이스라엘 역사의 종착지이고 이스라엘 역사를 완성시키신 분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초기 그리스도인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고 본질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유다인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고 자기들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태오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십자가에 처형당하신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시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유다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가 크리스챤 공동체에 들어오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긴 역사가 예수 안에서 완성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고 이것을 끊임없이 고백해야 했었다. 예수야 말로 메시아이시라는 것을 고백하게 하기 위해서 족보를 제시해 주고 있다.

 

족보 전체를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 역사를 보는 것이다. 우상을 숭배하고 하느님께 불충했고 윤리적으로 문란한 것이 이스라엘 역사이다. 족보에 나오는 사람들이 다 거기에 있었다. 아담 이후에 우리가 살아 온 역사는 우상숭배, 복수, 불충 등이 뒤범벅이 된 역사이다.

마태오 복음은 그러한 역사를 족보라는 형태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역사가 예수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예수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지상에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이러한 모든 것을 짊어지고 인류의 역사 안에 함께 하시는 분으로서 우리에게 오신다. 바로 이것이 하느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가장 큰 사랑이라는 것이다. 하느님은 이렇게 투쟁의 역사, 불안의 역사를 살아 온 인류 공동체 일원으로서 우리에게 들어오신다.
그리스도는 별개의 세계에 사시는 분이 아니고 우리 인간 조건 속에 그대로 들어오신다. 예수님의 역사가 구체적인 역사에서 실현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하느님의 사랑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표명되고 있다.
 
마태오는 창세기와 같이 예수의 기원을 묘사하려고 하였다. 예수의 탄생은 또 하나의 새 창조이기 때문이다.  창세기에 보면 하늘과 땅의 기원과 아담의 기원이 기록되어 있듯이 마태오도 예수의 기원을 전한다.

1장은 예수님의 인간적인 기원과 신적인 기원을 제시해주고 있다. 즉 육적으로는 다윗의 아들이라는 것과 신적으로는 성령으로 태어나신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이다.(18- 25)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서 하느님은 인간의 역사 속에 들어오시고 하느님의 역사 속에 인간이 들어간다.

 

마태오 복음서는 위대한 세 사람의 이름 즉 아브라함, 다윗, 예수님의 이름으로 시작된다. 아브라함은 성소의 인간이며 약속과 신앙의 인간이자 믿는 이들의 조상이다. 다윗의 군대는 주님의 이름으로 성전을 치뤘고 예루살렘을 성도로 하는 찬란한 왕국을 건립했다. 예수님은 이 두 사람의 종합이다. 즉 예수님은 하느님으로부터 특별히 불림을 받으신 분으로 온갖 약속의 실현자이시며 신앙의 세계를 가져오는 분이시다. 하느님을 믿는 이들로 이루어진 하느님의 새 백성을 창건하신다. 다윗처럼 예수님은 하느님의 모든 영적 원수들을 쳐 이기시는 분이고, 새로운 예루살렘을 창립하시고 하느님의 영적 왕국을 세우시는 분이시다. 
아브라함은 축복의 상징이고( 복을 빌어 주는 이름) 아브라함의 이름을 특기한 것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전 인류에 대한 축복이 그리스도에 의해서 부여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갈라 3, 16)

마태오는 14세대가 3번이나 되풀이 되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메시아의 재림은 이스라엘의 몰락을 상관하지 않으며, 하느님의 나라는 준비 불충분 여하를 막론하고 이루어 진다.
족보 안에는 바빌론의 유배에 관한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모든 희망의 단절과 온갖 활동의 패망을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주 하느님과의 유대관계가 끊겼지만 주님께서는 언제나 또 다시 유대 관계를 이어 놓으신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충실하지 않을 때도 성실하셨다. 이 연속은 세대의 교체는 주님의 메시지가 이루어지기를, 하느님의 햇불이 그리스도 안에서 빛을 발하며 영원히 찬란하게 빛나기를 준비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바빌론 유배시의 가장 비참한 시기에도 예언자들은 새로운 예루살렘의 건립과 새로운 성전, 하느님의 새로운 왕국의 건립을 예언하였다. 희망은 사라지지 않았고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광휘가 빛을 잃고 위대함이 사라지는 바로 그때에 하느님의 말씀은 이루어졌다. 예수님은 메시아이시고 희망이시며 약속을 이루시는 분이시고 이스라엘의 꿈이요, 이스라엘의 진리이시기 때문이다.

 

무미건조한 이 족보는 강렬한 빛을 내면서 이제 최초의 기쁜 소식을 전한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죄와 잘못에 빠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라는 인성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신다는 것이다. 어떠한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하느님은 인간을 사용하시고 이용하시는 것이다. 어두운 과거가 하느님을 제어하지 못하고 인간의 무능력이 방해가 되지 않는다. 작은 것은 모두 위대한 것 안에 흡수되고 불순한 것이 모두 순결의 기초가 된다. 또한 천하고 인간적인 것이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천상적인 것이 되며 주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으신 분이요, 기름 바름을 받으신 그분을 통해 하느님께 속하게 된다.  

 

이제는 모든 인류의 구원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지고 완성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신앙의 기원은 아브라함도 아니고 다윗 아닌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의 기원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되고 완성되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시작이시고 마침이시며, 알파요 오메가이시기 때문이다.

 

비록 나의 구원의 역사가 항상 착하고 거룩하게 살아온 역사가 아니고 때로는 죄를 짖고 악의 구렁텅이에 빠져 어둠의 세월을 보냈던 적도 있었겠지만 나를 구원하시려는 예수님의 구원의 역사는 멈추지 않으시고 한결 같으시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예수님께로 다시 돌아와 시작할 수 있고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러 오신 분이시고 바로 이런 나를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의 구원의 역사는 나에 달린 것이 아니라 나를 구원해주러 오신 그리스도에게 달려 있고 내가 그리스도의 구원 열차에 동승할 때만이 구원을 완성시킬 수 있다.

 

오늘도 나를 구원하러 오시는 주님을 받아들이고 그분 안에서 나의 신앙여정이 완성될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하면서 우리의 신앙여정을 걸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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