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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관을 갖고, 열성을 갖고 사건에 성실히 임하라!!
작성자유웅열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02 조회수526 추천수8 반대(0) 신고
 

주관을 갖고, 열성을 갖고 사건에 성실히 임하라!!

(주관이 뚜렷하셨던 예수님.)


예수님은 주관이 뚜렷하셨습니다.

당시에 통용되던 억압되고 경직된 율법에만 억매이지 않고

자유롭고 힘이 넘치는 자신감을 갖고 행동하셨습니다.

그리고 뭇 남성들에게 굳센 사나이로 새로 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예수님 당시 율법에 따르면 안식일에는 생명이 위독한 경우에만

치유할 수 있고 가벼운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치유할 수 없었다.


예수님은 바리사이들의 시선에 괘념치 않으셨다.

도리어 손이 오그라든 남자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오시오”(마태3,3)라고 말씀하셨다.


구석자리에서 나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 즉 한가운데 서라는

말씀이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 떳떳이 나서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한가운데 있어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으라는

가르침이었다.  


바리사이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질문하셨다: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해야 됩니까, 악한 일을 해야 됩니까?

목숨을 구해야 합니까, 죽여야 합니까?”(마르 3,4)

굉장히 민감한  질문이었다.


말하자면 편협한 안식일 규정을 엄격하게 지키다보면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는커녕 나쁜 일을 하지 않겠느냐는 예수님의 뜻이 이 질문에

담겨 있었다.


예수님은 도리어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못 본 체 그냥 지나가는

행동은 잘못이라고 생각하셨다. 하느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알량한

명분으로 병든 사람을 도와주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면 생명을

파괴하는 것이며 생명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기여하는

것이라는 말씀이었다.


예수님은 바리사이들을 한 사람씩 모두 둘러보셨다.

바리사이들은 뒤로 물러섰다. 그들은 침묵의 벽을 치고 그 뒤로

숨었다.   


예수님은 “노기를 띠고 둘러보신 다음 그들 마음이 완고함을 슬퍼하시며”

(마르 3, 5) 바리사이들을 바라보셨다. 분노하시는 모습에서 예수님이

바리사이들과는 전혀 다른 분임을 알 수 있었다.


예수님이 자제력이 없어 화를 낸 것이 아니다. 바리사이들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들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노를 통해 표출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화난 표정으로 바리사이들을 한 사람씩 보며 말씀하셨다: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대로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당신의

문제입니다. 당신은 완고하고 무심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당신의 문제입니다. 나는 내 마음에 따라 행동합니다. 나에게 명령하려

들지 마십시오. 당신은 당신이고 나는 나입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 당신이 일일이 지시하려고 들지 마십시오.”


예수께는 병들고 기 꺾인 사람의 목숨이 당신 목숨보다 소중했다.

이 남자의 생명을 치유하기 위해 당신 생명을 건 것이다. 병든 사람의

삶을 위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내놓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주관이

뚜렷한 사나이의 위대함을 본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 생각대로 행동하신다.

결국 그 남자에게 “손을 펴시오‘하셨다. 그가 손을 펴자 손이 다시

성해졌다. 그로 말미암아 바리사이들은 그분을 죽이기로 작정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이 냉혹하고, 생명을 치유하기는커녕 죽인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바리사이들에 대해 탄식하실 때도 주관이 뚜렷했던

예수님의 면모를 볼 수 있었다. 예수님은 거침없이 말씀하신다.


입에서 말씀이 힘차게 솟구쳤다: “불행하도다. 당신네 율사와 바리사이

위선자들!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자의 뼈와 온갖 더러움이

가득 찬 회칠한 무덤과 같구려!”(마태 23, 15-27)


예수님은 듣기 좋은 말씀만 하지 않았다. 느낀 대로 말씀하셨다.

때로 그분의 말씀은 힘이 넘치고 분노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분의

분노는 개인적인 모욕감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 분노는 하느님의

모습을 왜곡하는 행위와 종교적 악습, 편협한 신앙심에 대한 거룩한

분노였다. 예수님은 사람의 내면에 있는 진리를 겉으로 드러내기 위해

충격적인 말씀으로 자극을 주신다.


여러분은 분노와 슬픔, 공격성과 다정함, 야성과 온유, 이 두면을

마음속에 다 가지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50가지 모습.

오늘의 묵상:                      안젤름 그륀 신부 지음.

어찌 보면 우리는 모두 다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자기의 삶은 자기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행복하게 살기도하고

기뻐하면서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의 눈치를 보면서 남이 좋아하는 대로만 사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단체생활에 있어서는,

공동의 목표가 있고 공동의 목표를 성취하여야 하기 때문에 각자의 취향이

다르다 하더라도 각 개인의 취향에 따르지는 않습니다. 만약에 각기 다른

취향에 따르다보면 공동의 목표를 잃어버리고 ‘배가 산으로 가는 것’이 됩니다.


모세가 우여곡절 끝에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가 되어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백성들을 40년간 광야를 끌고 다니면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데리고 가서 노예생활을 벗어버리고

자유롭고도 풍요로운 땅에서 살리라는 희망만이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는 많은 어려움을 당합니다. 물이 없어서 그리고 식량이 떨어져서

백성들이 불평하고 고통을 호소합니다. 그 때마다 모세는 하느님께

백성들의 고통을 해결해 달라고 하느님께 매달립니다.


하느님께서는 개인의 불평을 들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공동의 불평을 모세를 통하여 듣고 그 때마다 해결해주십니다.

“바위를 지팡이로 때려라! 그랬더니 물이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매일

하늘에서 쏟아지는 메추라기를 하루치만 걷어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고 이틀 치, 삼일 치를 개인의 욕심대로 걷어갔으나

결국 썩어서 하루치 이외에는 소용이 없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개인의 욕심, 곧 이기적인 것은

결코 용납되는 것이 아니다. 재물의 풍요로움이 결코 영적 이익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체험을 통해 가르쳐 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단체 안에서 개인이 부르짖고 있는 불평과 불만의 호소가

오로지 개인적인 것에서 오는 것이라면 거들떠 볼 가치가 없겠으나, 그것이

어떤 공동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좀 더 심도 있게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전능하신 하느님!


단체 생활에서 개인의 불평과 불만이

결코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면,

들어줄 가치가 있는 것이고

그 어떤 관심과 열정을 갖고 하느님께 매달려

해결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이웃의 불평과 불만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

그리하여 따뜻한 배려와 관심을 갖고 이웃의 마음을 달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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