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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01 조회수747 추천수2 반대(0) 신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회당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나서 예수님을 벼랑까지 끌고 가서는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루카 4:17-30)
 
 “인생이 살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유일한 방법은 두려워하지 않고 대담하게 살며, 자기 자신의 생각을 하고 자신의 양심에 따라 생각하고 사는 것이다. 가축 떼는 자신이 즐기는 곳이나 즐거워할 때 풀을 뜯어 먹고 뛰논다. 그러나 대담하게 사는 사람이라도 자신이 혼자라는 것을 알게 될 때에만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하고 작가 레이몬드 포스딕(Raymond Fosdick)이 말했다.
 
 우리들은 여론에 따라 살고 있는가 아니면 자신의 양심에 따라 살고 있는가?
아테네의 철학자 모리스 멀로우-폰티(Maurice Merleau-Ponty)는 신을 믿지 않았다. 그는 그 이유를 애매함은 우리들 존재 안에 있는 기본적으로 현상학적인 사실이며 신을 믿는 것은 그 경험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추상적으로 한 이 말은 우리 모두 경험하는 것 즉 인생은 너무나 혼란스러워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른바 우리들은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를 돌보아주는 전지전능한 신이 정말 있는지 의심을 하면서 살도록 내버려두었다는 사실만 보아도 너무나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아무도 더럽혀지지 않고 고통을 겪지 않고 혼란을 느끼지 않고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무균상태로 인생을 사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나는 멀로우-폰티와 달리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신을 믿는다.
인생은 불확실하지만 그것이 엄연한 현실이며 그렇다고 우리가 인생을 마음대로 주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고장이 없이 아주 정확하게 똑딱거리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스위스 시계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생활이 질서 정연한 시계와 같은 것이다. 우리들은 혼란 없이 복잡함 없이 육체적 정신적 고통 없이는 살 수 없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시작된다. 출생은 고통을 수반하고 많은 사람들이 관여하게 하고 사람들의 삶을 복잡하게 만드는 한 혼란스러운 과정이다. 사는 것도 그렇다.
 
 일, 상호관계, 사랑, 성(性), 우정, 늙어감 등 모든 것이 복잡하고, 실제적이고, 혼란스러운 일이며 항상 고통, 자질구레한 문제들, 한계, 타협과 파멸로 가득 차 있다. 또 기쁨과 의미있는 일로 가득 차 있기도 하지만 이들만이 주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게다가 아무도 존엄성이 없고, 자유가 없고, 억제하고 있는 꿈이 없는 사람은 없다. 아무 고생 없이 순탄하게 살 수 있는 길은 없다.
 우리들의 세례복의 순백(純白), 우리들 몸과 마음의 순수함, 우리들 젊음의 신선함은 살아가면서 더러워지고 삶의 자국이 남는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홉킨스(Gerald Manley Hopkins)의 말이 과거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다.
 
 “그리고 모두 생업으로 더럽혀 지고; 고생으로 더러워지고;
 또 사람의 더러움을 묻혀져 있고 사람의 냄새가 배어 있고; 땅에는….”
 
 혼란스러움은 가끔 우리들을 낙심하게 하고 의문을 갖게 한다. 더욱더 심각한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절망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절망을 간단히 말하면 모든 절망이 그러하지만 ‘모든 것이 더럽혀지지 않으면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것으로 사람들은 절망을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러한 마음 가짐은 바이러스 같이 전염력이 강하고 치명적이다. 아마 어른들이 직면하는 가장 나쁜 유혹인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우리는 자기자신을 배반하고, 포기하고, 존엄성과 꿈을 내동댕이쳐버리고, 잠시만이라도 안정을 취하려고 한다. 이 한 요인이 무신앙, 성적인 무책임, 불신의 뿌리인 것 같다.
 
 우리들이 멀로우-폰티 같이 존엄성과 꿈을 팔아버리면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우리들이 낮은 자리를 고집할 때 천상(天上)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인생이 혼란스럽기 때문에 무균상태로 살고 싶은 충동도 느끼게 된다. 아무도 상처를 받지 않고, 무시당하지 않고, 혼란을 느끼지 않고 혼란 때문에 곤혹을 치르지 않으면, 또 물들지 않으면 깊게 사랑하면서 살 수 없으므로 깊게 사랑하면서 살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긴장 속에서 살려고 하지 않고 골치 아픈 것을 싫어하고 철학책보다는 만화책을 좋아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깊이 상처를 받을 수 있는 또는 치료될 수 있는 것을 피하려고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인생을 더럽혀지지 않고 냄새도 나지 않고 생명도 없고 의미도 없는 인조장미 같이 무균의 깨끗한 삶을 살려고 한다. 세상에 물들지 않고 독야청청하게 살려고 한다. 우리는 자기가 서 있는 자리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자유롭게 하늘을 떠 다니고 시간과 살의 제한을 받지 않는 천사가 아니다. 우리들의 영혼은 땅과 고통과 피와 냄새가 배인 채 육화되었다. 우리는 절대로 천사가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인조 장미가 가질 수 없는 진짜 장미의 존엄성으로 살아야 한다.
 
 피터 마인케(Petar Meinke)는 인조장미를 발명한 사람의 죽음을 기리며 시를 썼다.
"인조장미를 발명한 사람은 그의 상표를 갖고 죽었다.
흠집 없고 죽지 않고 활짝 피어 있기만 하지만
어둠 속에서도 그 꿋꿋함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하늘처럼 부드럽게 우리들 마음을 바구니에 담고
우리들을 연약한 시간의 실로 묶는
그 아름다운 꽃을 그는 모른다.
꽃은 시들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말라 죽지 않는 아름다움은
거짓 숲이 있는 메마르고 불임의 버려진 무대.
그러나 결과는 발명한 이 남자를 지지한다.
그는 그의 나이를 알았다.
우리들의 눈물 없는 시대는 열리고
인조 인간은 인조장미의 냄새를 맡는다."(Ladies Home Journal, 1964)
  (롤하이저 신부님의 묵상글에서 발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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