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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 [김상조 신부님]
작성자김광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08 조회수630 추천수7 반대(0) 신고

 

 

2002년 대구지하철 참사가 나던 날,
대구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족들에게 안부 전화를 했을 것이다.
설마 내 가족이 사고현장에 없길 바라면서...

전화를 했는데 연결되지 않으면 은근히 걱정되고,
계속 전화기가 꺼져 있으면 저도 모르게 기도 손이 모아질 것이다.
제발...

베이징 올림픽 야구 결승전 9회말
3:2로 앞선 가운데 상대팀은 원 아웃에 만루 상태에서
한 방만 제대로 맞으면 동점 내지 역전 당하는 절대절명의 상황,
그 때 긴장하지 않은 사람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천주교 신자들이라면 모두 속으로 예수님, 성모님 하고 기도했을 것이다.

정말 기도가 절로 나오는 때가 있다.
그 때는 아마도 아주 절망적인 상황이거나
혹은 아주 간절히 무언가를 갈망할 때일 것이다.
절망과 갈망은 그래서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절망을 뒤집으면 그 뒤에 강렬한 욕구가 깔려 있고,
갈망을 뒤집으면 그 뒤에는 남모르는 절망적인 상황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가끔 병원에 가는 경우가 있다.
병실마다 누워계신 분들을 보면 건강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부디 큰 병에 걸리지 않게 해 주십시오 하고 저절로 기도하게 된다.
길 가다가 졸지에 강도에게 칼 맞을 수도 있고,
미국의 어느 대학처럼 총알 세례를 받고 황천으로 떠나는 영혼도 있는데
나라고 해서 그런 일 당하지 말란 법 없으니,
하루 하루가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느 정도 자기 몸에 이상이 있단걸 느끼며 살아간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료받기를 미루거나 회피한다.
아직 절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 어떤 공동체든지 그 속에는 늘 분란을 일으키고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럴 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충고하거나 꾸짖기를 회피하거나 미룬다.
그에 대한 갈망이 없기 때문이다.
그에게 더 무엇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녀들이 잘못해도 꾸짖지 않는 것은
자녀에게 관심이 없다는 뜻이고 기대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본당에서도 전례 때 늦게 들어오거나,
복장이 미사예절에 어긋나거나,
성전안 팎에서 큰 소리로 이야기해도 누구 하나 충고하지 않는다면,
그 만큼 본당에 기대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정말 그렇게 되어서는 안된다.
단체 활동에 충실하지 않으면 서로 충실하도록 충고하고
성당일에 함께 하자고 손을 잡아 끌어야 한다.
그것을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형제가 너에게 잘못하면 찾아가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형제를 꾸짖고 충고하는 것은 절망감이 들기 때문이다.
절망하지 않기 위해서, 잘못된 것이 있어도 그냥 지나치지 않기 위해서,
한 사람이라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충고하고 꾸짖는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예수님도 함께 있다.”

예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둘 이상 같이 하기를 바라신다.
절망도 함께 하고 갈망도 함께 하길 바라신다.
그래야만 절망의 깊이는 얇아지고 갈망의 깊이는 더 깊어지기 때문이다.
실망스런 일도 같이 공감하는 사람이 있으면 견디기가 훨씬 쉽고,
기쁜 일도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두 배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선교는 “함께 가자”는 것이다.
노래가 생각난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도 어기여차 넘어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도 어기여차 건너주자♪♬, 는 가사처럼
높은 산과 파도는 우리에게 넘기 어렵다는 절망감을 안겨주지만
함께 넘겨주고 건네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그 희망은 “하늘에 마련되어 있는 것에 대한 희망”(골로1,5)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은 “재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것이다.
신앙생활은 하늘에 재물을 쌓는 것이다.
물론 신앙이 가져다 주는 재물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하늘나라의 어딘가에,
곧 나만의 장소에 차곡 차곡 쌓이고 있다.
그런 하늘나라 재물을 저 혼자만 쌓겠다고 하면
하느님이 허락지 않으실 것이고,
그렇게 쌓아둔 재물은 하늘나라에서도 썩어버리고 말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두 사람이든 세 사람이든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면 언제든지
그곳에 예수님이 계시게 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알아들어야 한다.
하늘나라는 저 혼자 가는 곳이 아니다.
혼자 가면 왜 너만 오냐고 하느님이 돌려보내실 것이다.
그러니 선교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 혼자서는 결코 하느님을 만날 수 없다는 뜻으로만 알아들어서는 곤란하다.
예수님도 늘 가난하고 보잘것 없는 군중들 사이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계셨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혼자 고독하게 아버지께 기도하고 외롭게 십자가의 길을 가셨다.
기도와 단식에 대해서도 골방에서 기도하고 단식한다는 표를 내지 말라고 하셨다.

신앙생활은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함께 모여서 하는 것이지만,
그렇게 하면서도 각자는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내공을 쌓아야 한다.
“새벽기도에 나가니 참 좋더라 너도 갈래?,
성경학교에 나가니 배울 것이 너무 많더라 같이 가자!,
ME 모임에 나갔더니 내가 정말 결혼을 잘 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 너도 한 번 가봐!,
반 모임에 가니 서로 사는 것이 비슷 비슷해서 정말 위로가 되더라 너도 나와라,
내가 레지오 활동을 안 했더라면 묵주기도가 뭔지도 몰랐을거야!”, 등등
각자 나름대로 수련한 신앙 내공을 서로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함께 있는 그곳에 예수님도 계시고
하늘나라는 그렇게 함께 손잡고 오는 사람들에게 열려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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