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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늘나라 공동체" - 9.7,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07 조회수512 추천수3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8.9.7 연중 제23주일                                              
에제33,7-9 로마13,8-10 마태18,15-20

                                                        
 
 
 
"하늘나라 공동체"
 


“주님의 모든 업적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영원히 주님을 찬송하고 찬미들 하라.”

오늘 주일 아침 공동성무일도 시편 기도는
온통 ‘주님을 찬미하라’였습니다.

아침 일찍 배 밭 곳곳에서 피어난 야생화들,
연노랑 달맞이꽃들, 남보라 달개비 꽃들,
모두가 침묵 중에 주님을 찬미합니다.
 
하느님 사랑은 저절로 하느님 찬미로 표현되고,
우리 마음은 하느님께로 업그레이드되어 꽃처럼 활짝 피어납니다.
 
사막 같은 수도원에 사막의 꽃 같은 공동시편기도시간입니다.

어디 수도원만 사막입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 함께 해도 여전히 외롭고 쓸쓸한 사막입니다.
이래서 공동기도입니다.
세상 사막에서 꽃처럼 활짝 피어나는 공동미사시간입니다.
 
수도 영성이 보편화되는 시대에,
사막 같은 공동체에서 꽃처럼 피어나는 공동기도가
공동체를,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사막을 서서히 낙원으로 바꿉니다.
하늘나라 낙원 공동체,
바로 지금 사막 세상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언젠가가 아닌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하늘나라 공동체입니다.


함께 기도할 때 하늘나라 공동체입니다.

싫든 좋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 끊임없이, 규칙적으로 바치는 공동기도가 제일입니다.
 
기분이나 감정에 좌우되지 않고
항구한 의지적 노력을 필요로 하는 기도입니다.
 
주님 역시 함께 기도를 강력히 권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일치에 함께 기도하는 것보다 더 좋은 수행은 없습니다.
마음을 모아 기도하면 더욱 좋고
마음이 모아지지 않아도 꾸준히 함께 기도하다 보면
마음도 하나로 모아지기 마련입니다.
 
서로 간 땅에서 맺혔던 마음도 풀어져 하늘에서도 풀리게 되고,
어지러웠던 마음도 정리 정화되고 마음의 상처도 치유됩니다.
 
함께 계신 주님의 은총입니다.
여기 수도원에서 다 다른 수도자들이 함께 살 수 있는 것도
순전히 공동기도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서로 사랑할 때 하늘나라 공동체입니다.

기도 다음에 사랑입니다.
기도는 사랑의 샘입니다.
 
기도할 때 사랑의 샘 하느님께 연결됩니다.
기도할 때 샘솟는 사랑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사랑도 메마릅니다.
하여 하느님은 사랑이라 정의하지 않습니까?

사랑은 우리의 존재이유이자 삶의 의미입니다.
대부분의 병은 사랑 결핍에서 기인하기에
만병통치약은 사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랑할 때 충만한 존재, 넘치는 생명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그러나 저절로 사랑이 아닙니다.
기도는 물론이고 노력해야 하는 사랑입니다.

저절로 좋아지는 사랑이 아니라 노력해야 하는 사랑입니다.
 
농사 이치와 똑 같습니다.
심어 놓고 방치하면 채소농사는 폐농입니다.
 
꾸준히 정성을 다해 가꾸고 돌볼 때 탐스러운 사랑덩어리 채소이듯,
끊임없이 돌보고 가꾸는, 노력하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이 사랑 공부의 노력은 끝이 없습니다.
 
누구나의 마음속에 하느님 심어주신 사랑입니다.
사랑 받고 사랑 하고 싶은 누구나의 본능이요,
이 사랑이 꽃처럼 피어나야 비로소 자아실현이요 정체성의 확립입니다.

모든 계명은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결국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요,
이웃을 위하는 것이 결국 자기를 위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면 이웃 역시 나를 사랑하게 되고,
이웃을 위하면 이웃 역시 나를 위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위하는
이런 견고한 공동체 아무도 다칠 수 없습니다.
 
그대로 하늘나라 공동체의 실현입니다.
 이런 하늘나라 공동체의 사랑을 목말라 하는 사막 세상의 사람들입니다.


서로 충고할 때 하늘나라 공동체입니다.

상호 교정이 없는 공동체는 약한 공동체라 합니다,
칭찬하기는 쉬워도 충고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상처 받기 쉬운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랑 없는 사감이 개입된 충고,
머리로 이해해도 심정적으로 거부하기에
아무리 옳다 하여도 효과는 기대하기 힘듭니다.

사랑에서 나온 충고가 제일이며,
이런 충고에는 누구나 귀를 기울입니다.

그러니 충고 이전에 사랑의 내공을 쌓아 놓은 게 지혜입니다.
사실 충고도 사랑하는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할 때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상호교정이 없는 사랑, 참 사랑이라 할 수 없습니다.
 
형제들의 잘못을 말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입니다.

잘못에 대한 충고 예언자의 중요한 책임입니다.

주님께서 에제키엘 예언자에게 부여하신 직무도
바로 이런 교정의 직무였습니다.

“너 사람의 아들아,
  나는 너를 이스라엘 집안의 파수꾼으로 세운다.
  그러므로 너는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을 들을 때 마다,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해야 한다.”

이 나라의 파수꾼 역할을 해야 할,
주님을 대신하여 경고해야 할 교회가 침묵하고 있다면
나라나 교회에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공동체에도 이런 선의의 예언자가 필요로 합니다.
 
예수님 역시 상호교정의 의무를 우리 모두에게 부여하십니다.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 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는 것이다.”

공동체에 떠벌이지 말고
조용히 단 둘이 만나 해결을 보라는 주님의 지혜로운 조언입니다.
 
점차 어른들이 사라져가는 권위 부재의 시대일수록
진정한 충고를 목말라하는 사람들입니다.
 
서로 상호교정이 잘 이루어지는 겸손한 공동체,
그대로 이 땅에서 실현되는 하늘나라 공동체입니다.


수도공동체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원형과 같습니다.

그 무슨 형태는 공동체에 몸담고 있는 우리들이요,
이 공동체를 떠나 살 수 없는 우리들입니다.
 
그러니 내 가장 가까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함께 기도하십시오.
서로 사랑하십시오.
서로 충고하십시오,
기도할 때 샘솟는 사랑이요,
사랑할 때 비로소 효과적인 충고입니다.

함께 기도하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충고하는 공동체가
바로 하늘나라 공동체요,
우리 수도공동체는 물론
믿는 모든 이들의 공동체가 지향해야할 이상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주님은 이런 기도의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 충고의 공동체를
이루어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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