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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9월, 은총입니다 ... 차동엽 신부님 **
작성자이은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07 조회수932 추천수4 반대(0) 신고

 

 

 

은총입니다

  그대여, 하루 아침에 문득 가을이 다가왔습니다. 이번 여름은 참으로 지리했습니다. 그간 강렬한 태양열을 받아 속 차게 영글어가는 알곡들이 제법 의젓해 보입니다. 축복입니다. 상실도 있었고, 아픔도 있었고, 슬픔도 있었지만, 여전히 찬란한 은총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묘하신 주님의 손길을 볼 수 있기 까닭입니다. 


  며칠 전 춘천교구 교구장이신 장 익 주교님께서 책 한 권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책 제목이 <하느님, 참 묘하셔라>(이미화 옮김, 분도출판사)였는데 저자인 고하퐁 수녀의 서문 첫 줄이 제 가슴 속에 빨려 들어왔습니다.


  “‘묘妙함’이란 … 신묘神妙, 기묘奇妙도 말하고, 현묘玄妙·오묘奧妙도 뜻하며 나아가서 미묘美妙·교묘巧妙로도 통합니다. 하느님의 ‘묘하심’은 이 모든 것을 포함하면서 또 이 모든 것을 초월하기도 합니다.”


  그래요. ‘묘하신’ 주님이십니다. 고통 속에서도 기묘·오묘하게 섭리하시고, 대자연의 운행 가운데에서도 신묘·현묘하게 작용하시고, 모기 소리만한 우리의 신음에도 미묘·교묘하게 응답해 주시니 말이예요.


  이러하신 하느님이시거늘 우리는 그동안 눈 멀고 마음 닫혀서 까맣게 모르고 지내왔던 것인지도 몰라요. 하긴 제가 존경해 마지않던 구상 선생님께서도 만년에 가서야 ‘은총에 눈이 떴다’고 고백하셨으니 말이예요.


  사랑하는 그대여, 이왕에 말이 나왔으니 그의 고백시 <은총에 눈을 뜨니> 전문(全文)을 그대에게 선물하고 싶어요. 한 마디 한 마디가 사연이 담긴 진솔한 심경의 토로이니 부디 입술과 마음으로 음미해 보세요.

 

이제사 비로소 / 두 이레 강아지만큼 / 은총에 눈이 뜬다.

이제까지 시들하던 만물만상이 / 저마다 신령한 빛을 뿜고 / 그렇듯 안타까움과 슬픔이던 / 나고 죽고 그 덧없음이 / 모두가 영원의 한 모습일 뿐이다.

 

이제야 하늘이 새와 꽃만을 / 먹이고 입히시는 것이 아니라 / 나를 공으로 기르고 살리심을 / 눈물로써 감사하노라.

아침이면 해가 동쪽에서 뜨고 / 저녁이면 해가 서쪽으로 지고 / 때를 넘기면 배가 고프기는 / 매한가지지만

출구가 없던 나의 의식(意識) 안에 / 무한한 시공이 열리며 / 모든 것이 새롭고 / 모든 것이 소중스럽고 / 모든 것이 아름답다.
(구상, 「두 이레 강아지만큼이라도 마음의 눈을 뜨게 하소서」중에서)

 

그대여, 이 가을에는 그대의 눈빛이 더욱 형형해 지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새롭게 보고, 소중하게 대하고, 아름답게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하찮게 보아왔던 들꽃 하나도 신령하게 보이게 되고, 지난날 고통투성이로 보였던 삶의 편린들에 하느님의 묘하신 축복이 깃들어 있음을 발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껏 홀로 몸부림치며 살아온 줄로만 알았던 그대의 삶을 현묘하게 부축해 오신 하느님의 동반(同伴)을 눈물로써 감사할 줄도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마침내 그대가 바오로 사도의 고백에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1코린 2,9).
그대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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