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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2 (녹) 연중 제21주일 ...독서,복음서 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8-21 조회수3,035 추천수1 반대(0) 신고

1독서<우리도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여호수아기의 말씀입니다. 24,1-2,15-17.18ㄴㄷ

그 무렵

1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수켐으로 모이게 하였다. 그가 이스라엘의 원로들과 우두머리들과 판관들과 관리들을 불러내니, 그들이 하느님 앞에 나와 섰다.

2 그러자 여호수아가 온 백성에게 말하였다.

15 “만일 주님을 섬기는 것이 눈에 거슬리면, 너희 조상들이 강 건너편에서 섬기던 신들이든, 아니면 너희가 살고 있는 이 땅 아모리족의 신들이든, 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여라. 나와 내 집안은 주님을 섬기겠다.”

 

16 그러자 백성이 대답하였다.

다른 신들을 섬기려고 주님을 저버리는 일은 결코 우리에게 없을 것입니다.

17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하면 집에서 데리고 올라오셨으며, 우리 눈앞에서 이 큰 표징들을 일으키신 분이 바로 주 우리 하느님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걸어온 그 모든 길에서, 또 우리가 지나온 그 모든 민족들 사이에서 우리를 지켜 주셨습니다.

18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여호수아는 온 백성에게, 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책하라며, 그와 그의 집안은 주님을 섬기겠다고 한다.

 

 

2독서<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 이는 큰 신비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5,21-32

형제 여러분,

21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

22 아내는 주님께 순종하듯이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23 남편은 아내의 머리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시고 그 몸의 구원자이신 것과 같습니다.

24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듯이, 아내도 모든 일에서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25 남편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26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교회를 말씀과 더불어 물로 씻어 께끗하게 하셔서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27 그리고 교회를 티나 주름 같은 것 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당신 앞에 서게 하시며, 거룩하고 흠 없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28 남편도 이렇게 아내를 제 몸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29 아무도 자기 몸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하시는 것처럼 오히려 자기 몸을 가꾸고 보팔핍니다.

30 우리는 그분 몸의 지체입니다.

31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됩니다.”

32 이는 큰 신비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두고 이 말을 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독서 주해(해제.역주 김영남 신부님)

21

이 구절은 가훈목록 전체의 제목인 셈이다. 가훈목록 내용은 신약성서 시대 유다계 그리스 세계에서 통용되던 법제와 대부분 동일하지만, 그리스도교 고유의 참신함은 종교적 동기를 강조하는 주님을 대하듯과 이와 유사한 표현들에 잘 나타난다. 당대 가족구조와 사회구조에 따라 위계질서의 원칙에서 출발하지만,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사랑의 구원행위를 행동 근거로 삼으면서 일반사회적 종속관계가 상호관용과 봉사관계로 변모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표현들: 아내와 남편의 관계에 관한 훈화에서 자주 반복되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 하시듯이...”,;“그리스도를 대하듯이 ... 주인들에게 복종하시오”. “주인 여러분, 여러분도 이와같이 그들을 대해 주시오,... 여러분도 같은 주님을 하늘에 모시고 있다는 것과 사람 차별을 하는 일이 그분에게는 없다는 것을 알아 두시오”(6.9;참조:콜로4.1).

 

22

22-32절에서는 혼인관계가 그리스도와 교회의 일치에 비유된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며, 혼인생활에서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듯이 그리스도 교회를 당신 몸처럼 사랑한다는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교회의 남편이라 불릴 수 있다. 이 표상은 이미 구약성서에서 준비되었다. 야훼와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가 부부관계에 비유되곤 한다.(호세1-3:예레2.2:에제 16.1-43).

 

에페소서에서 말하는 아내의 남편에 대한 순종은 무조건 순종이 아니다.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자기헌신적 사랑을 기준으로 삼는 남편의 사랑과 부부가 한 몸”(31)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한 순종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리스도께 속하듯이, 부부는 혼인을 통해 한 몸이 되어서로 종속되어 있다.

 

25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아내들에 대한 바로 앞 단락의 권고는 반드시 25-절 단락에서 이어 말하는 남편들에 대한 권고와 함께 알아들어야 한다. 남편에 대한 훈계가 아내에 대한 훈계보다 훨씬 길며, 그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자기 자신까지도 내어주면서 사랑하신 것처럼남편도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원문에서 25절에 나오는 그리스도께서도 교회를 사랑하시어라는 문장은 26-27절에 연달아 세 개의 목적문으로 이어지는데, 이 셋이 모두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큰 사랑과 정성으로 교횔ㄹ 위하시는지를 강조한다. 그리고 28절에 이렇게 남편들도 자기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해야 합니다라는 권고가 이어진다. 여기서 이렇게는 앞 문장들에서 묘사된 그리스도의 사랑처럼 그렇게 하라는 뜻이다.

 

2절에서처럼 25절에서도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을 말하는데, 다른 점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대상으로 교회 자체가 언급된다는 점이다. 이렇게 2절과 25절의 연관성을 고려해 보면 여기서 교회는 예수님 지상생활때의 제자 집단만이 아니라 후대의 신앙인들도 포괄한다.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사랑은 역사상 십자가 위의 죽음 때에 한정되지 않는다. 후대의 신앙인들도 세례를 통한 정화와 성화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어 그분의 사랑을 계속 받는다.

 

2절에서처럼 25절에서도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을 말하는데, 다른 점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대상으로 교회 자체가 언급된다는 점이다. 이렇게 2절과 25절의 연관성을 고려해 보면 여기서 교회는 예수님 지상생활때의 제자 집단만이 아니라 후대의 신앙인들도 포괄한다.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사랑은 역사상 십자가 위의 죽음 때에 한정되지 않는다. 후대의 신앙인들도 세셰를 통한 정화와 성화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어 그분의 사랑을 계속 받는다.

 

26

25절에 말한 그리스도 자기헌신의 목적을 밝히는 26-27절 세 개 목적절의 요점은 정화와 성화. 교회의 정화와 성화는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이루어진다. 세례를 통해 신앙인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어 이 정화와 성화에 참여한다. 정화와 성화는 세례를 암시하는 1고린 6.11에도 나란히 나온다.

 

27

교회는 그리스도에 의해 정화하고 정화한 맑고 환한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도록 늘 노력해야 한다.

5,26-27은 목욕,단장한 신부가 신랑에게 인도되는 고대 근동의 혼례 관습을 배경으로,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사랑과 정성을 신랑이 신부에게 보이는 정성과 사랑에 비유한다.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신비적 혼인에서 신부를 세례의 목욕으로 씻어주는 이는 바로 그리스도시다. 그리스도께서 몸소 당신 신부인 목욕.단장시켜 당신 앞에 청순한 모습으로 서게 하신다.

 

29

저자의 교회론적 관심이 여기 부부관계 권고에도 잘 드러난다. 골로 3,18-19에 단 두 절로 표현된 권고가 에페 5,22-33절에 겹처 이어지면서, 그리스도의 교회 사랑이 남편의 아내 사랑을 위한 기준으로 언급된다.

 

30

일부 사본들에는 여기에 그분의 살과 그분의 뼈들로 된이라는, 창세 2.23을 연상시키는 어구가 들어 있다.

31-32절에서는 창세 2장이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일치를 예언적으로 설명해 준다고 본다. 이것은 이방인 구원의 신비가 그랬던 것처럼 오랫동안 감추어져 있다가 이제 계시된 신비다. 저자에게 있어 그리스도인들 사잉의 혼인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 관계를 표징한다. 그리스도인의 혼인은 지배와 종속 관계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무상의 사랑으로 주고받는 헌신으로 해석되며 그 관계에서 각자의 역할이 해명된다.

 

31

창세 2. 24.

 

33

21절의 그리스도를 두려워하다참조.

 

 

 

 

복음<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60-69

그때에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60 말하였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6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두고 투덜거리는 것을 속으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62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63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64 그러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이며 또 당신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이다.

65 이어서 또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

 

66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67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하고 물으셨다.

68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69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서 주해(해제.역주 이영헌 신부님)

60

앞서 언급된 제자들과는 다른 차원의 제자들로서, 예수를 믿고 따르는 모든 신앙인을 가리키는 초대 그리스도인 용어다.

생명의 빵에 관한 예수의 말과 함께 성체성사에 관한 예수의 가르침을 당시 많은 그리스도인도 유다인들처럼 알아듣기 어렵다고 하여 믿음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61

예수의 계시 말씀이 믿기 어려울 만큼 마음에 걸리는지 묻는다. 예수의 계시 말씀은 믿는 자에게는 오히려 믿음을 더욱 굳게 해주지만 믿지 않는 자에게는 큰 당혹에 빠지게 한다.

 

62

문맥상 하늘에서 내려오다에 상응한다. “전에 있던 곳은 곧 하늘을 가리킨다. 사람의 아들의 고향은 하늘이고 사람의 아들은 그곳으로 다시 가야 한다는 것이 시사된다.

본다는 신앙의 눈으로 보는 것을 뜻한다(14.19 참조).

원문에는 없지만 문맥상 이런 질문 형태로 생각할 수 있다. 청중으로 하여금 예수의 인격에 대해 좀더 깊이 생각하도록 계기를 마련해 주기 때문이다. 하늘로 올라가는 사람의 아들을 신앙의 눈으로 보고 믿는 사람은 예수의 말레 걸려넘어지지않는다. 예수의 참된 신원을 알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사람의 아들이 들어높여져 영광스럽게 된다면 비로소 예수의 정체를 알 수 있다. 따라서 사람의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신앙적으로 더욱 견고케 되겠지만, 믿지 않는 사람은 더욱 불신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믿음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63

은 생명을 줄 수 있으나 은 그렇지 못함을 강조한다. 을 강조하기 위해 이 상대적으로 언급된다. 한마디로 은 생명을 주는 데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은 62절을 주고서 언급된 것이다. 하늘로 올라가는 사람의 아들은 생명의 영과 약속된 생명의 선물 및 성체성사적 선물도 주는 권능을 가지게 되지만 적 차원, 곧 지상적 지위에서는 예수는 자신이 말한 그 모든 것을 다 이룩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 소용없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예수 자신의 은 오히려 육화에서부터 십자가상 죽음의 헌신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생명을 위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상적인 영역과 천상적인 영역을 대조하기 위해 이 언급된 대목도 예수의 이런 지상적 지위와 천상적 지위를 비교하는 데 기여한다. 따라서 이 대목은 예수 자신이 천상적 사람의 아들로서 생명을 준다는 데 역점을 둔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구절은 63ㄱ절에 직결된 말이 아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야기한 말들은 제자들이 알아듣기 어렵다고 생각한 예수의 말씀을 우선적으로 가리킨다. 이런 의미는 시몬 베드로의 입을 통해서도 고백된다. 그러나 생명이란 개념을 고려한다면 이 구절은 또한 63ㄱ절과도 내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 예수의 말씀은 영과 생명을 지닌 영적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육적 말씀, 곧 인간적 말씀으로만 판단하지 않는다면, 그 말씀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도록 촉구하는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다. 믿음으로 예수의 말씀을 맏아들임은 예수의 약속을 전제한다. 아버지로부터 연유된 예수의 말씀은 하느님의 영으로 가득 차 있고 영원한 생명을 준다. 물론 그러기 이해서는 믿는 이들이 예수의 말씀안에 머물고 그 말씀을 보존하여 그 말씀의 진리로 더욱더 깊게 인도되어야 한다.

 

64

영이며 생명인 예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제자들 곧 예수의 말씀에 걸려넘어진 제자들도 있다는 사실이 예수의 입으로 증언된다. 문맥상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도록 재차 촉구한다. 이 촉구에도 불구하고 계속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로 그들의 불신 때문이며 예수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문맥상 제자들이 예수를 배신하고 유다가 예수를 넘겨주리라는 말과도 관련된다.

 

65

64ㄱ절에 연결된다. 인용된 예수의 계시 말씀은 내용상 44절과 가장 가깝다. 하느님의 은총으로서의 믿음이 특히 강조되어 있다.

 

66

이 때문에라고도 번역할 수 있다. 이 번역은 66ㄱ절을 65절에 따른 결과로 보는 것이다.

예수가 예시한 말이 이제 실제로 이루어진다. 이 사건은 예수가 열구 제자의 믿음에 대해서도 질문하는 계기가 된다. 예수 곁을 떠난 다른 제자들은 어둠 속을 거니는 자들로서 이제 더는 언급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때부터란 번역도 가능하다.

 

67

제자들이 예수 곁을 떠나간 상황에서 특히 열두 제자에게만 제기된 물음이다. 그들의 믿음을 시험해 보는 진지한 물음으로서 항구한 믿음의 격려도 내포되어 있다.

 

68

베드로가 열두 제자 대표자로 시사되는 대목은 요한복음에 더러 있다.(6.8;13.6-10.24.36;20.2 참조)

베드로가 삶의 길과 방향을 제시한다는 뜻으로서 예수를 하느님의 거룩한 분으로 믿는 고백과 연결되어 있다.

 

63ㄴ절의 내용을 이제 의식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고백이다. 열두 제자는 예수의 말씀이 어려워 알아들을 수 없다고 말한 제자들과 달리 예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믿음의 자세를 보여준다. 예수의 말씀을 다 이해할 수는 없을지라도 예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생명을 줄 수 있는 영적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그런 믿음의 자세다.

 

69

예수에 대한 시몬 베드로의 신앙고백적 칭호는 공관복음에서도 저자에 따라 각기 조금씩 다르다. “그리스도”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하느님의 그리스도그러나 예수의 메시야성을 말하는 데는 일치한다. 예수의 메시아적 칭호는 각 복음서의 깊은 신학적 이해 가운데서 사용된다. “하느님의 거룩한 분도 예수의 메시아성을 가리키는 칭호로서 그런 맥락 속에서 애해할 수 있다. 고백양식은 우선 예수의 자기계시 양식 곧 구약성서의 하느님 작계시에 따른 예수의 신적 계시 나요또는 나는 생명의 빵입니다에 상응한 것으로서 예수의

 

자기계시에 대한 응답이다. “하느님의 거룩한 분이란 말은 하느님과 가장 가까이서 함께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이 의미는 10.36에서 더욱 명확하게 설명된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거룩하게하셨고 파견된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로 칭해진다. 예수 자신도 나와 아버지는 하나입니다라고 계시한다. 그러므로 시몬 베드로의 이 메시아 고백은 예수의 자기계
시에 대한 응답으로서 신학적 해설이 가미된 내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부 사본에서는 하느님의 거룩한 분대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또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로 되어 있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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