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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9월 7일 야곱의 우물- 마태 18, 15-20 /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07 조회수532 추천수6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모든 일을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마태 18,15-­20)
 
 
 
 
마태오 18장은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위한 생활 지침을 다루고 있습니다. 공동체에는 늘 갈등과 긴장이 존재하기 마련인데, 마태오는 교회 공동체 역시 마찬가지 상황임을 전제합니다. 누구나 예외 없이 불완전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지만, 그렇다고 제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옆 사람한테 마음 쓰지 않는 개인주의자들의 나태한 공동체로 둘 수는 없습니다. 오늘 말씀은 형제에 대한 책임을 다룹니다. 그 책임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필연적인 것으로서 구속력을 지닙니다.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 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18,15). 형제에게 충고하는 것은 유다교의 오랜 전통에 따른 것입니다. 믿는 이들의 공동체에서 구성원 누구 하나 잃지 않기 위해서는 오류에 빠진 형제를 회개의 길로 초대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아마도 이 구절에서 형제가 저지른 죄란 공동체 생활을 방해하는 행위일 것입니다. 그 대상이 나라면 내가 그 형제와 이야기를 나눠야 합니다. 그에게 잘못을 지적해 줄 책임이 개인에게 있습니다. 남들 이목을 피하여 단 둘이 해결하는 것이 좋습니다. 훈계조의 설교는 사람 마음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먼저 그 형제의 입장에서 충고하되, 그의 태도가 나나 이웃에게 준 상처와 고민을 털어놓아야 합니다.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15절). 그와 나 사이에 관계가 형성된다면 나는 그를 되찾는 것이고, 그는 공동체의 친교를 다시 회복하는 것입니다.
비밀리에 형제에게 충고한 것이 실패로 돌아가면 그와 대화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16절). 신명기의 가르침대로 둘 또는 셋이 다시 함께 대화합니다. “어떤 사람이 저지르는 모든 잘못과 관련하여, 그의 어떤 죄나 잘못이든지, 증인 한 사람만으로는 그 증언이 성립되지 못하고, 증인 둘이나 셋의 증언이 있어야 유죄가 성립된다”(신명 19,15). 코린토의 그리스도인들도 이를 실천했습니다. “모든 일은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지어야 합니다”(2코린 13,1). 주변에 도움을 청하여, 사적인 견해가 아니었음을 다른 믿을 만한 형제들의 도움으로 그를 설득해야 합니다. 증인들은 잘못을 저지른 이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하도록 돕습니다.
그가 마음을 닫고 다른 사람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경우에만 공동체에게 알립니다.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17절). 이젠 공동체가 그를 책임집니다. 오로지 형제를 잃지 않기 위해서, 그를 공동체의 일원으로 다시 받아들이기 위해서입니다.
 
이쯤 되면 그가 자신의 의지대로 그러는 것인지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 드러납니다. 의도적으로 형제나 자매를 괴롭히고 공동체를 등지고자 했다면 방법이 없습니다.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이나 세리처럼 여겨라”(17절). 온 공동체가 나서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야겠지만 도무지 마음을 돌리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전체로서의 교회는 물의를 일으킨 행위가 교회의 규정과 일치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판가름합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공동체의 규범을 받아들인다면 공동체가 그를 얻는 것이지만, 규범 자체를 거부한다면 그는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해야 합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18절). 교회가 구속력 있는 판결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은, 예수님께서 교회에 위임한 이 풀고 매는 권한에서 비롯합니다. 이 전권은 베드로뿐(16,19) 아니라 교회 전체가 받았습니다.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19절). 용서하고 보류하는 권한은 기도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만 올바르게 발휘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라도 마음을 모아 죄인을 위해 기도한다면 그는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할 것입니다. 모든 것이 공동체의 기도로 가능하다는 약속입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20절). 그리스도가 현존하시는 공동체는 마태오가 소망하는 공동체입니다. 참된 공동체는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드러나시는 장이어야 합니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예수님의 영을 자신들의 인간관계에서 실현하려고 노력한다면 그 공동체는 한 사람도 잃지 않을 겁니다. 약한 이들과 못난 이들을 돌보고 잃어버린 양을 찾아가며, 죄를 지어 자신을 잃고 이웃과의 관계도 깨진 이들을 다시 얻고자 애써야 합니다. 잃은 한 영혼을 회개하도록 하느님께서 움직여 주실 것임을 기도 안에서 믿어야 합니다. 공동체가 성장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끝없는 용서입니다. 우리의 용서는 하느님의 용서와 연결됩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22절).

 
함께 사는 어려움이 나날이 더해 갑니다. 다들 너무도 잘나서인지 남들에게 지기 싫어하고 잘못을 인정하기도 싫어하며, 그러면서 남의 허물에는 앞 다투어 손가락질 삿대질을 해댑니다. 나만 옳고 남은 통째로 그르다는 자만이 하늘을 찌릅니다.
이런 우리에게 예수님은 용서와 화해를 권장하십니다. 내가 손가락질한 그 누구도 하느님의 눈길에서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아무도 내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굽어 살피심은 자만이 하늘을 찌르는 사람에게도 멈출 줄 모르십니다.
형제에 대한 책임은 하느님의 사랑과 형제를 진심으로 염려하는 마음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참된 형제애란 다른 이가 불행에 빠지는 것을 두고 보지만 않고 그가 올바른 길로 들어서도록 온 힘을 다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20절)라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강지숙(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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