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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제 236항 - 242항)
작성자장선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05 조회수403 추천수3 반대(0) 신고
 

3. 작은 쇠사슬을 지님

 


236. 마리아 안에서 자발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가 된 사람들이 그 표지로서 강복된 작은 쇠사슬을 지니는 것은 그들에게 지극히 영광스러운 일이며 매우 거룩한 행위이고 유익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외적인 표가 본질적인 것이 아님은 명백하며 이 신심에 열심인 사람은 그러한 표지들 없이도 잘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원죄와 본죄로 말미암아 묶여 있던 마귀의 노예로서의 부끄런 사슬을 떨쳐 버린 다음 자발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노예가 되어 사도 바오로와 함께 그리스도를 위하여 속박되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사슬들은 비록 쇠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황제들의 금목걸이보다 수천 배나 더 영광스럽고 귀중한 것이다.

 


237. 지상에서 십자가보다 더 치욕스런 것은 없었던 적도 있었지만 오늘에 이르러 그 십자 나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가장 영광스런 물건이 되었고 노예의 사슬 역시 이와 마찬가지이다.  고대인들 사이에서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교인들에게 있어 이보다 더 치욕스럽고 부끄러운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슬보다 더 이름 높은 것이 없는데, 왜냐하면 그 사슬이 우리를 오히려 풀어 주고 좌와 악으로 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기 때문이다.  그 사슬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고 노예에게 하는 것처럼 강제와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린아이들에게 하는 것과 같은 자비와 사랑으로 우리를 예수님과 마리아께 매어 놓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나는 사랑의 줄로 그들을 내게로 끌어 주겠다"(호세 11, 4) 라며 예언자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셨다.  이 사슬들은 죽음처럼 강하고, 어떤 의미에선 이 영광스런 표지를 자신들이 죽음에 이를 때까지 지니고 가는 충실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죽음보다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비록 죽음이 그들의 육신은 부패케 할지라도 이 사슬들은 쇠로 만들어졌기에 쉽게 썩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마지막 심판에서 육신이 부활하는 그날에 이 사슬들은 그들의 뼈를 묶게 될 것이고, 그들의 영광의 한 부분이 될 것이며, 빛과 영광의 사슬들로 변화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때에 무덤에까지 그 사슬들을 지니고 갔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들은 천 배나 더 행복하게 될 것이다.

 


238. 다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들이 이 작은 사슬들을 왜 몸에 지녀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들이다.


첫째, 세례 때 한 서약과 약속들을 이 신심에 의해서 완전히 새롭게 갱신하여, 그 서약과 약속들에 충실해야 한다는 엄한 의무를 신자들에게 기억하게 하기 위함이다. 

순수한 믿음에 의해서보다는 감각적인 것들에 의해 그의 행동 동기가 더 좌우되는 사람의 경우에 만약 그가 하느님께 향햔 그의 의무들을 상기시켜 줄 수 있는 어떤 외적인 것들을 지니지 못한다면 그는 하느님께 대한 자신의 의무들을 쉽게 잊어버리게 되는데, 이 작은 사슬들은 세례에 의해 풀려나게 된 죄와 악마의 노예로서의 사슬들과, 세례 때 예수 그리스도께 맹세했던 그분께 대한 예속과, 그가 자신의 맹세들을 갱신함으로써 하게 되는 그것에 대한 인정을 기억하게 하는 데 있어 놀라운 도움을 준다. 

매우 소수의 그리스도인들만이 자신이 세례 때에 했던 서약들을 생각한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약속드린 것이 아무것도 없는 이교인들처럼 살아가는 이유들 중의 하나는 그들이 세례 때 했던 서약들을 생각나게 해줄 만한 외적인 표지들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239. 둘째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예속되어 있고 그분의 노예임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는 것과 이제는 더 이상 세속과 죄와 마귀의 노예가 아님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셋째, 우리는 죄인으로서의 사슬을 지니거나 아니면 사랑과 구원의 사슬을 지니거나 해야 하기에 죄와 마귀의 사슬들에 대항하여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240. 오, 나의 사랑하는 형제여, 우리는 죄와 죄인들의 사슬, 세속과 세속적인 것의 사슬들 그리고 마귀와 그 앞잡이들의 사슬들을 끊어 버리도록 하자. 


그들의 불길한 멍에를 멀리 던져 버리자(시편 2, 3 참조).  성령의 말씀대로, 우리의 발을 성령의 영광스런 족쇄로 채우고, 우리의 몸에 그분의 사슬을 걸도록 하자(집회 6, 24 참조).

어깨로 하느님의 지혜, 즉 예수 그리스도를 메고 그 분의 사슬을 결코 귀찮게 여기지 않도록 하자 (집회 6, 25참조).


성령께서는 우리가 이 말들을 하기도 전에 먼저 그 영혼이 그분의 중요한 충고를 거절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우리 영혼을 준비시켜 주실 것이다.  성령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는 들어라, 내 의견을 받아들여 나의 충고를 거역하지 말아라"(집회 6, 23)



241. 사랑하는 친구여, 그대는 내가 성령과 일치하여 "성령의 사슬은 구원의 사슬이다"(집회 6, 30 참조)와 똑같은 충고를 그대에게 해주기를 원할 것이다.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이 싫어하든 좋아하든 상관없이 모든 이를 당신께로 이끄셔야 했으므로 그분은 죄인들을 그들이 지은 죄의 사슬로 끌어당겨서 노예처럼 그들을 묶어 그분의 영원한 분노와 정의로 응징하실 것이다. 

하지만 그분은 특히 이 마지막 시대에 있어서는 사랑의 사슬로 예정된 이들을 이끄실 것이다.  "다른 모든 사람을 이끌어 나에게 오게 할 것이다"(요한 12, 32).  "나는 그들을 사랑의 끈으로 묶어 이끌 것이다"(호세 11, 4 참조).



242. 예수 그리스도의 이 사랑스런 노예들, "그리스도의 포로들"(에페 3, 1: 필레 1, 8)은 그들의 발이나 팔에 그리고 몸이나 목에 사슬을 두를 수 있다. 

1643년에 성덕의 향기 속에 선종한 예수회의 일곱 번 째 총장인 빈센트 갈파 신부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임을 나타내는 표지로 발에 쇠로 된 띠를 두르곤 했는데., 그에게 있어 가장 후회스러웠던 점은 그것을 공공연히 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앞서 언급했던 예수의 아녜스 원장 수녀는 자신의 몸에 철로 된 띠를 두르곤 했으며 어떤 이들은 그들이 세속에서 목에 진주 목걸이를 걸고 다녔던 것에 대한 보속으로 목에 그것을 걸었다. 

반면 어떤 이들은 육체 노동을 할 때에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임을 상기하기 위해 팔에 사슬을 두르곤 했다.

 

 

성 루도비꼬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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