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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05 조회수941 추천수14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8년 9월 5일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The disciples of John the Baptist fast often and offer prayers,
and the disciples of the Pharisees do the same;
but yours eat and drink.”
(Lk.5.34)
 
 
제1독서 코린토 1서 4,1-5
복음 루카 5,33-39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된 어떤 사람이 요금을 조금이라도 절약하려고 ‘1요한 4,18'라고만 쓴 축전을 결혼식장인 성당으로 보냈습니다. 결혼하는 친구가 성당 활동에 아주 열심하기 때문에 성경 구절을 보냈던 것이지요. 요한 1서 4장 18절의 말씀은 이러합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분명히 좋은 구절이었고, 결혼하는 친구에게 힘이 되는 구절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우체국 직원이 ‘1’을 빼고서, ‘요한 4,18’로 축전을 보낸 것입니다. 사실 직원은 ‘1’이라는 숫자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았지만, 숫자 하나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서 ‘1’이라는 숫자를 뺐던 것이지요.

주례신부님께서 성당에 도착한 축전을 들고 와서는 “신부의 친구로부터 요한복음 4장 18절이라는 축전이 왔습니다.”라고 말해 주었지요. 그리고는 요한복음 4장 18절을 펴신 뒤, 큰 소리로 읽어주십니다. 그런데 이 성경의 말씀을 들은 시부모와 하객들은 모두 까무러치고 말았습니다. 요한복음 4장 18절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너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지금 함께 사는 남자도 남편이 아니니, 너는 바른대로 말하였다.”(요한 4,18)

‘1’이라는 숫자가 있고 없고에 따라서 이렇게 큰 차이를 보입니다. 그런데 우체국 직원은 그 ‘1’이라는 숫자가 그렇게 큰 차이를 보일지 몰랐던 것이지요. 하지만 결혼식을 ‘1’이라는 숫자 때문에 망칠 수도 있었습니다.

이런 안일한 마음이 우리 생활 전반에 걸쳐져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마음은 주님의 뜻을 함부로 판단해서 내 뜻을 내세우는데 더 노력하게 만듭니다. 또한 안일한 마음은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아픔과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비꼬듯이 말하지요.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기도를 하고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

단식을 하며 기도하는 제자들을 둔 요한과 바리사이는 훌륭한데 반해서, 먹고 마시는데 열중하는 제자를 둔 예수님은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판단할 자격이 있을까요? 아닙니다. 자신이 생각만 옳다는 안일하고 이기적인 마음이 잘못된 판단을 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자신의 제자들 또한 잘못된 길로 이끌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도 안일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이 정도면 되었어.’라는 마음보다는 ‘조금만 더 노력하겠어.’라는 적극적이고 최선을 다하는 마음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그때 주님의 뜻에 맞게 생활하는 충실한 자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적극적이고 최선을 다하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멋지게 만들어 보세요.




본전 생각은 버려라(매튜 켈리, ‘위대한 나’ 중에서)

당신은 누군가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본 적 있는가? 우리는 데이트를 할 때조차 계산을 한다. 그래서 “그동안의 데이트 비용으로 펀드를 들었으면 부자가 됐겠다.” 혹은 “내가 들은 노력과 시간이 얼만데 억울해서 못 헤어진다.”는 말이 나온다. ‘기브 앤드 테이크’가 우리 사회의 모토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사랑은 이런 게 아니다. ‘본전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자신의 일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다.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일을 사랑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무조건적이었다. 마하트마 간디는 인도인을 사랑했다. 베토벤은 음악을 사랑했다. 미켈란젤로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무언가를 돌려 받기 위해 그 일을 한 것은 아니다. 사랑했기 때문에 한 것이다. 물론 성공을 하면 돈도 많이 벌고 유명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결과다. 그것만을 목표로 달려선 안 된다.

소더비 경매에서 그림 한 점이 3,270만 달러에 낙찰됐다. 최급 페라리 자동차를 70대 가까이 살 수 있는 금액이다. 그 그림은 바로 모네의 ‘수련’ 연작 가운데 한 점으로, 현대 추상화의 문을 연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실 젊은 시절의 모네는 그림을 거의 팔지 못하는 화가였다. 당시 유행하던 신고전주의 화풍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을 놓고 평론가들은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 같다.”는 혹평을 쏟아 냈다. “무엇을 그린 그림인지 알 수 없는, 그냥 팔레트를 문질러 아무렇게나 발라 버린 그림 같다.”는 말도 들었다.

서른 살 무렵에는 캔버스를 살 돈이 없어서 팔리지 않은 작품들을 칼로 긁어내고 그 위에 다시 그림을 그렸다. 이런 과정에서 모네의 수많은 초기 대표작들이 없어졌다. 하지만 모네는 마흔을 넘기면서부터 점차 인정을 받아, 결국 인상파의 거장으로 우뚝 섰다. 만약 모네가 본전 생각에 자신이 좋아하는 화법을 버리고 돈과 명예를 구했다면 어땠을까? 생활은 좀 넉넉했을 수 있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완전히 뒤집혔을 지도 모른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화가 중 한 명이 되지 않았을까?

모네를 기억하라. 그리고 본전은 잊어라.
 
 
 He will bring to light what is hidden in darkness
and will manifest the motives of our hearts
(1Cor.4.5)
 
 
Ivan Müller - Serenade for Clarinet and Guitar(III. Roman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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