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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독서,복음서 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9-01 조회수4,137 추천수1 반대(0) 신고

1독서

사도 바오로가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입니다. 1,9-14

 

그래서 우리는 그 소식을 들은 날부터 여러분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며 간청하고 있습니다. 곧 여러분의 모든 영적 지혜와 깨달음을 덕분에 하느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져,

10 주님께 합당하게 살아감으로써 모든 면에서 그분 마음에 들고 온갖 선행으로 열매를 맺으며 하느님을 아는 지식으로 자라기를 빕니다.

11 또 하느님의 영광스러운능력에서 오는 모든 힘을 받아 강해져서, 모든 것을 참고 견디어 내기를 빕니다. 기쁜 마음으로,

12 성도들이 빛의 나라에서 받는 상속의 몫을 차지할 자격을 여러분에게 주신 아버지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13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기는 하느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14 이 아드님 안에서 우리는 속량을 , 곧 죄와 용서를 받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1독서 주해(해제.역주 신교선)

9

그러므로는 근거를 제시하는 이음말로서 저자가 처한 상황에 대한 정보와 직결된다. 이 말은 공동체로부터 전해오는 소식을 전제한다. 바로 그 소식이 콜로새 서간의 집필 동기가 된다.

 

기도하며 간청한다라는 중복 표현이 독자에게 무언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지적시킨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 기도는 분명 청원기도의 성격을 띤다. 당시 콜로새로부 저자에게 긍정적인 내용뿐 아니라 부정적인 소식도 전달되었다고 생각된다. 여기서 기도는 공동체를 위한 기도임이 여러분을 위하여에서 명확해진다. 기도의 내용은 뒤따라오는 구절에서 선명해진다.

그분의”: 1절의 하느님의 뜻으로에 상응하는 표현이다.

충만하게 되다는 신학적 수동형이다. 콜로새서에서 중요한 낱말이다. 문제는 어떤 지식이냐다. 하느님 뜻과 직결되느냐에 따라 올바른 지식인지 아닌지가 판가름난다.

 

10

10-11절에는 모든이 눈에 띄게 자주 나오는데 생동감을 불어넣기 위한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주님은 문맥상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고 보이나 그리 명확하지는 않다.

주님께 맞갖게”; 소유격과 함께 쓰인 맞갖게 합당하게1데살 2.12. 에페4.1에서도 발견된다. “맞갖게는 윤리적 측면에서 일컫는 말이 아니라 법적 용어로서 더 근본적인 자세, 곧 주님 뜻에 합당하게 변화한 삶을 뜻한다.

 

살아가다”: 그리스도인 실존을 생동감 넘치게 표현하는 주요 용어다. 이표현은 필레몬서를 제외한 모든 바오로 서간에 나온다.

 

기쁨”: 여기서 기쁨은 주님께 직결된다. 이 말의 배후에는 유다교 경건주의 전승이 깔려 있다. 주님께 맞갖게 살아간다는 표현은 삶의 방향을 설정해 주는 분사구문을 통해 섬세하게 묘사되면서 교훈적 역할을 한다. “열매맺다”-“자라다”- “굳세어지다”-“감사드리다

 

선한 일에서 열매를 맺다”: 하느님 뜻을 행함을 의미한다. “선한 일. 선행은 믿음을 통해 인간 실존을 풍요롭고 값지게 한다. 선행의 내용은 뒤에 나오는 교훈에서 더 구체적으로 나열된다.

 

하느님을 아는 지식으로 자라며”: 이미 전해들은 복음을 심화하여 하느님 뜻과 일치된 삶을 살아감을 의미한다. 행위와 명상. 행동과 믿음, 활동과 배움이 잘 어우러진 신앙인의 모습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11

11절은 10절에 분사구문으로 연결되어 있다.

 

굳세어져”: 당신 영광에 상응하는 능력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지칭한다. 하느님 영광의 능력에 걸맞는 삶이 요청된다.

 

꾸준함과 인내를 가지다”: 비슷한 개념을 겹쳐 사용함으로써 강조하는 수사법이다. 이와 비슷한 내용으로 야고5,7-11이 있다. 인내력을 강조하는 내용은 유다교 전승에서 온 것이다. 11절은 흔들림없이 꾸준하게 또 굳건히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2,6-8의 문맥과 깊이 연관된다. 이 단락은 내적 불확실성을 경고한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항구한 믿음과 꾸준한 자세다. 이같은 확고한 믿음은 하느님 권능에서 오며, 그분의 본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하느님 영광에 가장 걸맞은 것이다.

 

12

12절을 3절과 비교할 필요가 있다. 3절에서 사도가 기도드리며 감사하는 내용이 묘사되었다면, 12절에서는 공동체가 행해야 할 사항이 그려져 있다. 사도가 그랬듯이 공동체 또한 그를 본받아 거룩하게 된 자신들의 처지에 대해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드려야 한다. 덤덤하게가 아니라 기쁨에 넘쳐 감사드림을 뜻한다.

 

빛 가운데 있는”: 13절의 어둠과 대조를 이룬다. 빛은 천상 세계 또는 영원한 분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이다. 3.1-4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은 근본적으로 이미 위에서 천상에서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사람들이나 다를 바 없다.

 

상속”: 상속에 참여한다는 말은 하느님 역사하심에 대한 유다 전승을 연상시킨다. 상속을 얻으리라는 것은 먼저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이스라엘 자신이 하느님 상속자가 된다는 뜻이다. 다음으로 땅을 차지하는 것이 곧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지속적인 상속이다. 이는 동서에 구원론적 차원에서 한정적 개념으로 이해된다. 그들만의 특권이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그리스도인 공동체로 개방된다. 하느님이 그들을 유산 상속자가 되게 하신 것이다. 이 관념은 쿰란 공동체에서도 뚜렸이 나타난다. 하느님은 당신이 선택하신 사람들에게 깊은 통찰력,지식,지혜,의로움,명예 등을 영원한 차지로 선사하셨으며 거룩한 이들 가

 

운데 한몫 차지 하도록 하신다. 당신 영광을 위해 사람들 죄를 씻어 주셨다. 이제 유산은 당이 아니다. 그 내용은 13-14절에서 볼 수 있듯이 새로운 양상으로 그리스도론적 진술에 함축적으로 묘사된다.

 

감사의 내용이 분사구 안에 들어 있다. “자격을 부여하다. 할 수 있도록 해주다동사는 신약성서에서 이곳말고는 2코린3.6에만 나온다. 두 곳 모두 하느님이 무엇을 할 가능성의 원동력, 즉 그러한 능력을 부여하는 주체이심을 말해준다.

 

아버지께”: 감사는 3절에서처럼 하느님 아버지께 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감사의 대상이 아주 구체적으로 지칭되지는 않는다. 하느님은 우리에게또는 여러분에게아버지시라는 차원에서 포괄적으로 해석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시라는 기본사상이 전제되어 있다고 본다. 하느님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요 여러분의 아버지라는 사실 그분이 바로 이러한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에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그분께 감사드려야 하는 것이다. 감사의 근거가 무엇인지는 12-13절에서 자세하게 나타난다.

 

감사의 첫째 이유는 유다교 전승에서 나아가 종말론적. 천상적 차원에서 유산 상속자가 되게 하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라는 사실에 있다. 그분께 드려야 할 감사의 또 다른 이유는 이어지는 13절에서 묘사된다.

 

13

관계대명사 호스로 시작되는 이 구절은 두 병행문으로 싸여 있다. “그분은 앞절의 아버지를 지칭한다. 두 문장이 그리고로써 동등한 위치에서 병렬되어 있다. 두 문장의 내용도 상응한다.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바는 목적어 12절의 여러분에서 우리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이를 단순히 2인칭과 1인칭이 대조관계에 있다는 의미로만 이해해서는 안된다. 그보다는 수신인뿐 아니라 저자 자신도 포괄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야겠다. 즉 그분 구원의 손길은 너와 나, 여러분과 우리 할 것 없이 모두를 포괄한다는 뜻이다.

 

어둠”: 악 또는 죄의 영향력 아래 있음을 말한다. 이러한 경향은 쿰란 문헌에서 두드러진다. 동시에 어둠은 세상 영역을 의미한다. 어둠이란 용어만으로도 충분하련만 어둠의 권세라고 표현함으로써 세상을 지배하는 악의 세력 내지 악의 영향력을 더욱 강조한다. 탈출의 본보기는 “...로부터 ... 로에로에서 잘 드러난다. 이같이 대조적인 표현으로 21-22절 참조.

 

건져내어”,“건져내다, 구해내다는 매우 집약적인 동사로서 바오로 전서에서는 물론 바오로 후기 문헌에서도 구원론적 맥락 속에 사용된다. 그러니까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의 역사하심이 출애급 사건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느님 해방의 손길과 비교된다. 4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의 주체인 데 반해 13절에서는 아버지가 주체다.

 

당신 사랑하는 아드님 나라로”: 어둠의 세력이 판치는 현실 분위기를 전제한 말이다. 사랑하는 아들을 거론하는 것은 예수의 세례나 거룩한 변모와 연관성이 깊다고 본다. 나아가 하느님 나라의 양상을 결론짓는 내용으로 이해된다. “아드님 나라로란 표현에는 2사무 7,12-16에 근거한 나라 관념이 어렴풋이 서려있다. 구원론적 진술을 위한 그리스도론적 표현이 함축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밖에는 하느님 중심으로 꾸며져 있다. 다시 말해 콜로새에서 그리스도론적 진술은 14절에 와서 처음 명시적으로 나타난다.

 

옮겨 주다는 신약성서에서 유일하게 구원론적 문맥에 등장하는 동사다. 12절에서 말한 감사의 근거는 아버지께서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아드님 나라로 옮겨 주셨다는 데 있다. 즉 감사의 근거는 아버지 안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인류 구원 사건은 곧 새로운 출애굽 사건이라고 이해된다.

 

그리스도 사건은 지금까지 죄의 사슬에 묶여 있던 상태에서 벗어나는 해방, 지금까지 휘말려 있던 악의 권세에서 해방되어 아주 다른 나라로 옮아가는 사건이다. 13절의 내용은 20절에서 더 구체적으로 전개된다. 핵심은 부분적 변화가 아니라 총체적 변화에 인간의 부분적 해방이 아니라 총체적 해방에 있다.

 

14

첫 목적어 속량의 의미는 둘째 목적어 죄의 용서에 의해 더 구체적으로 밝혀진다. 이 구절의 전반부는 에페 1.7과 문자 그대로 똑같다. 이 현상으로 미루어보아 이 표현은 형식화한 문장, 곧 전례양식문으로 이미 사용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분 안에서또는 그분으로 말미암아라고 옮길 수 있다. 이 표현에서 그리스도 중심적 진술이 명확히 드러나며 이 경향은 20절까지 지속된다. 이는 본문 내용을 규명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2.4절에 따를 때 그리스도 안에서는 그리스도 신앙인의 온 실존을 근본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11-13절에서 이 말은 결국 아버지이신 하느님에까지 소급된다.

 

속량”: 본래 이 말은 전쟁포로를 노예상태서 해방시킴을 뜻했다. 13절에는 출애급 사건의 동기인 해방의 의미가 배여 있다. 출애 6.6에서도 이같은 어원을 찾아 볼 수 있다. 원초적으로는 땅을 유산으로 물려받음을 뜻하던, 하느님으로부터 선사된 새로운 유산은 그리스도 안에서 곧 그리스도 사건을 통해 공동체에 선사된다.

 

죄의 용서”: 앞의 속량을 보충설명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현상은 에페 1.7에서도 발견된다. “죄의 용서란 주제는 바오로 친서에서는 명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으나 공관복음에서는 자주 발견된다. 이는 초대교회의 복음선포에서 일반화된 주체였다. 특히 루카 24.47에서 죄의 용서는 예수 부뢀 후 초대교회 복음선포의 주안점이었음이 엿보인다. 죄로부터 구원은 그리스도 사건에서 성취되는 해방의 구원으로 이해되며 이 사건의 배후에는 아버지로서의 하느님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는 뒤따라오는 15-20절에서 구체적으로 밝혀진다.

 

받았습니다우리말은 과거형이지만 그리스어로는 현재형으로서 현재 상태를 포함할 뿐 아니라 종말론적 의미를 지닌다. 구원사건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복음<고기잡이 기적-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시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3-11

3 예수님께서는 그 두 배 가운데 시몬의 배에 오르시어 그 두 배 가운데 시몬의 배에 오르시어 그에게 뭍에서 조금 저어다가 달라고 부탁하신 다음, 그 배에 앉으시어 군중을 가르치셨다

4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다시 시몬에게 이르셨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5 시몬이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재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6 그렇게 하자 그들은 그물이 찢어질만큼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다.

7 그래서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고 하였다. 동료들이 와서 고기를 두 배에 가득 채우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

8 시몬 배드로가 그것을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말하였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9 사실 베드로도, 그와 함께 있던 이들도 모두 자기들이 잡은 그 많은 고기를 보고 몹시 놀랐던 것이다.

10 시몬의 동업자인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그러하였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11 그들은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서 주해(해제.역주 정양모)

고기잡이 기적-어부들을 제자로 삼으시다.

예수님이 시몬 베드로를 제자로 삼으셨다는 소명사화는 네 복음서에 한 번씩 나온다. 그 가운데 마르코복음의 소명사화가 가장 오래된 것이리라. 그리고 시몬과 그 동료들이 기적적으로 물고기를 많이 잡았다는 자연이적사화는 루카 5,1-11과 요한 21,1-14에 있다.

 

그런데 루카 5,1-11에는 이 자연이적사화가 예수님이 시몬과 그 일행을 제자로 삼으신 소명사화와 연결되어 있고 요한 21.1-14에는 비슷한 자연이적사화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발현사화와 연결되어 있다. 자연이적사화는 흔히 예수님의 말씀을 이야기로 꾸민 것이다. 여기서도 당신들이 사람들을 낚는 어부들이 되게 하겠소라 하신 말씀을 극화하여 물고기를 많이 잡게 하신 자연이적사화로 엮었으리라.

 

5

사람들은 흔히 예수님을 선생님이라 불렀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높이는 스승님이란 존칭은 신약성서 가운데 오직 루카복음에만 호격으로 여섯 번 나온다. 시몬의 답변은 사도직 종사하는 사람들의 몸가짐. 마음가짐을 일깨우는 명언이다. 곧 아무리 노래해봐야 도무지 결과가 안 보일 때라도 낙심하지 말고 저 시몬처럼 다시 한번 일어서야 하겠다.

 

8

스승님일뿐더러 주님이신 예수의 위력을 체험한 시몬은 한편으로는 예수께로 이끌리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분을 떠나고 싶은 충동을 받는다. 인간이 신비를 대하면 으레 매혹과 공포를 느끼게 되는 법.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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