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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꽃힌 신부 ★ 제3부 19 무리수無理手는 절대 금물?
작성자김은경 쪽지 캡슐 작성일2021-09-10 조회수3,315 추천수1 반대(0) 신고

pp307-311


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꽂힌 신부

제3부 허무맹랑한 내맡김의 영성
19 무리수無理手는 절대 금물?
2010. 06. 21.



그동안 사반세기가 넘는 사제 생활(28년)을 해 오면서
가까이 지내던 교우분들을 통하여 한 가지 알게 된 중요한 사실은,
누구나 모든 일에 있어서 절대로 ‘무리수’를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무리수’란 무엇인가?
무리수를 검색해 보면 두 가지 설명이 나온다.

첫째로 ‘무리수無理’는 바둑, 장기 등에서 무리하게 두는 수,
어떤 일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상태이다.

둘째로 ‘무리수無理’는 실수實數면서 유리수有理數가 아닌 수,
유리수로 나타내지 못하는 수이다.

내가 이 단상斷想에서 말하고자 하는 무리수는
첫째 무리수無理를 말하는 것이다.


또 ‘무리수無理’라는 말 중 ‘무리無理’를 찾아보니,
‘1. 일의 이치 즉 사리事理에 맞지 않음,
 2. 힘겨운 일을 억지로 우겨서 함’이라고 나온다.

 무리수無理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분수分數의 형식으로 나타낼 수 없는 실수實數
 순환하지 않는 소수로 나타내는 수(↔유리수有理數)라고 나와 있다.


말의 뜻을 놓고 생각해 볼 때, 특히 재미있는 것은
무리수無理’라는 말에서는
셀 수’가 아니라, ‘손 수’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사실, 국어사전에는 ‘무리수無理’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


지금 사전을 펴 들고
왜 이렇게 엿장수처럼 시끄럽고 장황하게 떠드는가 하면,
하느님께 내맡길 사람은
무리수無理’를 절대로 두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무리수無理’를 두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수手’의 주인은 ‘나’이고, ‘’의 주인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무리無理,
즉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을 억지로 우겨서 하는 것이 손 수手,
나의 손, 내 의지(내 뜻)인 것이다.
사람의 의지 표현은 제일 먼저 손을 통하여 나타나게 된다.
자기 의지(뜻)가 강할수록 손의 작용이 앞서가며 강해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말보다도 주먹이 빠르다’는 말이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힘겨운 일을 억지로 우겨서 하다가 완전히 쫄딱(?) 망한 교우를
여럿 보아 왔다.
소위 ‘무리수無理’를 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무리無理’해도
모든 이치理治의 주인이신 분께서 함께하시면
모든 것이 ‘유리有理’하게 될 수 있다.

모든 만물의 수, 머리카락 수도 헤아려 주시는 분이
무리수無理라고 못 세어 주시겠는가 말이다.

바둑에도 고수가 있고, 인생에도 고수가 있다.
당연히, 인생의 주인이신 하느님이 최고 고수 중의 고수이시다.



모든 일에는 이치가 있듯이 하느님께 나아가는 데도 이치가 있다.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무리수無理’를 두어야 하는 것이다.

머리카락 하나 세지 못하는 보잘것없는 머리로
스스로 수를 센다고 하여 깝죽거리다 보면,
그때 보이게 되는 글자가 ‘망’ 자다.


하느님을 믿고 따르고 가까이 하기 위해서
무리수無理’를 두어야 하는 것이 바로 거룩한 내맡김이다.
그 ‘내맡김’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무리수無理’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리수無理를 두는 사람은 마침내 내맡겨
‘흐르는 물처럼, 부는 바람처럼’ 살 수 있다.
그러니 무리수無理를 둘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느님을 소유하여 그처럼 살려면!


무리수無理를 두면, 무리해서 몸도 영혼도 다 망가지게 된다.
그러니 모든 것을 잃지 않고 힘들게 살지 않으려면
무리수를 두지 말자!
무리한 수, 인간의 뜻이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거짓(위僞)’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셀 수도 없이 무한하신 하느님 앞에 셈(따짐, 지식)을 멈추고,
무식無識하게 대들면 하느님을 얻게 된다.
그래서 하느님을 소유하려면
무식쟁이, 철부지, 막가파, 철면피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억, 십억, 백억, 천억,
조, 십조, 백조, 천조, 억조, 경, 십경, 백경, 천경……
그 이상의 숫자를 안다고,
더 이상의 수를 헤아릴 줄 안다고 까불거리는 사람은
그야말로 대단한 지식의 소유자, 그대의 이름은 ‘어른’이어라!

그 어른들은
다른 이들이 인정해 주는 정말로 똑똑한 사람이 아니고,
다른 이들이 인정해 주는 정말로 슬기로운 사람이 아니고,
‘스스로 똑똑하다고 여기는 이들과 슬기롭다고 여기는 이들’이다.


사랑하는 그대여!
자신의 짧은 경험과 지식과 지혜를 믿고
무리수無理’를 절대로 두지 마시라!

무리수를 두는 지금,
그대의 눈과 머리는 이미 그놈(?)에게 넘겨진 것이다.
무리수는 또 다른 무리수를 불러온다.
그놈에게 넘겨졌기 때문이다.
그놈이 또 다른 일곱 놈을 데려오듯이 말이다.

그놈(?)은 ‘욕심(무리수)’을 밥으로 한다.
즉, 인간이 자기 손으로 빚은 것도 아닌데
마치 제 손으로 빚은 제 것처럼 으스댈 때 슬며시 들어와
그 무리수無理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수手, 내 뜻, 내 의지)’부터
가장 먼저 댕강 잘라 맛있게 쳐 잡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손은 쳐든 손, 거룩한 손인데,
손 내리면 그놈의 밥이 되는 힘없는 손인데,
우리 손을 우리가 끝까지 쳐들 수가 없는데,
그분께서 우리의 팔을 붙들어 주셔야 하는 것인데…….

내 오른손을 끝까지 받쳐 주는 거룩한 내맡김!
내 팔이 세상으로 떨어지지 않을 때,
내 오른손은 어느덧 ‘하느님의 오른손’이 되어 있으리!


무리수無理는 그놈 것!
무리수無理는 나의 사랑하는 그 님,
그분의 것! 



http://cafe.daum.net/likeamaria (다음 "마리아처럼" 카페 바로가기) 

 

 

 

 


이해욱 신부님의 책 <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꽂힌 신부> 가 출간 되었습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벗어나지 않고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정말 가능한 것일까요?

 

참으로 가능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맡기고 사는 것,

즉, <거룩한 내맡김 영성>의 삶입니다.

 

 

 

책 구입 문의: '끊임없는 기도모임' 카페

http://cafe.daum.net/Praywithoutceasing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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