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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용물 ....... [김상조 신부님]
작성자김광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8-08-26 조회수451 추천수6 반대(0) 신고
 
 
접시와 잔은 그 속에 무엇을 담기 위한 물건이다.
그것이 어떤 잔이든 상관없이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채워져 있는 내용물이다.
사람들은 그 잔 속을 채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 속에 부와 명예, 능력과 기술, 성공을 채우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이런 내용물은 채우지 않고
겉으로 보여지는 것에 더 골몰하며 살아가는 수가 있다.
언젠가 자작 스피커를 만든 적이 있다.
인터넷을 뒤져서 소리가 좋다는 스피커 모델명과
스피커 통 크기를 알아본 다음 필요한 부품들을 사서
네트웤을(저음과 고음을 분리해주는 스피커의 핵심 부품이다) 조립하고,
가장 적당하다고 계산된 크기의 스피커 통을 만들었다.
스피커 통을 전문용어로는 인클로져라고 한다.
인클로져를 만들다가 조각칼이 손가락을 파고 들어가서 피를 철철 흘리기도 했다.
덕분에 스피커 통 하나는 내 피를 흠뻑 마시고 군데 군데 벌겋게 되었다.
그래서 에밀레 스피커라고 부르기로 했다.
무턱대고 인터넷 자료만 보고 만들었지만
내가 직접 만든 스피커라 애정이 크다.
소리는 별로지만 동기 신부가 스피커 하나 달라고 했을 땐
거금?을 주고 샀던 기성품을 주고 내가 만든 스피커는 결코 내주지 않았다.
그 자작 스피커로 음악을 듣다가 어느 분이 좋은 스피커 선을
싼? 값에 공동구매 한다는 소식을 듣고 거금을 투자했다.
한 가닥에 미터 당 만 천원 정도나 되는 꽤 비싼? 스피커 선이었다.
4가닥을 한 쪽에 2가닥, 3미터씩 6미터를 구입해서 앰프에 물렸다.
총 24미터 x 11,000원 하면 264,000원이나 하는 어마어마한 돈이 스피커 선에 투자된 것이다.
"나도 미쳤지" 하면서 질렀다.
새로 구입한 선으로 음악을 듣다가
어디선가 “또르르륵~” 하고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서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처음에는 '어, 이게 무슨 소리지?'하고 귀를 의심하였다.
마침 장마때였다. 그래서 '밖에 비가 오나? 창틀로 비가 새나?' 했다.
날씨는 흐렸지만 비가 오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어디서 물이 새고 있나?'하고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그러면서 싱크대 바닥이 새는가 싶어서 싱크대를 열어보고
싱크대에 연결된 하수구를 살펴보면서,
'여기서 나는 소리가 아닌데?' 하다가
'아하'하고 무릎을 치면서 놀랐던 적이 있다.
그 소리는 바로 스피커에서 나는 소리였던 것이다.
스피커 선을 바꾼 것 뿐인데 이 선이 그 동안 들려주지 못했던 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도록 해준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본질이다.
스피커 통도 중요하고 스피커 알멩이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본래 음악이 갖고 있던 소리를 있는 그대로 다 내주는 것이 가장 좋은 스피커다.
몇 천만원 짜리 스피커가 그만한 가치를 가지는 것은
그것이 들려주는 소리의 양과 질에 있지,
그것 때문에 얻게 된 유명세이 있지 않다.
스피커가 제대로 된 소리를 내주기 위해
멍청한 선을 포기하고 더 좋은 선으로 교체해 주듯이,
우리도 우리 속에 담겨진 하느님의 모상을 드러내주기 위해선
겉꾸민 우리 모습을 버려야 할 것이다.
오늘 예수님이 바리사이들을 꾸짖은 이유도
그들이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정결하게 그릇을 닦아놓고 살아가지만
그 마음 속에 이웃에 대한 연민의 정이 없었던 탓이다.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멸시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불결하게 사는 것을 경멸한 탓이다.
가끔씩 주일 저녁미사를 봉헌하면서
미사에 참석한 분들이 마지 못해
주일의무는 채워야지 하는 마음으로 나온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면 "또한 사제와 함께" 하는 응답이 들려와야 하는데
꿀먹은 벙어리처럼 입속에서 우물거리곤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도 이런 생각이 들어서 불편한 마음을 바꾼다.
'이 분들도 얼마나 피곤할까! 주일도 일하느라 지친 분도 있을테고,
가족, 친지, 어른, 그외 챙겨야 할 사람들 만나서 인사하거나,
아이들 성화에 못이겨 피곤한 나들이 봉사 하느라고 휴일도 쉬지 못한 분도 있을텐데!'
그러면서 하나 더 드는 생각이
이게 바로 바리사이적인 사제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사제는 부양가족도 없고 사회적 의무도 상대적으로 가볍기 때문에
언제나 교회 전례에 충실할 수 있지만,
일반 교우들은 그런 여건이 아주 어렵거나 많이 방해를 받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걸 자기 기준으로 바라보며
타인의 어려움을 알아주지 못하고
비난하거나 단죄하는 것이
바로 오늘 예수님이 바리사이들을 꾸짖은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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