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9.12.“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21-09-11 조회수3,661 추천수1 반대(0) 신고

 

                                               마르 8, 27-35(연중 24 주일)

 

우리는 오늘도 길을 걷습니다. 누군가의 뒤를 따라 걷고 있으며, 단지 뒤를 따라 걷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분과 동행하여 걷고 있습니다. 또한 홀로서 그분을 따라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과 더불어 그분을 따라 걷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바로 그 길을 동행하여 걸으면서 스승이 제자들에게 스승을 따르는 길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줍니다. 당신이 가는 길참된 제자의 길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더구나 이 가르침은 스승께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죽음의 행진을 막 시작하면서 말씀하고 계시기에, 그 간절함이 베여있는 가르침입니다.

오늘 <말씀전례>의 주제는 메시아의 고난에 대한 말씀입니다.

<1 독서>는 이사야 예언자의 입을 통해 들려준 주님의 종의 노래, 메시아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이들에게 뺨을 내주고, 모욕과 수모를 받으면서도 얼굴을 가리지 않을 것이나, 주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수치를 당하지 않으리라고 전합니다.

<2 독서>는 그분을 믿는 이들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지녀야 할 믿음의 실천에 대한 야고보 사도의 권고입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시기 전에 제자들을 미리 준비시키시는 장면인데, 내용상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곧 예수님께 대한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예수님의 수난예고와 그분을 따르는 제자들이 받아야 할 고난입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신원에 대한 군중들의 여론을 물으십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르 8,27). 그리고는 이내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르 8,29).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마르 8,29)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가르쳐주십니다.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히 하셨다.”(마르 8,31-32)

여기서, 우리는 “반드시”(Dei)라는 말과 ‘명백히’(parresia)라는 단어에 주의를 기울여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 길을, “반드시” 걸어야 하는 길로, ‘명백히’(parresia) 가르치시기 때문입니다.

“반드시”라는 단어는 세 가지 뜻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의무와 책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곧 예수님께서 고난과 배척을 겪고 죽임을 당하시는 일은 해도 되고 안 해도 괜찮은 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자녀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하는 사랑의 의무이며 책임에 해당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두 번째>는 하느님의 약속을 실현하겠다는 뜻을 나타내줍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예언을 이루시려면 ‘반드시’ 고난과 배척을 받으시고 죽임을 당하셔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십니다. <세 번째>는 아버지의 뜻에 절대 복종하시는 예수님의 마음가짐을 말해줍니다. 곧 아버지의 뜻과 자신의 사명에 대해서 ‘반드시’ 해내고 말리라는 투철한 사명감과 각오를 말해줍니다. 따라서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에서 피해서도 안 되고, 거부할 수도 없는 ‘반드시’ 걸어야 하고, ‘반드시’ 실행해야 하는 일이라는 말씀이 됩니다.

그리고 ‘명백히’(parresia)라는 단어는 공관복음에서 유일하게 여기에서만 한 번 쓰인 단어로, 자유를 가지고 용기 있게 그리고 분명하게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이는 어렴풋이 알아듣거나 대충 알아들어서는 안 되는 그야말로 명백하게 알아들어야 할 내용임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이 길은 우리가 ‘명백히’ 알고 분명하게 따라가야 하는 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명백히가르치신 우리가 반드시가야하는 이 길은 대체 어떤 길인가? 그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한두 가지나 혹은 몇 가지의 고난이 아니라 ‘많은 고난을 겪는 일’이요, <둘째>는 단지 배척과 거부를 당하는 것만이 아니라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는 일’ 이요, <셋째>는 그리하여 ‘다시 살아나는 일’ 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가 걸어야 하는 길, 많은 고난을 겪고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는 일은 능동태가 아닌 수동태로 이루어지는 길임을 밝혀줍니다. 곧 스스로 만들어 걸어가는 길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묵묵히 수행해 가는 길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에게 이러한 내용은 너무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사실, 그들도 당시의 다른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영광스럽게 개선하는 메시아에 대한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메시아가 고난을 받고 죽음을 당한다는 사실을 상상할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천부당만부당한 일로 여겼던 것입니다. 또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사실에 당혹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나서서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고, 이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르 8,33)

그는 사막에서의 유혹자처럼,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위해 마련해 놓은 계획과는 다른 사람들의 방식으로 구원자가 되라고 반박한 것입니다.

사실, 오늘도 이렇게 하느님의 일이 아닌 사람의 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사람의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려고 하는 우리를 예수님께서는 가까이 부르시어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르 8,34). 아멘. 

 

 

 

- 오늘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마르 8,31)

주님!

배척을 받는 고통을 받을 줄 알게 하소서.

몰이해와 곡해, 오해를 받아 견딜 줄 알게 하소서.

사랑하는 이로부터도 배척받고 거부됨을 받아들일 줄 알게 하소서.

마침내는 죽임을 당하는 일까지도 받아들일 줄 알게 하소서.

순명으로, 아버지의 뜻에 따라 가야하는 길이기에

사랑으로, 흔연히 배척받을 줄 알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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