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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월 12일 야곱의 우물- 요한 3, 22-30 묵상/ 일치와 화해를 희망하여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8-01-12 조회수464 추천수6 반대(0) 신고

일치와 화해를 희망하여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다 땅으로 가시어, 그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머무르시며 세례를 주셨다. 요한도 살림에 가까운 애논에 물이 많아, 거기에서 세례를 주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가서 세례를 받았다. 그때는 요한이 감옥에 갇히기 전이었다.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다인 사이에 정결례를 두고 말다툼이 벌어졌다.
 
그래서 그 제자들이 요한에게 가서 말하였다. “스승님,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그러자 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 하고 내가 말한 사실에 관하여, 너희 자신이 내 증인이다.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요한 3,22-­30)
 
박영대(우리신학연구소)
◆요즘 길을 오가며 MP3를 사용한다. 음악을 듣는 건 아니고 제3시대 그리스도교연구소 김진호 목사의 성경 강의를 듣는다. 김 목사는 가톨릭과 개신교가 공동으로 이루어 낸 공동번역 성서를 가지고 강의한다. 새로 배우는 게 많다. 그 가운데 하나는 요한과 예수의 세례운동이 그 당시 사회에서 어떤 의미였는가 하는 점이다. 그때는 죄를 없애기 위해서 반드시 성전에서 흠 없는 제물을 바쳐야 했다.
 
제물을 살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은 죄를 짊어지고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세례만으로 죄를 없앨 수 있다는 요한과 예수님의 세례운동은 성전체제에 정면 도전하는 반란이고, 제물 장사로 배불리던 이들에게 고약한 영업 방해(?)였다. 물론 가난한 이에게는 기쁜 소식이었을 게다. 김 목사의 강의를 들으면서 새삼 성경을 볼 때 그 사회 문화 배경을 살피며 봐야겠다고 생각한다.
 
김진호 목사와는 ‘개혁을 위한 종교인 네트워크’ 모임에서 주로 만난다. 2005년에 개신교 ‘제3시대 그리스도교연구소’, 불교 ‘참여불교재가연대’, 천주교 ‘우리신학연구소’, 시민사회단체 ‘종교자유정책연구원’과 ‘기업책임시민센터’를 중심으로 만든 모임이다. 만나면 편안하고 좋은 사람들이다. 지난해 2005년 인구센서스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는 그 의미를 되새기는 대화 모임을 가진 바 있다. 그 자리에서는 어느 종교 신자가 더 많이 늘어났는지를 따지지 않았고, 이를 자성과 쇄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분위기에서 마음을 담은 충고가 오갔다.
 
오늘날 종교 자체가 갈등과 폭력의 불씨가 되곤 한다. 그 배경에는 자기만 옳다 여기고 이웃 종교를 없애버려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근본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근본주의는 이웃 종교의 참모습이 무엇인지는 관심도 없다. 자기 편견을 덧씌워 마구잡이로 비난하고 공격한다. 이 근본주의는 성장 제일주의라는 영양분을 먹고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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