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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30. 여호사팟의 유다 통치 / 통일 왕국의 분열[2] / 1열왕기[55]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1-10-02 조회수796 추천수1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30. 여호사팟의 유다 통치(1열왕 22,41-51; 2역대 20,31-21,1)

 

이즈음 유다는 솔로몬의 아들 르하브암에서부터 아비야, 아사의 통치 아래서는 하느님에게서 매우 멀어졌다. 그러나 여호사팟의 시대에서는 좀 달랐다. 그는 이스라엘 임금 아합 제사년에 유다의 임금이 되었다. 여호사팟은 서른다섯 살에 임금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스물다섯 해 동안 다스렸다(기원전 870-846). 그의 어머니 이름은 아주바인데 실히의 딸이었다. 그는 자기 아버지 아사가 걷던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 길을 그대로 걸어, 주님의 눈에 드는 옳은 일을 하였다. 그러나 산당들은 없애지를 않아, 백성은 여전히 산당에서 제물을 바치고 향을 피웠다.

 

산당은(1사무 9,12 참조) 일반적으로 성 밖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예배 장소이다. 여기에는 보통 부속 건물이 세워져 있는데(12,31 참조), 적어도 제사 음식을 먹을 수 식당만은 반드시 딸려져 있었다. 이 산당에서 가나안 사람들은 늘 자기네 신들에게 제사를 바치고, 풍산 신 숭배와 죽은 이들에 대한 예배와 종교적 간음과 같은 여러 종교 예식을 함께 거행하였다. 그래서 그곳 산당에는 제단과 신을 상징하는 커다란 돌기둥, 그리고 아세라 여신이나 남근을 상징하는 신성한 말뚝이 마련되었다. 산당은 흔히 풍산을 상징하는 신성한 나무들과도, 연관이 된다.

 

이러한 산당의 기원은 유목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히브리인들은 팔레스티나에 정착할 때에 가나안 사람들의 풍습에 강한 영향을 받아, 이 산당에서 주님께 그들의 제사를 즐겨 바쳤다. 그러나 이런 종교 형태는 당연히 예언자들의 혐오와 비난을 사게 되는데, 그들의 비판 운동은 당시는 그나마 힘이 있었다. 그래서 산당을 숭배하는 혼합주의는 그 이용자들에게 늘 혼란을 불러왔다. 그래서 히즈키야 통치에서부터(2열왕 18,4), 특히 기원전 622년 요시야 종교개혁 때부터 산당서의 제사를 금했다(2열왕 22,23; 특히 23,5.15.19 참조). 모든 경신례는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거행되었다. 산당의 이용이 완전히 근절된 시기는 바빌론 유배였다.

 

이렇게 그는 아버지 아사의 길에서 벗어나, 주님의 눈에 드는 옳은 일을 하였다. 그렇지만 산당들은 없애지 않아서인지는 몰라도, 백성은 여전히 자기 조상들의 하느님께는 마음을 굳게 두지 않았다. 아무튼 여호사팟은 이스라엘 임금 아하즈야와 동맹을 맺었는데, 아하즈야는 악을 저지르는 자였다. 그렇지만 그는 대담하게 화평을 맺었다. 이처럼 그는 형제국인 북이스라엘과의 교전을 중지시킨 첫 임금이다. 두 번이나 되풀이하여 이스라엘과의 조약이 언급된다(22,4; 2열왕 3,7 참조). 이 여호사팟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보여 준 무용과 그가 한 전쟁에 관한 것은 유다 임금들의 실록에 쓰여 있지 않은가? 더구나 그는 자기 아버지 아사의 시대에까지 남아 있던 신전에서 여자들을 위해 일하는 남창들을, 그 땅에서 쓸어버렸다(14,24; 15,12 참조).

 

그때에 에돔이라는 곳에는 임금이라는 조직은 아예 없이 성읍의 지방관만 있을 뿐이었다. 사실 에돔이 완전한 독립을 쟁취한 것은 유다 임금 여호람 치세 때의 일이다(2열왕 8,20-22; 2사무 8,14 참조). 그때에 여호사팟은 타르시스로 가는 상선들을 만드는 일에 아하즈야와 동맹을 맺고, 에츠욘 게베르에서 상선들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아합의 아들 아하즈야가 여호사팟에게 말하였다. “나의 종들이 임금님의 종들과 함께 상선을 타고 가게 하겠습니다.” 이렇게 여호사팟 임금은 타르시스 상선들을 만들어, 오피르에서 금을 가져오려고 여러 번 시도를 하였다.

 

그러자 마레사 사람 도다와후의 아들 엘리에제르가 여호사팟에게 이렇게 예언하였다. “임금님께서 아하즈야와 동맹을 맺으셨기 때문에, 임금님께서 만드신 것들을 주님께서 파괴하셨습니다.” 그 말대로 상선들이 부서져 타르시스로 갈 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그 말대로 상선들이 부서져 타르시스로 갈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은 그 상선들이 제련업의 중심지인 에츠욘 게베르에서 부서져, 그곳에는 가지를 못하였다. 이렇게 여호사팟은 솔로몬의 위대한 무역 업적들을 되살리려 수차 노력을 하였으나 끝내는 실패하고 만다. 여호사팟은 자기 조상들과 함께 잠들어 다윗 성에 조상들과 함께 묻히고, 그의 아들 여호람이 그의 뒤를 이어 임금이 되었다.

 

아합의 뒤를 이어, 유다 임금 여호사팟 제십칠년에 그의 아들 아하즈야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어, 두 해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계속]

 

[참조] : 이어서 ‘1. 아하즈야의 이스라엘 통치[2열왕]’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여호사팟,산당,에츠욘 게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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