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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 아하즈야의 이스라엘 통치 / 북 이스라엘의 멸망[1] / 2열왕기[1]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1-10-04 조회수836 추천수1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 아하즈야의 이스라엘 통치(1열왕 22,52-54; 2열왕 1,1-2)

 

아합의 뒤를 이어, 유다 임금 여호사팟 제십칠년에 그의 아들 아하즈야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어, 두 해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기원전 853-852). 이렇게 아합은 비록 전장에서 죽기는 하였지만, 그의 주검을 들짐승들이 먹어 치우지는 않았기에 아합의 죽음에 대한 엘리야의 예언이 모두 실현된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그의 아들 아하즈야 역시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그 애비 못지 않게 저질렀다. 그는 자기 아버지의 길과 자기 어머니의 길을 걷고, 이스라엘을 죄짓게 한, 느밧의 아들 예로보암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그는 바알을 섬기고 예배하여, 그의 아버지가 한 것과 똑같이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분노를 돋우었다.

 

아합이 죽은 그 무렵이 될 즈음, 인접한 모압이 이스라엘을 거슬러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대한 이스라엘의 토벌 작전은 아하즈야의 후계자 시대에 가서야, 유다 동맹군과 공동 작전으로 이루어진다(3,4-27 참조). 그 이유는 아마도 아하즈야가 거의 죽을병이 들어 모압의 반란에 적절히 대처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때에 이스라엘 임금 개인적으로는 참으로 불행하게도, 그는 사마리아에 있는 자기 옥상 방의 격자 난간에서 떨어져 크게 다쳤다. 그래서 그는 사자들을 보내며, “에크론의 신 바알 즈붑에게 가서 자신이 처한 병에서 회복될 수 있는지 문의해 보아라.” 하고 일렀다. 에크론은 필리스티아 사람들의 다섯 성읍 가운데 하나이다.

 

여기서 언급된 필리스티아인들이 믿는 신 바알 즈붑을 히브리 말로 직역하면 하루살이 파리들의 주인이 된다. 칠십인역은 이 이름의 뜻을 받아 파리들의 바알로 옮겼다(코헬 10,1; 이사 7,18 참조). 이는 필리스티아 신을 경멸하는 말장난일 것이다. 복음서 저자들도(마태 12,24; 마르 3,22; 루카 11,15 참조) 바알의 원래 이름인 베엘제불, 바알 군주에 관하여 언급한다. 베엘제불은 히브리 사람들이 팔레스티나에 들어오기에 앞서, 가나안 사람들이 숭배하던 신이었다(마태 12,24 참조). 사실 베엘제불이라는 이름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다. 다만 필리스티아 땅의 에크론의 신 바알 즈붑이 유일하다. 이렇게 그 어원이 어떠하든 간에, 예수님께서는 마귀들에 대해 아무런 권능도 지니지 못하고, 다만 그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그들을 조종할 뿐이라는 비난을 받으신다. 이에 그분께서는 그들을 심하게 꾸짖으셨다(마태 12,25-37 참조).

 

그러면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거슬러, 왜 반란을 일으켰을까? 사실 모압은 다윗 때부터 이스라엘에 조공을 바쳐왔다.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는 그만큼 막강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기운이 쇠퇴했다. 하느님의 은혜가 미칠 때에는 이스라엘도 강했고, 그 주변 국가도 이를 인정했다. 그러나 그 하느님의 백성이 우상 숭배에 빠져 몰두하는 동안, 그 우상 국가들마저 이스라엘을 경멸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쩌면 이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시련을 가하기 위해 주변 국가들을 이용했을 수도 있다. 이 시련을 통해, 당신 백성을 깨우치고자 했다.

 

그렇지만 모압의 이러한 반란을 이스라엘이 그저 곁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 반란을 강하게 진압하고자 했을 게다. 그렇지만 설상가상 그 즈음에 아하즈야에게는 참으로 불행하게도, 사마리아에 있는 자기 방에서 크게 다치는 일이 일어났다. 그래서 그는 그 계획을 실행할 수가 없었다. 그는 단지 침상에 누운 채 벽만을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고, 기력은 점차 쇠약해졌다. 하느님을 찾아 병의 차도를 호전시킬 방안을 찾을 만큼, 겸손은 아예 없었다. 그가 할 수가 있는 일은, 그저 자기 앞에 놓인 미래를, 어떻게든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아무튼 그는 하느님의 사람 엘리야를 통해 그분 말씀을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엘리야를 통해 그와 이스라엘의 미래를 대처할 수 있었지만, 그는 하느님께 자신을 낮출 만한 위인이 못되었다. 어쩌면 하느님께서 우상만을 섬기려는 아하즈야를 이미 버렸는지도 몰랐다. 이는 이방인 어머니 이제벨의 탓이기도 했을 수도. 그녀는 남편 아합을 자기 종으로 삼은 것처럼, 아들 아하즈야와 요람도 평생 종처럼 취급했을 수도 있었으리라. 그렇게 그녀는 철저히 우상을 따랐고 우상에게는 온갖 역겨운 짓을 서슴없이 자행했다. 그리하여 그녀의 설득으로 벽만을 바라보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아하즈야는, ‘하루살이의 신바알 즈붑을 찾도록 결정했다.

 

이렇게 이스라엘 임금 아하즈야의 잘못은 그의 앞날을 이민족 신에게 문의한 데 있다.[계속]

 

[참조] : 이어서 ‘2. 엘리야의 대답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아하즈야,엘리야,이제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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