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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7월 21일 야곱의 우물- 마태 12, 38-42 묵상/ 작디작은 표징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8-07-21 조회수466 추천수5 반대(0) 신고
                                                                  작디작은 표징
그때에 율법학자와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이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 그러나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사흘 밤낮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사흘 밤낮을 땅속에 있을 것이다.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마태 12,38-­42)
 
 
                                       
 
◆몇 번째였는지 그날도 병원에 실려 갔습니다. 어수선한 응급실 소음 사이로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제 맥박 소리를 들으며 누워 있었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해서 막 들어온 아이 부모가 비명을 지르고, 바로 옆 침대에 계시던 할머니는 중년을 넘긴 자녀들의 낮고 비통한 울음 속에 돌아가셨습니다.
 
젊은 의사와 간호사가 제 곁에서 무언가 묻고 약을 넣고 하는 동안에는 농담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가 있었습니다. 가까운 침대에서 큰 소리가 났습니다. “중환자를 두고 왜 와보지 않느냐?”면서 보호자가 항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제 곁에 있던 의사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이 환자가 더 위급해요.” 하는 게 아닙니까?
 
그때까지 멀쩡하던 저는 그 말을 듣고 비로소 죽음이 아주 가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두렵고 초조해졌습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은 “아직 준비가 안 됐어.”라지요. 저는 준비가 안 된 정도가 아니라 준비할 마음도 먹지 않은 채 살았습니다. 죄는 늘 다른 사람 탓이고, 악행은 습관이 되어 나날이 되풀이되었습니다. 몇 분 사이에 ‘어쩌지?’ 하는 생각에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본색이 들통 날 메일도 지워야 하고, 저한테 사기를 치고 도망간 어느 인간에게 마지막 저주의 말도 들려주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무엇보다 백만 년은 된 것 같은 마지막 고해성사 이래 지은 죄가 너무 많아서 “네 이놈, 우주 어디를 영원히 떠다녀라.” 하신대도 스스로가 ‘그래, 요렇게 될 줄 알았다.’라고 할 판이었습니다.
 
하느님이 안 계시는 곳으로 그냥 사라지는 거라면 그나마 낫겠다는 마음에, 이 나이에 쉽게 갈 길이 아니지 않느냐는 볼멘 심사가 섞였습니다. 한 번이라도 그 모습을 보이시거나 소리를 내어 “나 여기 있다.” 하셨으면 진즉에 정신을 차렸을 텐데, 하는 마음에 억울하기까지 했습니다.
 
분주하던 응급실이 좀 조용해진 틈에 살짝 졸고 있자니, 의사 한 사람이 다가와서 여전히 불규칙한 바이탈 사인을 지켜보고는 잠시 제 손을 잡았습니다. 그러고는 들릴락말락 몇 마디 웅얼거리더니 사라졌습니다. 그의 손에서 얼핏 묵주반지를 보았습니다. 얼마가 남았는지 모를 누군가의 생명을 위해, 아니 그의 죽음을 위해 기도하는 손이었습니다. 조금 마음이 누그러졌습니다.
 
이 누추한 지상 삶을 사랑으로 감싸 안는 사람들의 기도가, 그들의 손길이 바로 하느님의 작디작은 표징이 아닌가, 하는 작은 깨달음이 가슴을 채웠습니다. 그래도 그때뿐 좀 살 만해지면 다시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로 변하는 저를 오늘 예수님께서 다시 한 번 단단히 꾸짖으십니다. 꼭 버선목을 뒤집듯이 보여줘야 알겠느냐고 말입니다.
여상훈(도서출판 시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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