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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2월27일 야곱의 우물- 루카2,41-52/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9-12-27 조회수463 추천수3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다. 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에도 이 축제 관습에 따라 그리로 올라갔다. 그런데 축제 기간이 끝나고 돌아갈 때에 소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았다. 그의 부모는 그것도 모르고, 일행 가운데에 있으려니 여기며 하룻길을 갔다.
 
그런 다음에야 친척들과 친지들 사이에서 찾아보았지만,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를 찾아다녔다.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그는 율법 교사들 가운데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그의 말을 듣는 이들은 모두 그의 슬기로운 답변에 경탄하였다. 예수님의 부모는 그를 보고 무척 놀랐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하자, 그가 부모에게 말하였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갔다.
 
 
 
 
이스라엘 남자들은 모두 해마다 세 번씩, 곧 무교절과 주간절과 초막절에 하느님 앞에 나가야 합니다.(신명 16, 16) 예수님의 부모도 해마다 이 무교절, 곧 파스카 축제 때 예루살렘에 올라갔는데, 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 부모님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 축제에 참가했습니다.(루카 2, 41 – 42) 이스라엘 남자 아이들은 열세 살이 되었을 때부터 율법의 모든 규정을 지켜야 했지만, 마리아와 요셉은 율법을 지키는 일에 익숙해지도록 하기 위해 열두 살 된 아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누룩 안 든 빵을 먹는 파스카 축제는 칠 일간 계속되었습니다.(레위 23, 5 – 6)

그런데 축제기간이 끝나고 그들이 돌아갈 때,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루카 2, 43) 예수님이 어떻게 해서 부모님과 떨어지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모는 그것을 모르고 아들이 일행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하룻길을 갔습니다. 순례 여행에서 어린이들은 낮에는 일행 가운데에서 길을 가다가 저녁이 되면 어른들과 함께하는 것이 보통이었다고 합니다. 그들 일행은 나자렛에서 함께 떠난 친족과 친구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함께 순례하며 길동무를 하고 위험한 지역을 지날 때는 서로 보호하고 대항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서 하룻길을 내려오고 나서 예수님의 부모님은 친척들과 친지들 사이에서 예수님을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리아와 요셉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44 – 45절) 그리고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예수님을 다시 보게 됩니다.

이 이야기에서 성전은 제례와 관련된 장소라기보다는 예수님에게 배움의 장소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성전 바깥뜰은 율법 교사들이 율법을 가르치던 곳이었는데, 예수님은 율법 교사들 가운데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고 있었고, 예수님의 말을 듣는 사람들은 모두 그분의 슬기로움에 놀랍니다.(47절) ‘슬기로움()’ 은 지식보다 통찰력을 강조하는 말로 40절과 52절에 나오는 ‘지혜()’ 의 한 예로 나타납니다. 나중에 사람들이 그분의 가르침에 놀라워하며 “저 사람은 배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성경을 잘 알까 ?” 하고 말하자, 예수님은 “나의 가르침은 내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것이다.” (요한 7, 15 – 16) 하고 말씀하신 데서 그분의 지혜의 원천이 어디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걱정하며 찾아다니다가 마침내 성전에 계신 것을 발견하자 마리아와 요셉은 반가움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한편, 예수님께 얼마간의 꾸지람 섞인 물음을 합니다. 아들을 찾아 헤매면서 느낀 슬픔과 괴로움이 드러난 것이지요.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루카 2, 48)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은 복음서가 우리에게 전하는 예수님의 최초의 말씀입니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 (49절) 예수님의 자의식이 담긴 이 대답은 부모를 당황스럽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에는 장차 그분의 삶이 어떤 것인지 암시하고 있으며, 부모님이 당신이 있어야 할 곳을 알지 못하고 다른 곳에서 찾고 있었느냐는 가벼운 책망의 뜻도 숨어 있는 듯합니다.

마리아가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찾았다.’ 라는 말에 예수님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었다고 대답하면서 지상의 아버지에 하늘의 아버지를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모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합니다(50절). 자연적 가족관계를 초월한 예수님과 하늘 아버지와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나중에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접하면서 제자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루카 18, 34) 하느님의 신비와 계획은 그 본질에 도달하기 어렵습니다. 시간이 흘러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 사건이 일어나고 난 다음에야 그들은 비로소 그분께서 하신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부모님은 다시 나자렛으로 내려가 삽니다.(루카 2, 51) 그런데 성경은 여기서 예수님께서 부모에게 ‘순종’ 하며 살았다고 강조합니다. 아들이 어떤 존재인지 잘 모르는 부모였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순종합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이는 아버지를 공경하고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상전처럼 섬긴다. 말과 행동으로 네 아버지를 공경하여라.” (집회 3, 7 – 8)는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셨지요. 당신이 하늘 아버지의 아들임을 아셨지만, 육신의 아버지 어머니한테도 순종하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순종의 삶으로 예수님은 또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것을 입증하셨습니다. 곧 ‘아빠’ 하느님께 순종하면서 당신이 가야 할 길을 가신 것입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에게 일어난 이 모든 일을 마음에 간직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 목자들이 와서 경배하고 아기 예수님에 대해 하는 말을 들으며 그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던(루카 2, 19) 것처럼 말입니다. 제 마음속에도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겨 봅니다. 우리에게 오신 당신 예수님을 ….
강선남(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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