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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3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독서, 복음서 역주, 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1-10-22 조회수920 추천수1 반대(0) 신고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로마서 역주(8,1-11)

8

1 그러므로 지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이들에게는 아무런 단죄가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주는 영의 법이 당신을 죄와 죽음의 법으로부터 해방했기 때문입니다.

3 실상 율법이 육에 의해 약화하여 행할 수 없었던 것을 하느님이 (행하셨습니다). (이를테면) 하느님은 죄스러운 육과 같은 모습으로 또한 죄 때문에 당신의 외아드님을 보내시어 죄를 그 육안에서 단죄하셨습니다.

4 그것은 율법의 요구가 육을 따라서 (처신하지 않고) 영을 따라 처신하는 우리 안에서 충족되기 위함이었습니다.

5 실상 육을 따르는 자들은 육의 것에 관심을 두지만 영을 따르는 이들은 영의 것에 관심을 두기 때문입니다.

6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지만 영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

7 그렇기 때문에 육의 관심사는 하느님을 적대합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고 실상 복종할 수도 없습니다.

8 육 안에 있는 자들은 하느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9 그러나 여러분의 경우에 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지 않고 있다면 그는 그분께 속하지 않습니다.

1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비록 몸은 죄 때문에 죽어 있지만 영은 의로움 때문에 생명을 가집니다.

11 예수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신 분의 영이 여러분 안에 거처하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신 분은 여러분 안에 살고 당신의 영을 통해 여러분의 죽은 몸도 살리실 것입니다.

 

 

독서 주해

생명의 영을 따르는 현세의 삶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구원하겠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8.1-13에서 제시한다. 하느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죄스러운 육 안에 있는 죄를 파괴하여 사람들을 죄와 죽음의 율법에서 구원하셨다. 육의 지배에서 해방된 그들은 영의 힘으로 이 자유를 지속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

 

하느님의 영을 통해 그들 안에 구원의 힘으로 현존하시기 때문이다(1-4). 죄스러운 육에 따라 사는 삶은 하느님을 적대시하고 그분의 율법을 통해 하느님과 그리스도와 실치하는 새로운 삶이다. 육적 생활은 죽음을 초래하고 영의 힘에 순응하는 생활은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준다(9-13).

 

1

단죄는 하느님의 심판을 뜻한다(5,16,18).

 

2

직역하면 생명의 영의 법”,“생명의 영은 예수를 죽은자들 가운데서 부활시키신 하느님의 영이다. “영의 법은 하느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9)이라는 말과 통한다.

 

영의 법과의 대조 때문에 죄와 죽음의 율법보다 죄와 죽음의 법으로 번역하는 것이 낫다(7.23 참조).

 

그리스도가 성취하신 자유는 생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에게 실현된다.

 

3

윫법은 죄의 지배를 받는 인간조건 때문에(7.22-23 참조) 사람을 죄와 죽음에서 자유롭게 할 수 없다.

 

죄스러운 육은 직역하면 죄의 육”.

 

죄스러운 육과 같은 모습으로라는 말은 그리스도가 죄를 짓지는 않고 죄를 지향하는 인간조건을 취해 사람이 되시어 죄의 결과와 죽음을 당하신다는 것을 뜻한다. 이 말의 뜻은 죄를 짓는 사람의 죄스러운 육과는 다르다.

 

죄 때문에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속죄행위를 가리킨다.

 

육 안에서라는 말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의 몸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죽으심과 부활로써 죄의 세력을 파괴하셨기 때문이다.

 

4

영을 따라 처신하는을 직역하면 걷는

 

율법의 의당한 요구는 하느님의 법정에서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속죄적 죽음으로 실현되었으며 그리스도인이 성령에 따라 사는 생활 안에서 구현된다(8,2,11 참조).

 

5

육을 따르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구원은총으로 성화하지 않은 자들을 지칭한다.

 

육의 것은 하느님을 등지고 이웃에 대해 무관심한 이기적 생활을 뜻한다.

 

갈라 5.19-21.22-23 참조.

 

6

그리스도의 영은 수제자 안에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영으로서 그에게 생명을 베푼다(6.22-23;8.11 참조).

 

평화5,1-2 참조.

 

7

5.10 참조.

 

8

육 안에 있는 자들육을 따르는 자들”(5)로서 죄의 지배를 받는 자들을 가리킨다.

 

9

세례받은 이는 이 영 안에. 즉 생명의 영역에 산다(15절 참조).

 

그리스도께 속하기 위해 그분의 영적 힘에 예속되어야 한다. 9절에서 ”, “하느님의 영그리스도의 영이 번갈아 나온다. 이 두 경우는 같은 영을 지칭한다.

 

10

그리스도와 신자의 일치는 세례를 통해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함으로써 이루어지고(6.1-11) 그분의 영에 순응하는 생활에서 구현된다(8.9).

 

죽어 있지만6.21-23 참조.

10절에서 대조된 것은 영이 사람의 영적 기능을 뜻한다고 여길 수 있게 한다. 사람의 영은 죄 때문에 시체와 같이 된 몸과는 달리 그리스도의 영의 힘으로 생명을 가진다.

 

그리스도의 속죄적 죽음과 부활로 창조된 의로움의 결과는 생명이다(2). 의로움은 세례를 통해 이러한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부여되고 그 결과로서 그들은 생명을 누린다.

 

11

에제 37.14 참조.

이제 37.6.14;1데살 4.14; 갈라 6.8; 필립 3.10.21; 1고린 6.14; 2고린 4.14 참조.

 

 

 

 

루가 복음서

루가복음 역주(13,1-9)

13

1 바로 그 때에 어떤 사람들이 와서는 갈릴래아 사람들의 일을 예수께 알려 드렸다. 사실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의 피를 (흘려) 그들의 제물에다 섞었던 것이다.

2 그러자 대답하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저 갈릴래아 사람들이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큰) 죄인들이라서 그런 변을 당한 줄로 생각합니까?

3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여러분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입니다.

4 또한 실로암에 있는 탑이 무너지면서 깔아 죽인 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빚을 진 이들이었다고 생각합니까?

5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여러분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입니다.”

6 그러고서는 이런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원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가서 그 나무에서 열매를 찾아 보았지만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7 그래서 그는 포도원지기에게 말했습니다. ‘도다시피 삼 년이나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찾아 조지만 발견하지 못하니 이것을 잘라 버리시오. 무엇 때문에 땅만 썩이겠습니까?’

8 그러자 포도원지기는 대답하여 그에게 말했습니다. ‘주인님, 이 나무를 금년만 그냥 두십시오. 그 동안에 그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

9 그렇게 하면 아마 내년에는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것을 잘라 버리시지요.’”

 

 

복음서 주해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

13.1-5는 루카 특수자료. 상황묘사로 시작하여 말씀으로 끝맺는 까닭에 상황어 양식에 속한다.

 

1

요세푸스의 유다고사에 이와 비슷한 참변이 전해온다. , 빌라도 총독은 35년 가리짐 산으로 제사 지내러 올라가던 사마리아인들을 대량으로 학살했다는 것이다. 그처럼 빌라도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희생을 짐승을 몰고 가던 갈릴래아인들, 또는 그 짐승을 바치던 갈릴래아인들을 무참히 살육했던 것이다.

 

2

죄를 지으면 현세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다고 바리사이들은 생각했다. 바꾸어 말하면 불행은 죄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들의 현세적 인과응보 사상이 요한 9,2-3에 잘 드러난다.

 

3

회개하지 않으면 저 갈릴래아인들처럼 현세에서 멸망한다는 뜻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현세적 징벌을 선언하신 적도 없다. 오히려 예수께서는 회개하지 않는 이들에게 종국적인 멸망, 곧 종말심판을 예고하셨다.

 

4

실로암은 예루살렘 시내 동남부에 있는 저수장이다. 다윗이 점령하여 수도로 삼은 예루살렘에는 기혼이란 샘 하나만 있었다. 그 샘은 예루살렘 동쪽 성밖에. 곧 키드론 골짜기에 있는 까닭에, 시민들이 물을 길으러 다니기도 어려웠을뿐더러 만일 적군이 샘을 점령하는 경우에는 식수를 구할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유다 임금 히즈키야는 땅굴을 뚫어 성밖의 기혼 샘물을 성안으로 끌어들이고 실로암 저수장을 만들었다. “실로암에 있는 탑은 아마도 실로암 부근 성벽의 탑이었을 것이다.

 

열매맺지 않는 무화과나무 비유(6~9)

13.6-9의 비유는 루카복음에만 나오는 특수자료.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백성을 뜻한다. 그리고 열매 맺지 않는 나무를 잘라 버린다는 소재는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종말에 단죄의 심판을 받는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으레 역점이 끝에 있는 법. 따라서 8-9절에 비유의 뜻이 잘 드러난다. “... 금면만 그냥 두십시오. ... 내년에는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것을 잘라 버리시지요,”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할 기회를 한 번 더 주신다. 그러니 지금 회개하지 않는다면 종말심판을 면할 것이 없다. 이것이 비유의 뜻이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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