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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원한 희망의 표지" - 8.15,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8-08-15 조회수550 추천수3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8.8.15 금요일 성모 승천 대축일 
                                              
요한 묵11,19ㄱ;12,1-6ㄱ.10ㄱㄴ 1코린15,20-27ㄱ 루카1,39-56

                                                      
 
 
 
"영원한 희망의 표지"
 


답답할 때 마다 저절로 눈 들어 산과 하늘을 바라보게 됩니다.

희망을 찾는, 빛을 찾는 본능적 욕구입니다.
더불어 입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흥겨운 시편입니다.

“산들을 우러러 눈을 드노라. 어데서 구원이 내게 올런고?
  구원은 오리라 주님한테서, 하늘 땅 만드신 그 임한테서.”
  (시편121,1-2).

하느님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하느님이 우리의 빛입니다.

오늘은 성모 승천 대축일입니다.
세상의 기쁨이며 하늘의 샛별이신 창조주 어머니,
동정 마리아의 승천을 통해 찬연히 빛나는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희망의 표지인 성모님이십니다.
죽음과 죄악의 세력에 대한 하느님의 결정적 승리를 상징하는
성모승천입니다.

기뻐하십시오.
 
오늘 동정녀 마리아 하늘에 올림을 받으셨습니다.
거기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다스리고 계십니다.
 
동정 마리아의 영광을 보고
온 세상과 더불어 천사들이 기뻐하며 대천사들도 기뻐 뛰놉니다.
 
사필귀정입니다.
 
당신께 충실했던 여종, 동정 마리아를 승천으로 보답하신 하느님이십니다.
 
믿는 이들의 미래를 예표 하는 성모승천대축일입니다.
과연 어떻게 살아야 우리도 성모님처럼 승천할 수 있겠습니까?

믿음으로 살아야 승천입니다.
믿는 사람들의 죽음,
육안으로야 죽음이지만 영안으로 보면 승천입니다.

하늘에서 불러 가셨다는 소천(召天),
하늘로 돌아갔다는 귀천(歸天)이란 말,
모두 믿는 이들의 승천의 죽음을 암시합니다.
 
그러니 이런 믿음을 지닌 이들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미 지금 여기서 죽음을 넘어 영원을 삽니다.

믿음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였습니다.

탓할 것은 하느님도 남도 아닌 바로 믿음 약한 나요,
하느님께 청할 것은 단 하나 믿음의 은총입니다.
 
믿는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했습니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에우고 있듯이
주께서 믿는 이들을 늘 감싸 주십니다.
 
하느님을 믿을 때 하느님의 힘은 그대로 나의 힘이 됩니다.
 
하느님의 힘을 끌어 쓰게 하는 믿음인 데
감히 누가 이런 믿는 이를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의 권능과 섭리에 대한 철석같은 믿음입니다.
 
요한과 바오로의 믿음이 참 놀랍습니다.
믿음의 사도 요한에게 천상에서 들려온 목소리였습니다.

“이제 우리 하느님의 구원과 권능과 나라와
  그분께서 세우신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다.”

다음 바오로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
하느님께 대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권세와 모든 권력과 권능을 파멸시키시고 나서
  나라를 하느님 아버지께 넘겨 드리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파멸되어야 하는 원수는 죽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그의 발아래 굴복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의 승천에 이어 성모님의 승천으로
마지막 원수인 죽음을 정복하신 하느님이십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엘리사벳의 진심에서 울어난 찬사를 받으신,
믿음의 성모 마리아였습니다.

찬미의 삶을 살아야 승천입니다.

믿음은 저절로 하느님 찬미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수도자뿐 아니라 모든 옛 신앙 선배들 한결같이 찬미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찬미의 기쁨, 찬미의 행복, 찬미의 아름다움입니다.
하느님 쪽으로 부단히 우리를 고양(업그레이드)시키는 찬미의 기도입니다.
 
내적 치유와 변화로 우리의 운명을 바꾸는 찬미의 삶입니다.
‘그래서’ 찬미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찬미입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성모마리아의 삶, 기구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좋아서 찬미하기로 하면 좀처럼 그런 좋은 때 오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 찬미할 것 찾으면 끝이 없습니다.
이래야 긍정적 낙관적 삶입니다.
 
슬픔은 기쁨으로,
절망은 희망으로,
어둠은 빛으로,
죽음은 생명으로 바뀝니다.
 
매일 저녁 기도 때 마다
성모님과 함께 오늘 복음의 찬미가,
마니피캇을 바치는 우리 수도자들입니다.
 
온통 자비하신 하느님,
전능하신 하느님,
공정하신 하느님,
정의로운 하느님께 대한 찬미와 감사의 기도가 아닙니까?
 
이런 찬미와 감사의 기도와 더불어 성장 성숙되는 믿음입니다.
 
절망의 어둔 세상을 부단히 희망으로 빛으로 밝히는
하느님 찬미의 기도입니다.
 
찬미의 등불 꺼지면 온 세상은 무의미와 허무주의,
절망의 어둠이 덮어 버릴 것입니다.


겸손의 삶을 살아야 승천입니다.
하느님 앞에 설 때 저절로 겸손과 진실입니다.
 
믿음과 찬미의 삶과 함께 가는 겸손입니다.
허영과 교만의 착각과 환상에서 벗어날 때 겸손입니다.
 
성인성녀들의 기본자세가 겸손이었습니다.
참 영성의 시금석과도 같은 모든 덕의 어머니 덕이 겸손입니다.

성모님은 겸손으로 제자리에 내려갔기에 하늘로의 승천이었습니다.
 
영적 진리는 이처럼 언제나 역설적입니다.
내려감으로 올라가는 겸손입니다.
 
내려가지 않고 계속 올라가는 교만의 사람들에게 승천은 없습니다.
겸손으로 내려감의 끝은 천국이지만,
교만으로 올라감의 끝은 지옥입니다.

바로 성모님의 찬가가 생생한 증거입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교만한 자들을 내치시고 겸손의 자를 들어 높이시는 주님이십니다.
 
있는 자들, 권력자들 교만하기 십중팔구입니다.
겸손으로 내려오지 않으면, 나누지 않으면 결코 주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그 재산, 권력 부지하기 힘듭니다.
교만할수록 유혹도 많지만 겸손할수록 유혹도 적습니다.


희망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희망의 끈, 하느님을 놓치면 절망의 나락입니다.
 
지난 8.9일 숨을 거둔 팔레스타인의 민족시인
마무르 다르위시의 감동적인 말이 생각납니다.
“시는 자유를 찾는 거대한 광기입니다.
  아무리 삶이 칠흑같이 어둡더라도
  그 안에서 빛을 찾고 희망을 만드는 게 시인의 사명입니다....
 
우리에게는 희망이라는 불치의 병이 있습니다.”

희망 있어 비로소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의 시편들, 자유를 찾는, 하느님을 찾는 거대한 광기입니다.
 
삶이 칠흑같이 어두워도
그 안에서 빛을 찾고 희망을 만드는 찬미의 사람들인 우리들입니다.
 
희망이라는 불치의 병을 치유해주실 분은 단 한분 하느님뿐이십니다.

성모마리아, 우리의 영원한 희망의 표지입니다.
바라볼 것 없는 세상에 하느님 주신 참 좋은 선물,
승천하신 성모마리아입니다.
 
믿음과 찬미, 겸손의 삶으로
승천의 하늘 길을 활짝 열어 주신 성모 마리아입니다.
 
우리 모두 모든 천사들과 함께
성모마리아를 하늘에 불러올리신 하느님을 찬미하며
기쁨 가득한 마음으로 이 거룩한 미사를 봉헌하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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