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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의 정의와 인간의 정의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12-19 조회수816 추천수1 반대(0) 신고

 

 

어제 새벽 4시에 전주교구 정읍에 사시는 한 자매님으로부터 카톡이 하나 왔습니다. 하느님의 정의와 공정, 세상이 말하는 정의와 공정에 대해 혹시라도 아는 게 있으면 좀 설명을 해줬으면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제가 참 어려운 질문 같지만 묵상을 해보고 한번 답변을 드려보겠다고 했습니다. 좋은 묵상거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좀처럼 묵상이 쉽지 않았습니다. 하루가 지나서 간단하게라도 제가 조금 전에 카톡으로 저의 짧은 소견을 보내드렸습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씀드렸습니다. 바로 답장이 왔습니다.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셨다고 하셔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제가 그 내용을 그대로 카피해서 공유를 하겠습니다. 부족한 내용이지만 도움이 되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형제님,

오늘 독서에 '공정과 정의' 라는 말이 나오는데 성경에 나오는 '공정과 정의'와 세상에서 말하는 공정과 정의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이해가 될 듯하다가도 누군가 물으면 똑부러지게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자매님,

질문하신 문제 묵상을 하긴 했지만 이건 상당히 어려운 묵상입니다. 답이 여러 가지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간략하게 먼저 제 생각을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정의와 공정은 말그대로 세상이 정한 기준과 원칙이 있으면 그 기준에 따라야 하고 치우침이 없는 게 세상의 기준에서는 정의와 공정이 될 것입니다. 법에서도 눈물이 있다고 하는 말이 있죠. 이 말을 한번 되새겨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전에 법 관련 드라마 같은 걸 봐도 그런 예가 나올 겁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겠습니까?

 

법대로 한다면 법이 정한대로 해야 되겠지만 그 법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건 인간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보조적으로만, 최소한의 한도 내에서만 적용이 되어야 하고 그 범위를 벗어나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에도 양형을 할 때에 형법에도 있습니다만 그에 해당하는 게 정상참작입니다. 이런 예를 보게 되면 하느님의 정의와 공정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정의와 공정을 마치 우리가 최후에 하느님 심판대에 서게 되었을 때를 만약 가정하고 설명해보겠습니다. 원리 원칙대로라면 성경에서 나오는 정의와 공정의 잣대라고 한다면 이 세상 그 어떤 사람도 아마 죽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건 인간의 기준에서 바라본 하느님의 정의일 것입니다. 하느님 입장에서 정의와 공정은 아마 다를 것입니다. 성경을 먼저 잠시 보겠습니다. 돌아온 탕자와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과 포도밭 일꾼 복음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작은 아들은 세상 기준으로 정의와 공정의 잣대로 보면 천하의 불효 자식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에서 보면 어떤가요? 아버지가 집 나간 아들을 기다려주십니다. 그리고 용서한다는 말씀도 없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그저 아버지 품으로 돌아온 것만으로 다 고맙다고 할 정도로 사랑으로 그 모든 걸 감싸안으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큰 아들은 아버지의 이런 태도에 불만을 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큰 아들이 불만을 가졌던 태도가 바로 인간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큰 아들의 입장이 세상의 기준으로 보는 정의와 공정에서는 어쩌면 정상적인 태도라고 해도 크게 지나친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포도밭 일꾼의 복음에서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아침 일찍 나간 사람이나 중간에 간 사람이나 마지막 파장할 무렵에 나간 사람이나 다 한 데나리온에 임금을 쳐줬습니다. 이걸 세상의 기준에서 보면 정의와 공정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일한 만큼 받아야 할 것입니다. 일찍 와서 일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에게 더 많은 돈을 지급해야 하는 게 정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불만을 가졌을 겁니다. 이 상황에서 늦게 온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땠을 것 같습니까? 포도밭 주인이 너무나도 감사했을 것입니다. 자기는 얼마 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 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자기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지급해주셨으니까 정말 감사한 일이겠죠. 이걸 세상 기준으로 보면 공정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 기준에서 보면 바로 자비와 연민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파장할 무렵에 비록 와서 일하고 가지만 그 사람도 하루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인데 그 사람에게 딸린 처 자식도 있을 테니 그 자식과 처를 생각하면 그와 같이 대우해주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보면 포도밭 주인이 한 말이 있잖습니까? 불만을 토로한 사람에게 자네와 나는 계약한 대로 지급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고 주인 입장에서 내가 내것 가지고 내 맘대로 하는데 그게 무엇이 잘못됐냐는 그 내용을 보시면 그 속에도 하느님의 정의와 공정은 인간의 기준에서 보는 정의와 공정과는 구별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살펴보겠습니다. 만약 세상의 기준에서 본다면 돌로쳐라고 해야 했을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고 했습니다. 그때 보면 나이 많은 자부터 현장에서 빠져나갔습니다. 이건 무엇을 상징할까요?

 

인간의 시각으로 보면 그걸 고발한 사람은 어떤 입장에서 했다고 볼까요? 아마도 정의의 사도와도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다고 볼 수 있겠죠. 근데 여기서 예수님의 모습을 한번 보시면 어떤가요? 너네들도 그 여인을 탓할 자격이 없다는 뜻이지 않겠습니까? 인간 세상에서 정의와 공정이라는 잣대도 만약 적용하려면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적용해야 그것도 정의와 공정에 부합하겠지만 내로남불처럼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내로남불은 하느님의 정의와 공정과는 정말 거리가 먼 것입니다. 비근하게 세 가지의 예만 들었습니다.

 

사실 하느님의 공정과 정의를 인간 세상에서의 공정과 정의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해답은 무궁무진할 것입니다. 일단 이 정도 이런 선에서만 이해를 해도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말 미천한 생각이지만 제 생각이 맞는지도 모릅니다. 이건 지극히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근 하루 만에 묵상한 내용이라 당연히 많이 부족할 것이지만 저도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많이 고민해보고 묵상해보겠습니다. 차후에 또 보완할 내용이 있으면 그때 제 생각을 첨언해드리겠습니다. 아무쪼록 부족한 내용이지만 질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덕분에 저도 좋은 묵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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