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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8-08-15 조회수783 추천수14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8년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 가해
 
 
 
My soul proclaims the greatness of the Lord;
my spirit rejoices in God my Savior
for he has looked with favor on his lowly servant.
From this day all generations will call me blessed:
the Almighty has done great things for me
and holy is his Name.
(Lk.1.46-49)
 
 

제1독서 요한묵시록 11,19ㄱ; 12,1-6ㄱ.10ㄱㄴ
제2독서 코린토 1서 15,20-27ㄱ
복음 루카 1,39-56
 
 
음식에는 종류에 따라 각자 맛있게 느껴지는 온도가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물맛은 섭씨 13도 일 때가 가장 맛있다고 하지요. 깊은 우물의 물이 시원하고 맛있게 느껴지는 이유 역시 그 온도가 13도에서 15도 사이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물이 가장 맛이 없는 온도는 35도에서 40도 사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체온(37.5도)을 중심으로 하는 온도일 때 가장 맛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커피의 온도는 63도에서 64도가 될 때 가장 맛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문득 인간이 이 세상 안에서 삶의 희망을 간직하고 살 수 있는 온도는 몇 도일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이 가득한 좋은 환경일까요? 아닙니다. 인간이 삶의 희망을 간직하고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때는 ‘고통과 시련’을 받을 때라고 합니다. 즉, 고통과 시련 때문에 인간은 삶의 희망을 간직하고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원양어선을 타고 고기를 잡아 오는 사람들이 고기를 죽이지 않고 살려서 갖고 오는 방법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이 고기들을 위해서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고급스러운 배를 만들고 또 먹을 것도 넉넉하게 넣어 줄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고기들이 있는 곳에 고기를 잡아먹는 습성을 가지고 있는 메기를 같이 넣어준다고 합니다. 따라서 다른 고기들은 메기에게 잡혀먹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피하면서 긴장을 할 수밖에 없겠지요. 이러한 긴장의 연속 가운데 죽을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고기를 살리는 방법은 좋은 환경도 또 풍성한 먹거리도 아닌 ‘고통과 시련’이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때로는 우리 인간들을 살리시기 위해서 이 방법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성모승천 대축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즉, 하늘에 오르신 성모님을 기억하면서 찬미를 드리는 날입니다. 사실 하늘에 오르시는 장면을 떠올리면 얼마나 영광스러워 보입니까? 그런데 이러한 영광이 있기 전에 성모님의 삶 안에서는 커다란 ‘고통과 시련’이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나이로 중학교 2학년 때 미혼모가 될 뻔합니다. 결혼도 아직 하지 않았는데,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잉태하게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첫 번째 아기인 예수님을 시설이 잘 갖추어진 깨끗한 곳에서 낳은 것이 아니라, 냄새 나고 지저분한 마구간에서 나을 수밖에 없었지요. 또 산후 조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헤로데 임금을 피해서 고향을 떠나 낯선 에집트로 피난도 가야만 했습니다.

한편 자신을 믿고 따라준 유일한 후원인인 요셉이 일찍 주님 곁으로 가서 과부가 됩니다. 성경 속에 나타난 가장 가난한 사람이라고 하면 이방인, 고아, 그리고 과부라고 하지요. 성 차별이 심한 이스라엘에서 남편 없이 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지요. 바로 성모님께서는 남편이 없이 살기 힘든 사회에서 혼자서 삶을 이끌어가야 하는 고통과 시련의 삶 가운데 계셨던 것입니다.

이제 믿을 것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뿐이었지요. 그런데 그 아들도 서른이 되자 집을 나갑니다. 또 어느 날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미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더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은 ‘유다인의 왕’이라는 죄목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들의 죽음을 직접 목격해야 하는 어머니. 과연 행복해 보입니까?

그렇습니다. 성모님의 삶은 결코 평안한 삶이 아니었지요. 그래서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는, ‘고통과 시련’이 끊이지 않는 눈물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서 원양어선의 고기를 살리는 방법이 좋은 환경도 풍성한 먹거리도 아닌 ‘고통과 시련’이라고 말씀드렸지요. 이처럼 주님도 우리 인간을 살리시기 위해서 이 방법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고통과 시련이야말로 인간이 희망을 간직하고 살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온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고통과 시련을 이겨내었을 때, 커다란 기쁨과 영광을 체험할 수 있음을 성모님의 삶을 통해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고통과 시련이 바로 삶의 희망이다.’ 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통과 시련이 있음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이 고통과 시련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한 주님의 깊은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고통과 시련이 있음에 감사의 기도를 바칩시다.





희망을 담았습니다(‘좋은 글’ 중에서)
 
내 마음의 그릇에 희망을 담았습니다
부푼 마음으로 꼬옥 접어서
마음 한켠에 담은 희망은

작은 설레임과 함께 삶의 원동력이 되어
오늘이 그리고 내일이 기대됩니다

희망과 함께 담은
나의 작은 소망들도 들어 있습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흔들리는 마음과 행동들
그로 인해 아름다운 결실을 맺지 못한 아쉬움!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와의 기나긴 싸움에서
이겨내고 싶은 소망입니다

모든 문제의 원인과 결과는 나였으므로
나 자신을 잘 다스릴 줄 알며
결과를 미리 예측하며 행동하려고 합니다

지금 다짐한 부푼
희망의 그릇에, 소망의 그릇에
지극히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담을 것입니다
 
 
 
 
     
Prelude Pour Piano - Saint Pre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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