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상실의 슬픔, 충분히 슬퍼해야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2-11-25 조회수463 추천수5 반대(0) 신고
찬미예수님!

화나면 화내고 힘들 땐쉬어

홍성남 신부 지음
01. 행복해지고 싶어?
생긴 대로 살아 
자신이 만들어놓은 틀에 억지로 맞추려고 하다보니 탈이 납니다. 둥근 사람은 둥글게, 모난 사람은 모나게 살면 살맛이 납니다. 모든 사람이 긍정적으로 살 필요도 없습니다. 슬플 땐 울고, 화나면 화내야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상실의 슬픔, 충분히 슬퍼해야

어느 시골 성당에 못 말리게 고집 센 터줏대감 영감님 한 분이 있었습니다. 어느 본당에나 있게 마련인 터줏대감들처럼 영감님 도 믿음의 지도자, 수호자로 자처하며 신자들은 물론 신부까지 가 르치려 들었습니다. 또 신자들이 힘들어하는 기색이라도 보일라 치면 대뜸 윽박부터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믿음이 약해서야 원! 순교자의 후손인 천주교인이라 할 수 있겠나?" 기르던 개가 죽어 슬퍼하는 사람한테는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닌 데 왜 울고 난리야!" 자식이 죽어 비통해하는 사람한테는 "다 하느 님의 뜻이고, 천당에 갔을 텐데 울기는 왜 울어!" 하고 야단을 치 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장례미사에서도 곡소리 한 번 내지 못할 정도로 영감님을 무서워했습니다. 어느 날 영감님이 오랫동안 애지중지하던 개가 죽고 말았습니 다. 영감님은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지만 그동안 사람들한테 한 말이 있어 차마 울지는 못하고 혼자 복장만 터져 하고 있었습 니다. 개 문상을 온 본당신부가 이런 영감님의 모습을 보고 말했 습니다. "자식이 죽은 것도 아니고 개 한 마리가 죽었을 뿐이니 슬퍼할 일 이 아닙니다. 또 비록 개일지라도 다음 세상에 잘 태어나려면 나름 선행을 해야 하니, 죽은 개가 보시할 수 있게 보신탕거리로 내놓으시지요." 평소 영감님에게 믿음이 약하다는 핀잔을 들어 약이 올라 있던 본당신부의 말에 영감님은 아무 소리도 못하고 개를 내놓았습니 다. 그러고는 신자들이 보신탕 잔치를 벌이는 꼴을 보다가 그만 화병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죽어서도 자신의 개로 보신탕 잔치를 벌인 본당신부의 처사에 화가 안 풀린 영감님은 급기야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예수님, 그놈의 본당신부 좀 어떻게 해주세요. 화가 나서 못 견 디겠습니다." "그럼 내가 퀴즈 하나 내겠다. 맞히면 내가 본당신부를 혼내주 겠다. 하지만 못 맞히면 네가 혼난다." "무슨 퀴즈인데요?" "어떤 사람이 이웃집의 가족이 죽어서 문상을 가 펑펑 울었다. 정상이냐, 비정상이냐?" 영감님은 평소 소신대로 대답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천당에 갈 터이니 기뻐해야 할 일이지요. 그런 데 남의 집 식구 죽은 것까지 서러워하는 놈이라면 그게 미친놈이 지 제정신이겠습니까?" "마르타와 마리아의 오빠 라자로가 죽었을 때 나는 슬퍼서 울었 다. 그럼 내가 미친놈이란 말이냐? 너같이 가슴이 메마른 놈은 세 상살이를 다시 배워야 한다." 예수님은 퀴즈를 못 맞힌 영감님을 본당신부의 집 강아지로 환 생시키셨지요. 본당신부는 팔월에 보신탕을 하겠다는 의미로 강 아지의 이름을 팔복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 강아지 를 보며 입맛을 다셨습니다. 강아지가 된 영감님은 매일 신세를 한탄하며 살다가 팔월이 되기 전에 화병으로 또 죽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얻는 것도 있지만, 내 손에서 떠나가는 것, 잃어버리는 것도 적지 않습니다.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키우던 애완동물이 죽거나 혹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기도 합니다. 이런 때 드는 감정이 바로 비애입니다. 비애에 빠지면 우선 마음이 뒤죽박 죽됩니다. 마치 풍랑을 만난 배처럼 마음속은 하루에도 몇 번씩 뒤집어집니다. 사소한 일도 곱씹고 또 곱씹느라 탈진 상태가 되어 생각하는 데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넋이 나간 듯이 엉뚱한 소 리를 하고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무엇이든지 먹어치 우든지 아예 먹질 않든지, 아니면 너무 많이 자거나 아예 자질 않 습니다. 도움을 주려는 사람을 멀리 하거나 반대로 의존적이 되어 한사코 매달립니다. 종교적 믿음에 심각한 의문을 품고 하느님과 교회를 비난하는가 하면 지나치게 신앙생활에 심취해 가사를 돌 보지 않는 지경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주위에서는 섣부른 충고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 잊히게 마련이다, 세월이 약이다. 심지어 모든 것이 다 주님의 뜻이다. 믿음이 부족하거나 마귀가 유혹해서 그렇다고 장 광설을 늘어놓기도 합니다. 이런 충고들은 비애에 빠진 이들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심리적 부작용을 부추깁니다. 무언가를 잃은 후 비애와 슬픔을 느끼는 것은 믿음이 약해서도 아니고, 마귀의 유혹을 당해서도 아닙니다. 비애는 저주처럼 느 껴지지만 실제로는 축복입니다. 비애는 엄청난 상실감을 겪은 사 람이 어두운 심리적 터널을 통과해 다시 살아가도록 돕는 감정적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비애를 그냥 내버려두면 되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 다. 비애도 다른 감정과 마찬가지로 신중하게 잘 다루어야 합니 다. 우선 끝까지 비애를 겪어보자고 결심해야 합니다. 비애는 회 피한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훗날 반드시 다시 나타나 우리가 쓰러질 때까지 집요하게 공격합니다. 비애를 회피하지 않고 대면하는 방법으로, 잃어버린 것의 목록 을 만들어 충분히 슬픔을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잃어버린 것을 반복적으로 생각하고 점검하는 과정을 거치면 잃어버린 것에 대 하여 둔감해지고,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을 물리칠 수 있 습니다. 어쩌면 비애란 충분히 애도되지 못한 슬픔 때문에 생기는 감정 일 수 있습니다. 상실했다면 충분히 슬퍼하십시오. 슬픔을 억누르 지 마십시오. "살다보면 상실을 겪고 그것은 비애를 불러일으킵니다. 이때 충분히 슬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비애는 훗날이라도 반드시 나타나 우리가 쓰러질 때까지 집요하게 공격할 것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