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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제 68 - 77항)
작성자장선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8-08-14 조회수499 추천수1 반대(0) 신고

제 2 장


마리아께 대한 신심의 기본 진리



둘째 진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마리아의 것이다


68 


우리에게 있어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는


바오로 사도가 말씀하신 것과 같이(1고린 6, 19-20)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주님의 성혈을 대가로 치르고 무한히 비싸게 사들여진


 그분의 종으로서 전적으로 그분의 것이다.


세례받기 전에 우리는 마귀의 종으로서 마귀에게 속해 있었으나


세례를 통하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다운 종이 되었다.


그리하여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열매 맺는 것을 제외하고는 우리는 그분을 찬미하고 우리 영혼 안에서


그분만이 우리를 다스리시게 하기 위하여 살고 일하고


죽을 모든 권리를 예수님께서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그분께서 싸워서 얻은 백성, 즉 그분의 전리품이며


그분의 유산이기 때문에, 우리의 육신으로는 그분께 영광을 드리고,


 영신 생활에 있어서는 우리를 다스리는 주인으로 모셔야 마땅할 것이다.


같은 이유로 성령께서는 우리를 다음과 같이 비유하신다.


1) 


우리는 '교회'라는 밭에 은총의 강을 따라 심어져


제때에 열매를 맺어야 하는 나무이다(시편 1, 3참조)


2)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포도나무 줄기에 달려,


 좋은 포도송이를 맺어야 하는 가지이다(요한 15, 2참조)


3)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목자에 의해서 번식되고


젖을 내어야 하는 양 떼들이다(요한 10, 11 참조)


4) 


우리는 하느님께서 그 농부이신 땅에 경작되어 30배, 60배,


혹은 100배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 좋은 땅이다(마태 13, 8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열매 맺지 않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고


(마태 21, 19 참조), 자기가 받은 달란트를 불리지 않은 게으른 종을 벌하셨


다(마태 25, 24-30 참조),


이러한 모든 비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잘것없는 인간들로부터 어떠한 결실,


즉 우리의 선행을 받기를 원하시는데,


 그것은 모든 인간들은 "선한 생활을 하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창조된 작품"(에페 2, 10)으로서 오직 그분께만 속해 있음을 증명해 준다.


그리고 성령의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모든 선행의 시작이며 마침이시고, 또한 우리는 그분을


섬기는 데 있어 삯을 받는 하인으로서가 아니라


사랑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신다.


그럼 내가 뜻하는 바를 설명하겠다.



69 


이 세상에는 어떤 사람에게 속하는 데 있어서


그 사람의 권위에 의존하는 방식이 두 가지 있다.


즉 노예 상태와 단순한 종속관계의 종이라는 관계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일반적인 종속으로는 어떤 사람이


일정한 급료나 이러저러한 보수를 받기로 하고


일정 기간 동안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겠다고 약속한다.


노예는 일생 동안 다른 사람에게 전적으로 예속되는 사람으로서,


그는 자신을 살리고 죽일 권리를 가지고 있는 자기 주인에게


일종의 가축처럼 아무런 보수나 보상도 요구할 권리 없이


그의 주인을 섬겨야만 하는 사람이다.



70 


노예의 종류에는 세 가지가 있다.  태어날 때부터의 노예,


강요에 의한 노예, 스스로 원해서 된 노예이다.


모든 피조물들은 첫 번째 의미로 볼 때 하느님의 종들이다.


하느님께서는 원래 만물을 소유하시고,


그것을 처리하는 권리를 가지고 계신다. 


그래서 "이 세상과 그 안에 가득한 것이 모두 야훼의 것,


이 땅과 그 위에 사는 것이 모두 야훼의 것"(시편 24, 1)하고 노래한다.


 두 번 째, 강요에 의한 노예는 마귀들과 영벌에 처해진 사람들이며,


세 번째, 스스로 원해서 된 노예는 비록 본래 그렇게 할 의무가 없을 때에도


무엇보다도 하느님과 하느님께 대한 봉사를 선택하기 때문에


이들의 봉사는 하느님 대전에 가장 완전하고 가장 큰 영광을 드린다.


하느님을 사랑하려는 의지로 가득 찬 그들은 사람의 속마음을 들여다보시고


(1사무 16, 7참조)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시고 마음만을 원하시고


사랑의 의지로 가득 한 의지의 하느님이라고 불리시는


그분께 가장 영광스러운 것이다(시편 73, 26 참조)


그래서 본래 완전한 봉현에 대한 의무가 없을 때에도 그들은


하느님께 더욱 완전한 봉헌을 함으로써


모든 것 위에 하느님과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선택하게 된다.



71 


하인과 노예 사이에는 전혀 다른 차이점이 있다.


1)


하인은 자기의 온 존재와 모든 소유물, 또 자기 힘으로든지


남의 도움으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자기 주인에게 전부 바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완전히 봉헌된 사람, 즉 노예는 자기의 존재를


자기가 가진 모든 소유물과 앞으로 가질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남김없이 자기 주인에게 바친다.


2) 


하인은 자기 주인에게 봉사한 것에 대한 보수를 요구하지만


노예는 어떻게 일했든, 얼마나 솜씨 있게 했든 얼마나


그 일에 정성을 바쳤든지 간에 주인에게 아무것도 요구할 수가 없다.


3) 


하인은 자기가 원할 때 또는


적어도 고용 기간이 해제될 때는 주인을 떠날 수 있다.


그러나 노예는 자기 주인을 떠날 권리가 없으며 그 관계는 항상 유효하다.


4) 


하인의 주인은 자신의 하인에 대해 살리고 죽일 권한이 없다.


만일 주인이 하인을 짐을 나르는 가축 중의 한 마리처럼 죽인다면


불의한 살인죄를 짓는 것이다.


그러나 노예의 주인은 그를 죽이고 살릴 수 있는 법적 권한을 가지며


팔 수도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다른 노예를 사들이거나


자신이 부리는 말처럼 죽일 수도 있다.


5) 


마지막으로, 하인은 자신의 고용인에게 어느 시간에만 봉사하지만


노예는 항상 봉사해야만 한다.



72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를 다른 사람에게 속하게 하는 데 있어


노예 신분보다 더한 것이 없듯이,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우리를 완전히 봉헌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어머니이신


 마리아께 속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아무 것도 없다.


이에 대한 모범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나머지


스스로 "종"의 신분을 취하셨으며 동정 마리아도 자신을


"주님의 종" 또는 "주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사도 바오로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부르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였다.


또 성서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자주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불린다.


 "servus(종이라는 의미의 라틴어)"라는 이 단어는 어떤 학자가 지적한 것처럼,


원래 오늘날과 같은 뜻의 고용인 또는 하인이란 개념이 없었고


다만 노예라는 뜻으로만 사용되었다.


그래서 그 주인들은 노예가 아니면


노예에서 해방된 자유인에 의해서 섬김을 받았다.


 트리엔트 공의회에서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라는 것을 전제하여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mancipia Christi)"라고 칭했다.



73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말한다. 즉 우리는 고용된 하인으로서가 아니라


 사랑의 완전한 헌신에서 예수 그리스도께 속해야 하고


그분을 섬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우리는 위대한 사랑으로 우리 자신을 그분께 바치고,


그분의 것이 되는 영광만을 위해서 그분을 섬기는 데에 무조건 헌신해야 한다.


세례 받기 전에는 우리가 마귀의 노예였으나,


세례를 받음으로써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가 된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가 아니면 마귀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



74 


내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지금까지 절대적으로 말해온 것을


성모 마리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말할 수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삶과 죽음, 하늘과 땅에서의


당신의 영광과 능력의 떨어질 수 없는 동반자로서


마리아를 선택하셨기 때문에 성인들이 "본성적으로 하느님께 속하는


 모든 것은 은총에 의해서 마리아께도 속한다"라고 말하고 있듯이,


하느님께서 본성적으로 가지고 계시는 권리와 특권은


은총에 의해 마리아에게도 주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인들의 말에 따르면


예수님과 마리아는 똑같은 의지와 능력에 참여하시게 되며


또한 같은 신하들과 노예들을 가지고 계신다.


그러므로 그 두 분 중 어느 한 분 께 자신을 바치는 것은


바로 다른 분께도 바치는 것이 된다.



75 


성인들과 많은 위대한 사람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보다 완전히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기 위해서 우리는


성모 마리아의 사랑이 가득한 노예라고 말할 수 있고


또 그렇게 될 수가 있다.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내려오시는 수단으로서 성모 마리아를


통하셨고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께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마리아를 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떤 것에 애착을 가지면, 그것은 우리를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데, 마리아는 그렇지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마리아의 가장 강렬한 원의는


우리를 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시키고자 하는 것이며,


또 성자의 가장 강한 원의는 당신의 거룩하신 어머니를 통하여


 우리가 당신께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여왕의 종이 됨으로써 보다 더 훌륭한 왕의 종이 되어


왕께 기쁨과 영예를 드리는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교부들과 그들을 이은 성 보나벤투라는,


성모 마리아는 주님께 나아가는 길이라는 의미로 이렇게 말하였다.


"그리스도께로 가는 길은 성모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다."



76 


더 나아가서 성 안셀모, 성 베르나르도, 성 베르나르디노와 성 보나벤투라는


"동정 마리아를 포함한 모든 것이 하느님의 권하에 있고 하느님께 속한


모든 것이, 하느님까지도 동정 마리아의 권하에 있도다"라고 말한다.


내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마리아는 하늘과 땅의 모후이시며 주인이시므로


지상의 피조물들만큼 많은 수의 신하와 노예들이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 많은 노예들 가운데에는 사랑과 자유 의지로 마리아를


자신의 주인으로 선택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 않겠는가?


사람들이나 악마에게도 자발적인 노예가 있다면


 어찌 마리아에게는 그 같은 노예들이 없겠는가?


세상의 왕들은 왕후가 생사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자기 소유의 노예를 가지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의 아내인 왕후의 권한이 바로 왕들 자신의


영예와 권력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하물며 모든 아들들 중에


가장 착한 아들이신 우리 구세주께서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께


온갖 권한을 나누어 주셨는데 어찌 우리들이


그 어머니에게 온전히 봉헌하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겠는가?


주 예수님께서 마리아에 대해 가지셨던 존경과 사랑이,


 아하스에로스가 에스델에 대해서, 솔로몬이 바쎄바에 대해서


가졌던 것보다도 오히려 덜했다고 감히 생각할 수 있겠는가?


누가 감히 그런 말을 하고 그런 생각조차 할 수 있겠는가?



77 


아 내가 왜 이다지도 필요없는 말을 하고 있을까?


왜 내가 이다지도 명백한 사실을 새삼스럽게 증명하려고 하는가?


만일 누가 자기 자신을 성모님의 노예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면 그래도 좋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을 오로지 바치고,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라고 생각해도 좋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마리아의 영광이기 때문에


그 사람 역시 마리아의 것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내가 지금부터 이야기하게 될 완전한 신심인


봉헌을 통해서 완전히 이렇게 되는 것이다.

 

 

 

 

성 루도비꼬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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