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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장모가 심한 열에 시달리고 있어서'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03 조회수624 추천수1 반대(0) 신고
<장모가 심한 열에 시달리고 있어서>(루가 4,38-44)

   -유광수 신부-

 


시몬의 장모가 앓고 있는 열병이 무슨 병인지를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다. 감기 몸살이나  말라리아 등으로 인한 육체적인 열병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열병이란 단순히 육체적인 병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앓고 있는 열병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한테 배반당했을 때, 부부 싸움을 하였을 때, 믿었던 사람한테 배신당했을 때, 사업에 실패했을 때, 화가 났을 때, 또는 질투심이나 이기심 등 여러 가지 이유로도 열병을 앓을 수가 있다. 

 

아마도 우리는 육체적인 병 때문이 아니라 정신적인 이유로 열병을 앓을 때가 더 많은 지도 모른다. 복음을 보면 제자들도 심하게 열병을 앓고 있는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예수님이 수난에 대한 두 번째 예고를 하신 후 제자들이 길에서 누가 제일 높은 사람인가 하는 문제로 서로 다툰 일이 있다(마르 9, 33).

 

제자들이 높은 자리를 놓고 서로 다투었다는 것은 자기들 안에 부글 부글 끓고 있는 열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르 9,35)고 하시면서 그들이 앓고 있는 열병에서 치료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시몬의 장모는 자기 집에 온 손님이 왔는 데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열병 때문에 누워 있어야 했다. 열병을 앓고 있는 시몬의 장모는 사랑해야할 인간이 사랑하지 못하고, 봉사해야할 인간이 봉사를 하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우리 가정과 사회, 공동체, 교회가 앓고 있는 열병은 무엇인가? 내가 앓고 있는 열병은 무엇인가? 어떤 열병이든 열병을 앓고 있는 이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한다. 그것 때문에 고민하고, 삶의 의미를 상실해 버리고, 만사가 귀찮아진다. 그래서 자리에 눕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악이다. 악은 사람을 점점 더 깊은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만든다. 

 

열병은 반드시 그 원인이 있다. 즉 나로 하여금 아니면 공동체가 아니면 가정이 열병을 앓고 있을 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어렸을 때 받았던 상처 때문에 아니면 자기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열병을 앓을 수도 있다.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열병을 앓을 수도 있다.


공동체적으로 앓고 있는 열병이란 공동체가 서로 뜻이 맞지 않을 때 또는 공동체가 본래의 정신에서 벗어났을 때, 열병을 앓을 수가 있다. 개인적인 열병 때문에 공동체가 열병을 앓을 수도 있고 또 공동체가 앓고 있는 열병 때문에 개인적으로 열병을 앓을 수도 있다.

 

가정도 마찬가지이다. 가족간에 사랑이 없을 때 가족 모두가 열병을 앓는다.

부모의 잘못  때문에 자녀들이 열병을 앓을 수도 있고, 자녀들의 열병 때문에 부모가 열병을 앓고 누울 때도 있다. 가족간에 한 사람이라도 열병을 앓고 있으면 그 열병은 모든 가족에게 번지고 영향을 끼친다. 결국 내가 앓고 있는 열병은 나만 혼자 앓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열병을 앓게 하는 원인 제공을 할 수도 있다.

 

한 사람의 열병은 절대로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어디에 있든 주위 사람들에게 전염시키고 그래서 공동체가 또는 사회가 더 나아가 나라 전체가 열병을 앓게 만든다. 이런 모든 악(열병)은 하느님이 만들어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 또는 주위 환경의 잘못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을 원망하지 말고 우리의 잘못으로 일어나는 그 열병에서 치유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사람들이 시몬의 열병을 고쳐달라고 예수님께 청했듯이 우리도 내가 앓고 있는 열병 또는 공동체가 앓고 있는 열병 가족이 앓고 있는 열병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고 예수님께 도와 달라고 청하자. 오늘 우리는 우리 각자가 앓고 있는 열병이 언제, 어디에서부터 온 것인지를 조용히 성찰해보고 그 내용을 적어서 예수님게 봉헌하도록 하자. 아마 오늘 예수님은 시몬의 장모에게 가까이 가시어 열을 꾸짖으셨듯이 또 마귀 들린 사람에게 "조용히 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하고 꾸짖으시자 마귀가 나갔듯이, 우리가 앓고 있는 열병의 악을 몰아내시어 치유시켜 주실 지도 모른다. 우리도 열병에서 일어나 시중을 들도록 하자.

 

복음은 열병을 앓고 있던 부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시중을 들었다"고 전해 주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의 손이 부인에게 봉사했던 것처럼 부인의 손도 "봉사하는 손이 되었다."는 뜻이다. "시중들다."는 말은 희랍어로 "디아꼬니아" (Diaconia) 라고 하고 라틴어로는 "세르비레"(Servire)라고 하고 영어로는 "써비스"(Service)라 한다. 이 동사의 뜻은 " 노예가 되다. 종 노릇하다. 종살이 하다. 섬기다. 봉사하다. 비위를 맞추다. 순종하다. 몰두하다. 힘쓰다"라는 다양한 뜻을 갖고 있다.

 

즉 봉사한다는 것은 "타인을 주인으로 섬기는 것이요, 타인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요, 타인에게 순종한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 우리가 봉사를 할 때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고 또 봉사하는 우리 자신이  상처를 받는 경우는 봉사자의 진정한 자세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봉사한다는 것이 아주 작은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 중심에서 타인 중심으로 변화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봉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세상의 모든 불행은 봉사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모두가 봉사하려고 하지 않고 봉사를 받으려고만 하는 데에서 미움이 생기고, 상처를 받고, 불목이 일어나고, 싸움이 일어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여인의 열병을 고쳐주시어 시중들게 해 주셨다는 것이 작은 기적이라고 생각할런지 모르지만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되찾아주신 위대한 기적을 일으키신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열병을 치유시켜 주셨다는 것 그 이상의 위대한 일을 하신 것이다. 즉 잃어버렸던 인간의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아주신 것이다.


인간이 가장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봉사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기적 가운데 가장 위대한 기적은 이기주의로 가득 차 있고 섬김을 받으려고만 하는 인간의 모습에서  먼저 남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모습, 남을 섬기는 모습으로 바꾸어 놓는 기적이다.  인간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남을 위해서 봉사할 수 있는 능력과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야말로 복음이 우리 안에서 이루고자 하는 기적이요, 선물인 것이다. 그것이 사람 낚는 어부가 되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열병으로 앓고 있는 시몬의 장모는 바로 우리 자신이고 또 열이 가셔서 일어나 시중을 들었다는 모습 또한 열병을 앓고 있는 우리가 그런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열병으로 계속해서 누워 있을 것인가? 아니면 치유 받고 일어나서 시중드는 아름다운 인간이 되고 싶은가? 오늘 복음을 잘 묵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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