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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침마다 겪는 작은 슬픔들/나는 왜 하찮은 일에도 슬퍼할까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02 조회수628 추천수4 반대(0) 신고
                     아침마다 겪는 작은 슬픔들
                                                  나는 왜 하찮은 일에도 슬퍼할까




이삼일에 한 번 꼴로 새벽이나 이른 아침에 집 안의 쓰레기 버리는 일을 하고 있다. 아침마다 연이어 하는 경우도 있다. 퇴원 후 한동안은 그 작은 일조차 하지 못했는데(몸에 너무 기운이 없고 운신하기도 어려워…), 요즘은 어머니가 기침하시기 전에 내가 다시 그 일을 하게 되었다.

우리 집은 쓰레기통이 방과 화장실의 쓰레기통을 제외하고도 네 개나 된다. 건전지 폐품을 제외한 자질구레한 쓰레기는 돈을 주고 사오는 종량제 규격 봉투에 담는다. 병 종류와 깡통류, 플라스틱 쓰레기들은 중간 크기의 종이가방에 담는다. 그리고 비닐 종류와 재생이 안 되는 코팅 종이들은 따로 종이상자에 담는다.

또 작은 종이 쪼가리 하나도 쓰레기통에 넣지 않고 신문더미 속에 끼워 넣는다. 오물 묻은 휴지를 제외하고 재생 가능한 모든 종이는 재생 공장으로 보내려는 뜻이다. 아이들에게도 쓰레기를 잘 구분해서 버리도록 교육을 시켰다.


▲ 우리 집의 쓰레기통들 / 방마다, 화장실마다 플라스틱 쓰레기통이 있지만, 거실과 주방을 구분하는 구조물의 주방 쪽 바로 앞에는 운반이 편리한 세 개의 쓰레기 용기들이 놓여져 있다. 집 안에서부터 쓰레기 분리 수거를 하기 위해서인데, 이것 역시 올해 85세이신 노모의 지혜 덕이다.  
ⓒ 지요하  분리 수거

주방과 거실 사이에 구조물이 있는데, 그 구조물의 주방 쪽 벽 앞이 그 쓰레기 용기들의 자리다. 주방과 거실을 구분해 주는 그 구조물이 우리 집에서는 그런 쪽으로도 구실을 한다.

음식물 쓰레기를 담는 플라스틱 통은 뒤 베란다에, 베란다 출입문 가까이에 있다. 동물 사료로 쓰일 쓰레기이기에 신경을 많이 쓴다. 조개 껍질이나 달걀 껍질, 흙 묻은 채소 뿌리 등, 음식물 쓰레기와 분리를 해야 할 것들은 따로 비닐봉지에 담는다.

그 쓰레기들을 아침에 밖으로 내갈 때는 양손을 다 써야 한다. 왼손잡이라 좀더 힘이 좋은 왼손에는 음식물 쓰레기통과 비닐봉지와 끈 달린 종이가방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끈이 없는 종이상자를 집어든다.

쓰레기를 버리는 일이지만, 새벽이나 이른 아침에 집 밖으로 나서는 일은 기분이 좋다. 신선한 공기가 절로 심호흡을 하게 한다. 어느 계절이든 이른 아침의 맑은 공기는 감미로움과 싱그러움을 함께 안겨주며, 청량제 구실을 한다.

때로는 하늘 한쪽에 떠 있는 초승달을 보기도 한다. 초승달과 동무하고 있는 새벽 별들과도 인사를 나눈다. 맑은 공기, 감미로운 바람결, 예쁜 초승달과 새벽 별, 그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비켜 서 있는 구름…. 비록 쓰레기를 버리는 일로 나왔지만 이른 아침 그들과의 조우는 나를 행복케 하고, '피조물의 감사'를 절로 발하게 한다.


▲ 음식물 쓰레기통 / 우리 집 뒤 베란다에는 출입문 바로 옆에 음식물 쓰레기통이 놓여져 있다. 파란색 플라스틱 통이다. 어머니는 일찍이 뚜껑도 마련하시고, 쓰레기통 안을 자주 닦으신다. 아파트에 살면서 이런 음식물 쓰레기통을 장만하지 않고 비닐봉지를 사용하는 집들이 의외로 많다.  
ⓒ 지요하  분리 수거

그런데 우울함과 슬픔을 겪는 아침도 있다. 엘리베이터에서부터 담배꽁초를 보게 되면 정말 기분이 나쁘다. 현관 안팎에 여기저기 버려져 있는 담배꽁초를 보노라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 담배를 피울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 담배를 피워대서 생기는 문제다. 현관 게시판에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리지 말라는 꽤 자극적이거나 간절한 내용의 호소문이 붙고, 가끔 아파트관리사무소에서 방송도 하건만, 누군지 모를 사람들이 아무 데나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리는 현상은 영영 고쳐지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약과다. 나는 쓰레기 수거함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긴장을 한다. 수많은 집들에서 나온 갖가지 쓰레기들이 제대로 번지를 찾아 잘 버려져 있는지, 기대와 걱정을 함께 갖는다.

한쪽 맨 옆에 종이 종류 쓰레기를 담는 큰 수거함이 있다. 그 옆에는 헌 옷가지들을 담는 수거함이 두 개 놓여져 있다. 또 그 옆에는 비닐 종류와 코팅 종이들을 담는 쓰레기통이 있고, 다음에는 음식물 쓰레기통들이 있다. 음식물 쓰레기통은 하나가 있을 때도 있고, 두 개나 세 개가 있을 때도 있는데, 주말에는 반드시 세 개씩 놓여진다. 어떤 때는 세 개가 모두 가득 차서 다른 곳으로 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음식물 쓰레기통 옆에는 세 개의 수거함이 나란히 놓여져 있는데, 하나는 깡통 종류, 가운데 것은 플라스틱 류, 마지막 것은 빈 병들을 담는 수거함이다. 빈 병 수거함 옆에는 큰 포대가 있는데, 그 포대 안에는 언제나 소주병과 맥주병들로 포화 상태다. 참 잘들 마시고 잘들 먹고산다는 증거다.

각 가정에서 나오는 갖가지 쓰레기들은 비교적 번지를 잘 찾는 것 같다. 번지를 잘 찾은 경우는 그 '손'이 예쁜 손일 테지만, 번지를 잘못 찾은 경우는 쓰레기나 쓰레기를 버린 손이나 거의 동질성을 지닌 게 아닐까 싶다.

가끔은(때로는 자주) 번지를 잘못 찾은 쓰레기들을 보곤 한다. 결코 예쁜 손들 짓은 아닐 거라는 공연한 생각을 하며, 그 미운 손들 대신 쓰레기들을 이리저리 옮기느라 수고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린다. 음식물 쓰레기 수거함의 뚜껑을 열 때는 더욱 긴장을 한다. 음식물 쓰레기 수거함들에는 뚜껑마다 큼지막한 글자판이 투명 비닐에 덮인 채로 단단히 부착이 되어 있다.


▲ 아파트 음식물 쓰레기통 / 뚜껑 위에 "비닐봉지는 절대 넣지 마세요"라는 글자판을 단단히 붙여놓은 것은, 음식물 쓰레기를 동물용 사료로 쓰기 위해서다. 시력이 나쁜 사람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 지요하  분리 수거

"비닐 봉지는 절대 넣지 마세요"라는 말이다. 의례적이거나 형식적인 말이 아니다. 간절한 부탁이기도 하고 애원이기도 하다. 목적 의식이 명명백백하게 담겨져 있는 말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음식물 쓰레기 수거함의 뚜껑을 조심스럽게 연다. 괜히 지레 미안한 마음을 머금기도 한다. 우선 세 개의 수거함 뚜껑을 다 열어본 다음 음식물 쓰레기가 가장 적게 들어 있는 수거함에, 그리고 비닐봉지도 함께 들어가 있지 않은 수거함에 쓰레기를 버린다.

비닐봉지가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은 날은 그렇게 반갑고 다행일 수가 없다. 그것은 곧바로 내게 일종의 행운으로 작용한다. 내가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고,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수거함 안에 음식물이 담겨진 채로 함께 들어가 있는 비닐봉지를 보게 될 때는 참으로 난감하다. 절로 한숨부터 나온다. 그것을 보고도 못 본체 그냥 돌아서기가 어렵다. 음식물 쓰레기와 비닐봉지를 분리하는 일은 상당한 고역이다. 냄새는 물론이고, 손을 버리는 것쯤은 각오해야 한다. 그 일을 하면서 냄새 못지 않은 독한 슬픔을 맛본다.

이 음식물 쓰레기를 가져와 이렇게 버린 사람은 남자일까, 여자일까? 어른일까, 아이일까? 눈 먼 사람은 결코 아닐 테고, 그는 한글도 읽지 못하는 문맹자가 아닐까? 문맹자가 아니라면, 그는 수거함 뚜껑의 글자를 보기도 했을 텐데, 도대체 무슨 생각 어떤 마음으로 이렇게 음식물 쓰레기를 버린 걸까? 그 집은 왜 음식물 쓰레기통 하나 장만해놓지 않고, 비닐봉지에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며 사는 걸까? 언제까지 그럴 것인가?

독한 냄새와 슬픔 속에서 괜한 궁금증이며 의문들이 춤을 춘다. 홀로 흐드러지고 흐늘거리는 춤이다. 아무리 그런 춤을 추어 봐야 보는 사람도 없고 듣는 사람도 없다. 내게 수고를 끼치는 누군지 모를 사람은 더더구나 내 노릇을 까맣게 모를 것이다.

(내가 집 안 쓰레기 버리는 일을 하지 못할 때는 올해 85세인 노모께서 음식물 쓰레기 수거함 속의 비닐봉지 분리 수고까지 다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한계를 지닌 사람일 수밖에 없다. 음식물 쓰레기 수거함 안에 비닐봉지가 한 개나 두 개 정도 들어갈 있을 때만 그 일을 한다. 그것을 보고도 그냥 몸을 돌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냥 몸을 돌리면 마음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하지만 비닐봉지가 너무 많을 때는 그 일을 포기한다. 내가 오늘 이런 일을 한다고 해서 비닐봉지를 함께 버리는 일이 또다시 생기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으로 나를 변호하고 위안한다. 그래도 마음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냥 몸을 돌릴 때는, 이런 하찮은 일에 슬퍼할 자격도 없다는 생각이 뒷머리를 찌르기도 한다.

하여간 아침에 쓰레기를 버리는 일은 묘하게도 내 아침 기분을 상당 부분 좌우하는 일이다. 쓰레기를 버리는 하찮은 일에서 왜 아침 기분이 좌우되는지, 꼭 그래야만 하는지, 나 자신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 아파트 음식물 쓰레기통 / 비닐봉지 안에 음식물 쓰레기를 담아서는 수거함에 비닐봉지째 버리는 집들이 의외로 많다. 한두 개면 내 손으로 분리를 하지만 여러 개일 때는 포기를 한다. 그럴 때는 더욱 슬프다.  
ⓒ 지요하  분리 수거

며칠 전 아내를 퇴근시켜 줄 때 길에서 본 풍경이다. 네거리에서 신호대기를 하고 있는데,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그러므로 틀림없는 어른인) 건장한 한 사나이가 가게에서 영양음료를 한 병 사들고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걸음을 옮기면서 병의 뚜껑을 열었다. 뚜껑은 먹지 못하는 것이므로 그냥 길바닥에다 버렸다. 아주 자연스럽게 버렸다. 그리고 병 안의 영양음료를 꿀꺽꿀꺽 마셨다.

그가 영양음료를 다 마신 다음 먹지 못하는 빈 병은 어찌하는가 싶었으나 뒤를 따라가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에게는 길거리며 세상이 온통 자신의 쓰레기통이니, 빈 병 버리는 일 또한 별 문제가 아닐 터였다.

삼십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그가 언제 철이 들고 어른이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영양음료 뚜껑은 먹을 수 없는 것임을 알고 버릴 줄은 아니, 앞으로 나이를 먹으면서 그 단계 이상으로 철이 들 법도 하지만 글쎄,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세상에는 철들지 않은 나이배기, 노인네들도 얼마나 많은가.

영양음료 뚜껑이며 아이스크림 껍질이며 과자봉지며 담배꽁초 따위를 길에다 아무렇게나 버리는 사람들에게도 '사회적 고민'이 있을까? 그들에게 과연 사회적 고민 따위가 필요할까? 그런 쓸데없는 의문으로 주절거리며 운전을 했다.

그들도 다 하느님의 귀한 피조물로서 각각의 몫을 지닌 '사람'들임을 잘 인정하면서도, 그들이 철없고 분별 없는 짓으로 사회적 고민을 안고 사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난폭하게 공격하면서 사회 발전을 방해하는 사람들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비는 마음이었다.
  
2008.09.02 11:43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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