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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열심히 일하면 쉽게 이룬다 ....... [김상조 신부님]
작성자김광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01 조회수633 추천수10 반대(0) 신고

 

미국 오하이오 주 시골마을에 바구니를 만드는 회사가 있는데
일년 매출이 7억달러나 된다고 한다. 우리 나라 돈으로 하면 7천억.
우리 같은 사람은 평생 써도 못쓸 돈이다.
서민들은 1년 동안 얼마나 벌까?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지만,
연봉 3천만원 이하를 서민이라고 한다면,
1년에 2천 만원 정도 저금할 수 있을까?
허리띠를 졸라매면 가능도 할 것이다.
서민이 1년에 2천만원씩 적금한다 치면,
1억 모으는데 5년 걸린다.
10억 모으는데 50년, 100억 모으는데는 500년,
1000억 모으는데 5000년, 7천억 모으는데는 35,000년 걸린다.
후유!!

매출이 7천억이니,
순 이익을 15% 잡으면 약 1천 4억쯤 된다.
순이익이 1000억이라 보고,
서민이 1000억 모으려면 앞의 계산대로 하면 천년이 걸린다.

그렇게 많은 수입을 올린 회사 사장이
자신의 성공비결을 이렇게 책에 쓰고 있다.
“나는 대학을 다니지 않았다.
또 나는 기업 경영 같은 것에 대해 훈련도 받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는지 강의를 들어본 적도 없다.
단지 내가 아는 것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잘 듣고 관찰하면서 배운 것이다.
내 길에 도움이 된다면 바로 그것을 실천했다.
나는 공부는 잘 못하지만 생각은 깊게 한다.
나 같이 보잘 것 없는 시골 출신이 이렇게 성공할 수 있다면,
열심히 일할 의지를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도
모두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인생의 대부분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열심히 일하면 쉽게 이룰 수 있다.”

마지막 말이 중요하다.
“열심히 일하면 쉽게 이룰 수 있다.”
열심히 하는 것, 쉬운 것. 말이 안되는 것 같다.
열심히 일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람 말대로 열심히 한다면 어떤 일이든지 이룰 수 있다.
단지 시간이 많이 걸리거나 적게 걸리거나 할 것이다.

이걸 다른 말로 하면,
열심히 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는 뜻이다.
또 다르게 말하면,
지금 하는 일이 어렵다면 그 이유는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열심히 했다면 점점 쉬워질 것인데,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힘든 것이다.
열심히 하지도 않고 일이 힘들다고 하는 것은 틀린 말이다.

들꽃마을서 하루 걸러 매일 저녁마다 한 시간씩 운동했다.
초등학교 꼬맹이들도 약 6~7명 있었는데 애들도 같이 달리곤 했다.
처음에 잘 따라 오지만 한 15분정도 따라오고 나면 대부분은 지쳐서 걷는다.
걷다가 뛰다가 한다.
반환점을 돌아서 걸어오는 꼬맹이들한테 돌아오면 대체로 이렇게 묻는다.
“신부님, 안 힘들어요?”

어떨거 같은가? 한 시간 달리는게 힘들까? 힘들지 않을까?
힘들지만 참는다. 처음엔 애들처럼 20분 30분도 달리는 것도 힘들었다.
20분쯤 달리고 나면 가슴이 터질 것 같다.
하지만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리는 것, 그것이 매번 내가 달릴 때마다 세운 목표였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40분정도 달리고 나면 숨은 고르게 된다.
가슴이 터질것 같은 것은 가볍게 사라진다.
단지 다리 근육이 지치는 것만 참으면 된다.
계속하면 체력이 생겨서 점점 쉬워진다.
열심히 하면 쉽게 이룰 수 있다는 말이 이해된다.

나는 배경이 좋지 않아.
나는 학력이 너무 안 좋아.
나는 가진 돈이 없어.
이렇게 말하는 것은 틀린 말이다.
열심히 하면 반드시 이룬다.
이루기전에 모두 포기하고 뒤로 넘어지기 때문에
힘들다, 이룰 수 없어, 불가능해! 하는 것이다.
못 이루는 것이 아니라, 이루려는 노력을 그만 둔 것이다.

과학자들이 인간을 연구한 결과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철학자나 심리학자들이 한 말이 아니다.
증명 가능한 것만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한 말이다.
“자극을 주지 않으면 한 없이 나태해지는 존재, 이것이 바로 인간의 특징이다”

그렇다. 새들도 새끼 새가 나는 연습을 시킬 때 어미 새가 부리로 새끼를 쫀다고 한다.
그러면 날개를 퍼득이며 날게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
자극을 주지 않으면 한 없이 나태해진다.
아무일도 하지 않아도 밥 주고 옷주고 잠자리 주면 한 없이 나태해지고 게을러진다.

오늘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뒤를 따르는 것은 쉼 없이 따르는 것이다.
잠시만 쉬어도 앞서 가던 사람이 저 멀리 달아나고 만다.
쉼 없이 따르는 것이 벌써 십자가다.

십자가는 예수님만 지는 것이 아니다.
다음 이야기에 나오는 의사는 예수님이 졌던 십자가를 자기도 진 사람이다.

20세기초 병이 심리적인 원인으로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때다.
병원에서 뇌수술을 앞둔 한 환자가 숙직의사를 찾아가 사정을 했다.
외과 과장에게 심한 두통을 호소했더니 뇌에 이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
다음날 수술받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환자는 자기가 두통을 앓을 수밖에 없는
괴로운 인간관계들을 설명하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 병은 뇌수술을 받을 것이 아니라며 하소연하는 것이었다.

그 때 이 숙직의사는 프란츠 리클린이라는 젋의 외과 수련의사였다.
환자의 말을 다 듣고난 의사는 그 두통은 심리적인 원인에 의한 것이지
뇌수술을 받을 것은 아니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일개 수련의가 주임교수가 내린 결정을 번복한다는 것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때문에 괴로워하던 리클린은 스스로에게 명령했다.
“너는 현재 숙직담당 의사다. 너의 직권으로 이 여인을 퇴원시킬 수 있다.
그러니 위험하고 불필요한 수술을 막기 위해 지금 당장 이 여인을 퇴원시켜라”
주임교수의 결정을 거스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지만
결국 그의 얌심에 따라 환자를 퇴원시켰다.

그 다음날 리클린은 당장 병원에서 쫓겨났고
평범한 외과 전문의로 살려던 그의 인생설계는 깨끗이 무너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때부터 그는 사람의 병이 심리적인 데서 온다는 것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결국 융 심리학파의 유명한 국제적 명의가 되었다.

자기 인생이 하루 아침에 길거리로 내 쫓기고
많은 선배 동료 의사들로부터 바보 같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결국 양심이 명령하는 대로 한 생명을 뇌수술의 위험에서 건져냈다.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열어주었다.
이런 것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는 예수님만이 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틀린 말이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그분이 가신 길을 뒤 따라 가는 것이다.
자기 길을 가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 길을 가는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가 “맙소사!”하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는 일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하셨을 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하는 엄청난 말씀까지 하셨다.
실제로 베드로가 사탄인 것이 아니라 사탄이 원하는 일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사탄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는 것을 방해하려고 무척이나 애썼다.
광야에서 40일간 단식하고 몹시 허기진 예수님께
돌로 빵을 만들어 먹어라고 유혹한 것도
그 괴로운 십자가는 내 던지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빵과 재물로 세상을 호령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유혹을 단호하게 뿌리쳤다.

사람들은 벌써 오래전부터 돌로 빵을 만들고 있다.
반도체, 전자부품, 메모리, 컴퓨터 CPU는 그 출처가 모두 돌멩이다.
그 돌을 갈아서 부품을 만들고 그것을 팔아서 막대한 재산을 만들어내고 있다.
돌로 빵을 만드는 일은 이미 오래전에 이루어졌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보다 훨씬 오래전에 그 일을 거부하셨다.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사람들은, 우리 믿는 사람들조차 성경이 밥먹여주랴? 하며 사는 때가 훨씬 더 많다.
주일 정도에나 겨우 말씀을 듣지만 성당 문을 나서는 순간 곧 바로 잊어버리고
세상 재물이 주는 편리와 안락에 몸을 맡긴다.

사랑도 할부로 살 수 있냐고 선전하더니,
이젠 아예 영혼을 판다는 선전까지 나오고 있다.
휴대폰 선전인 듯한데, 모델명이 소울(soul)이라서
그렇게 선전하는 것 같지만 정말 심한 내용이다.
이젠 돈만 있으면, 돈 되는 일이라면 영혼도 사고 파는 것처럼 세뇌되고 있다.

사탄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지 않도록,
그래서 십자가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지 못하도록 무던히도 방해했다.
그런 사실이 “그리스도의 수난”이란 영화에 잘 나타난다.
예수님이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하고 숨을 거두자
사탄이 패배한 것을 알고 머리를 쥐어뜯어며 울부짖는 모습이 나온다.
빵, 재물, 권력을 통해 세상을 좌지우지 해야 사탄의 세상이 되는데
예수님은 그걸 반대로 해서 세상을 위한 제물이 되시고
성부께서는 그런 예수님을 다시 부활시켜서
예수님이 사는 방식이 옳다고 예수님 손을 들어주셨다.

예수님의 십자가 길은 죽는 것이 이기는 길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걸 예수님은 “자신을 버리고”라는 말로 대신하신다.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해야 하는 일이다.
젊은 외과의사 리클린처럼 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조차 포기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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