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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32. 이스라엘의 멸망 전의 여러 통치자 / 북 이스라엘의 멸망[1] / 2열왕기[32]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1-11-14 조회수730 추천수1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32. 이스라엘의 멸망 전의 여러 통치자(2열왕 15,8-31)

 

유다 임금 아자르야 제삼십팔년에, 예로보암 2세의 아들 즈카르야가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겨우 여섯 달 동안만 다스렸다(기원전 747). 그는 자기 조상들이 하던 대로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르며, 이스라엘을 죄짓게 한, 느밧의 아들 예로보암의 죄에서 돌아서지 않았다.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그를 거슬러 모반하였다. 살룸은 이블르암에서 백성들이 보는 가운데 그를 쳐 죽이고 그 뒤를 이어 임금이 되었다. 즈카르야의 나머지 행적은 이스라엘 임금들의 실록에 쓰여 있다. 주님께서 예후에게 너의 사 대 자손까지 이스라엘의 왕좌에 앉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10,30 참조).

 

유다의 우찌야(아자르야; 1역대 3,12 참조) 제삼십구년에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임금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한 달간만 다스렸다(햇수는 기원전 747-746). 사실 유다의 우찌야는 아자르야 임금의 다른 이름이다(2역대 2627 참조). 열왕기에서는 이 15장에서만 나오는 반면에 일부에는 아자르야로 되어 있다(1역대 3,12 참조). 왜 이렇게 한 임금을 두 이름으로 부르는지는 정확한 설명이 없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의 통용은 하나는 태어날 때, 다른 하나는 왕위에 오를 때 갖게 된 이름이다. 아자르야-우찌야, 여호아하즈-살룸, 엘야킴-여호야킴(23,34), 마탄야-치드키야가(24,17) 그 좋은 예이다. 그리고 여디드야-솔로몬도(2사무 12,24.25) 이에 해당된다.

 

아무튼 가디의 아들 므나헴이 오므리 임금 때까지 이스라엘 왕국의 옛 수도인 티르차에서 사마리아로 올라가서(1열왕 14,17 참조; 단 이곳은 오므리 때까지 왕도였음), 야베스의 아들 살룸을 쳐 죽이고 그 뒤를 이어서 사마리아의 임금이 되었다. 살룸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일으킨 모반에 관한 것은 이스라엘 임금들의 실록에 쓰여 있다. 그때에 므나헴은 팁사와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 그리고 티르차를 비롯하여 그 일대를 쳤다. 팁사가 유프라테스 강 가에 있는 도시로 추정되며, 일부 수정본에는 타푸아로 불린다. 그가 그곳을 친 이유는, 그들이 성문을 열어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임신한 모든 여자의 배를 가르기까지 하였다(8,12 참조).

 

유다 임금 아자르야 제삼십구년에 가디의 아들 므나헴이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열 해 동안 다스렸다(기원전 746-737). 그 역시 그가 살아 있는 동안 내내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르며, 이스라엘을 죄짓게 한, 느밧의 아들 예로보암의 죄에서 전혀 돌아서지를 않았다. 그리하여 아시리아 임금 풀이 나라를 치러 오자, 이 므나헴은 은 천 탈렌트를 풀에게 주었다. 이란 이름은 아시리아 임금 티글랏 필에세르 3세가(기원전 747-727) 그의 통치를 바빌론에까지 넓힐 때 지녔던 이름이다. 그의 실록에는 사마리아의 므나헴이 다마스쿠스의 르친과 티로의 히람과 더불어 그의 속국 임금들 가운데 하나로 등록되어 있다(기원전 738년의 원정 때 속국이 된 것이다). 이는 므나헴이 그의 도움을 받아 자기 손에서 왕권을 튼튼히 하려는 것이었다. 므나헴은 아시리아 임금에게 주려고, 이스라엘에서 곧 모든 부자에게서 은을 쉰 세켈씩 거두었다. 그러자 아시리아 임금은 이스라엘 땅에 머무르지 않고 돌아갔다. 므나헴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한 모든 일은 이스라엘 임금들의 실록에 다 쓰여 있다. 므나헴이 자기 조상들과 함께 잠들자, 그의 아들 프카흐야가 그 뒤를 이어 임금이 되었다.

 

유다 임금 아자르야 제오십년에 므나헴의 아들 프카흐야가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두 해 동안 다스렸다(기원전 736-735). 그는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르며, 이스라엘을 죄짓게 한, 느밧의 아들 예로보암의 죄에서 돌아서지 않았다. 그의 무관, 르말야의 아들 페카가 그를 거슬러 모반하였다. 페카는 아르곱과 아르예와 요르단 강 동쪽의 길앗 사람 쉰 명과 더불어, 사마리아 왕궁 성채에서 프카흐야를 죽이고 그 뒤를 이어 임금이 되었다. 프카흐야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한 모든 일은, 이스라엘 임금들의 실록에 모두 쓰여 있다.

 

유다 임금 아자르야 제오십이년에 르말야의 아들 페카가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스무 해 동안 다스렸다. 그는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르며, 이스라엘을 죄짓게 한, 느밧의 아들 예로보암의 죄에서 돌아서지 않았다. 이스라엘 임금 페카 시대에 아시리아 임금 티글랏 필에세르가 와서, 이욘, 아벨 벳 마아카, 야노아, 케데스, 하초르, 길앗, 갈릴래아와 납탈리 온 지역을 점령하고, 사람들을 아시리아로 끌고 갔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의 유배에 관한 첫 번째 언급이다. 그 뒤에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북왕국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르말야의 아들 페카를 거슬러 모반을 일으켰다. 그는 페카를 쳐 죽이고, 우찌야의 아들 요탐 제이십년에 그 뒤를 이어 임금이 되었다. 페카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한 모든 일은 이스라엘 임금들의 실록에 쓰여 있다. 이상이 이스라엘이 멸망을 앞둔 시기의 주님의 눈을 거슬린 임금들이다.

 

이스라엘 임금 예로보암 제이십칠년에 유다 임금 아마츠야의 아들 아자르야가 임금이 되었다. 그는 열여섯 살에 임금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쉰두 해 동안 다스렸다(기원전 781-740).[계속]

 

[참조] : 이어서 ‘33. 이스라엘 멸망 전의 유다 임금들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살룸,우찌야,므나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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