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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33. 이스라엘 멸망 전의 유다 임금들 / 북 이스라엘의 멸망[1] / 2열왕기[33]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1-11-15 조회수686 추천수1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33. 이스라엘 멸망 전의 유다 임금들(2열왕 15,1-7.32-38; 16,1-20)

 

이스라엘 임금 예로보암 제이십칠년에 유다 임금 아마츠야의 아들 아자르야(우찌야)가 임금이 되었다. 그는 열여섯 살에 임금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쉰두 해나 다스렸다(기원전 781-740). 그의 어머니 이름은 여콜야인데 예루살렘 출신이었다. 그는 자기 아버지 아마츠야가 하던 그대로, 주님 눈에 드는 옳은 일을 하였다. 그러나 산당들은 없애지 않아, 백성은 여전히 산당에서 제물을 바치고 향을 피웠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임금을 치시니, 그는 죽을 때까지 나병환자로 별궁에서 살고, 요탐 왕자가 궁전을 관리하며 백성을 다스렸다. 사실 나병은 하느님의 징벌이다(5,27; 민수 12,10-15 참조). 그래서 나병환자는 공동체에서 격리된다. 아자르야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한 모든 일은 유다 임금들의 실록에 쓰여 있지 않은가? 아자르야는 자기 조상들과 함께 잠들어 다윗 성에 조상과 함께 묻히고 그의 아들 요탐이 뒤를 이어서 임금이 되었다.

 

이스라엘 임금인 르말야의 아들 페카 제이년에 유다 임금 우찌야의 아들 요탐이 임금이 되었다. 요탐은 그의 나이 스물다섯 살에 임금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열여섯 해 동안이나 다스렸다(기원전 740-735). 이렇게 그의 통치 기간은 불과 여섯 해이다. 그렇지만 열여섯 해라고 알려진 것은 다른 임금들과의 공동 통치를 포함한 연대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므나헴과 프카흐야, 페카와 동시대에 유다를 계속 통치하였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 이름은 여루사인데 알려진 대로 차독의 딸이었다. 그는 자기 아버지 우찌야가 하던 그대로, 주님의 눈에 드는 옳은 일을 하였다. 그러나 산당들은 없애지 않아, 백성은 여전히 산당에서 제물을 바치고 향을 피워댔다.

 

바로 그가 주님의 집 윗대문을 세웠다. 대문벤야민 윗대문’(예레 20,2) 또는 북쪽으로 난 윗대문’(에제 9,2)과 같을 것이다. 요탐이 한 나머지 행적은 유다 임금들의 실록에 쓰여 있다. 이 시대에 주님께서는 유다를 거슬러 아람 임금 르친과 이스라엘 임금 르말야의 아들 페카를 보내기 시작하셨다. 이는 유다와 아람/에프라임 사이의 전쟁에 관한 첫 번째 언급이다. 전쟁의 위협은 특히 아하즈 치세에 유다를 짓누르게 된다. 요탐은 조상들과 함께 잠들어 자기 조상 다윗의 성에 조상들과 함께 묻히고, 그의 아들 아하즈가 그 뒤를 이어서 임금이 되었다.

 

이스라엘 르말야의 아들 페카 제십칠년에 유다 임금 요탐의 아들 아하즈가 임금이 되었다. 아하즈는 스무 살에 임금이 되어서, 예루살렘에서 열여섯 해 동안 다스렸다(기원전 735-716?). 사실 그는 열여섯 해가 아닌 스무 해 동안이나 다스렸다. 아무튼 그는 자기 조상 다윗과는 달리 주 그의 하느님의 눈에 드는 옳은 일을 하지 않고, 이스라엘 임금들의 길을 따라 걸었다. 그는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쫓아내신 민족들의 역겨운 짓을 따라, 자기 아들마저 불 속으로 지나가게 하였다. 이는 열왕기에서 자기 아이를 죽여 제사에 바치는 첫 번째 언급이다. 이런 제사는 법령이 단죄하고(신명 12,31; 18,10 참조), 여러 예언자들과 여러 곳에서 단죄한다. 아하즈는 산당과 언덕과 온갖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물을 바치고 향마저 피웠다.

 

그리하여 그때에 아람 임금 르친과 이스라엘 임금 르말야의 아들 페카가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아하즈를 포위하였지만 끝내 정복하지는 못하였다. 이렇게 유다를 치기 위하여 아람과 이스라엘이 맺은 동맹은 다윗 왕조에 대해서는 아주 중대한 위협이었다. 바로 그 무렵에 아람 임금 르친은 엘랏을 아람에 복귀시키고, 엘랏에서 많은 유다인들을 몰아내었다. 그리하여 에돔인들이 엘랏으로 가서 오늘날까지도 그곳에 살고 있다. 이렇게 에돔인들에게 그들의 옛 항구를 되돌려줌으로써, 아람 임금 르친은 아람/에프라임 동맹에다 에돔을 끌어들일 수가 있었다.

 

그즈음 유다의 아하즈는 아시리아 임금 티글랏 필에세르에게 사신들을 보내어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임금님의 종이며 아들입니다. 올라오시어, 저를 공격하고 있는 아람 임금과 이스라엘 임금의 손아귀에서 저를 꼭 구해 주십시오.” 이처럼 아하즈는 아시리아 임금의 신하임을 스스로 선언하고, 이후 계속 이 관계를 유지한다. 이 순간부터 예루살렘은 자주독립을 빼앗긴다. 그러나 어떻든 티글랏 필에세르에게 호소함으로써 그는 아시리아가 이스라엘을 침략토록 한다. 아하즈는 주님의 집과 왕궁의 창고에 있는 은과 금을 거두어, 아시리아 임금에게 선물로 보냈다. 아시리아 임금은 그의 말을 들어 주었다. 아시리아 임금은 다마스쿠스로 올라가 그곳을 점령하였다. 그러고는 그 주민들을 키르로 사로잡아서 가고, 르친을 죽였다(기원전 732).

 

그리고 아하즈 임금 자신은 아시리아 임금 티글랏 필에세르를 만나러 다마스쿠스로 갔다. 다마스쿠스에 있는 제단을 보고, 아하즈 임금은 그 제단의 자세한 그림과 모형을 우리야 사제에게 보냈다. 그래서 우리야 사제는 제단을 세웠다. 아하즈 임금이 다마스쿠스에서 보내온 것에 따라, 그가 돌아오기 전에 그대로 만들었다. 임금은 다마스쿠스에서 돌아와 그 제단을 보고, 제단으로 가까이 다가가 그 위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자기 번제물과 곡식 제물을 바치고 제주를 따라 부었다. 또 자기 친교 제물의 피를 제단에 뿌렸다. 그리고 주님 앞에 놓인 청동 제단은 주님의 집 앞에서, 곧 새 제단과 주님의 집 사이에서 옮겨다가 새 제단의 북쪽에 놓았다.

 

그런 뒤에 아하즈 임금은 우리야 사제에게 이렇게 명령하였다. “이 큰 제단에서 아침 번제물과 저녁 곡식 제물, 임금의 번제물과 곡식 제물, 그리고 이 나라 온 백성의 번제물과 곡식 제물과 제주를 바치시오. 또 번제물과 희생 제물의 피를 모두 이 제단에 뿌리시오. 청동 제단은 내가 다시금 생각해 보겠소.” 그리하여 우리야 사제는 아하즈 임금이 명령한 대로 다 하였다. 아하즈 임금은 받침대의 널빤지를 잘라 물두멍을 받침대에서 떼어 내고, 청동 황소들이 받치고 있던 바다 모형을 돌바닥 위에 내려놓았다. 또한 아시리아 임금 때문에 주님의 집 안에 지어진 안식일 전용 복도와 임금의 바깥 출입구를 주님의 집에서 아예 없애 버렸다. 이렇게 아하즈가 한 나머지 행적은 유다 임금들의 실록에 쓰여 있다. 아하즈는 자기 조상들과 함께 잠들어 다윗 성에 조상들과 함께 묻히고, 그의 아들 히즈키야가 그의 뒤를 이어 임금이 되었다.

 

유다 임금 아하즈 제십이년에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어, 아홉 해 동안 다스렸다(기원전 732-724).[계속]

 

[참조] : 이어서 ‘34. 이스라엘의 마지막 임금 호세아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아자르야,여콜라,요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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