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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8주간 수요일]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3-08-09 조회수463 추천수4 반대(0) 신고

[연중 제18주간 수요일] 마태 15,21-28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엿보이는 예수님의 태도는 꽤나 낯설고 의아합니다. 군중들의 배고픔과 고통을 당신 자신의 일처럼 마음 아파하시고 가엾이 여기시던 마음 따뜻한 예수님이셨습니다. 당신께 청하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때로는 청하지 않았는데도 필요하다면 알아서, 척척 치유해주시던 예수님이셨습니다. 남자와 여자, 죄인과 악인, 이방인과 유다인을 차별하지 않고 한결같은 사랑으로 대하시던 공정한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마귀에게 고통받는 딸로 인해 딱한 처지에 놓인 여인이 당신께 도움을 청하는 부르짖음을 못들은 체 외면하십니다. 당신은 길을 잃고 헤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 오셨노라며 이방인인 그녀에게 ‘선’을 그으십니다. 심지어 유다인들이 이방인들을 무시하고 비하할 때 ‘개’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처럼, 그녀를 ‘강아지’에 빗대어 표현하시며 당신 은총을 받기에 합당하지 않다고 차갑게 밀어내십니다.

 

우리 역시 때로 내 기도에 응답해주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무거운 침묵 앞에서, 내가 청하고 바라는대로 들어주지 않으시는 그분의 냉정한 거절 앞에서 실망하고 마음이 착잡해질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께 간절히 매달리고 기도했는데도 꼬인 문제가 해결되기는 커녕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것처럼 느껴질 때는 나를 고통 속에 방치하시는 그분이 참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이 하느님께서 우리를 당신께로 한발 더 가까이 부르시는 때입니다. 실망과 좌절의 체험을 통해 당신께 더 간절히 매달리게 하시려는 겁니다. 내가 누리는 것들이 결코 ‘당연’하지 않음을 깨닫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품게 하시려는 겁니다. 내 안의 욕망, 고집, 교만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깨끗하게 비워내고 당신께서 주시는 충만한 은총을 최대한 많이 담아가도록 준비시키시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그 가나안 여인에게 그토록 가혹하게 구신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자신이 바라는걸 좀 이뤄달라고 그분께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는 호칭으로 부르는걸 보면 그분께서 어떤 분이신지는 알고 있었지만, 다른 유다인들이 하느님께 기도할 때 그분을 귀찮게 졸라대어 원하는걸 얻어내려고 하는 것처럼 예수님으로부터 원하는걸 ‘쟁취’해내려는 모습이었던 겁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녀를 무관심으로 대하시면서 일차로 그녀의 ‘힘’을 빼놓고자 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은 ‘이방인’이 아니라 ‘유다인’들을 위해 오셨다고 그네에게 ‘선’을 그으심으로써 이차로 그녀의 힘을 빼놓으십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예수님께 구체적으로 자신이 바라는 바를 요구하지요. 이에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그녀를 ‘강아지’에 비유하시며 은총은 아무나 당연한듯이 요구할 수 있는게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와 자격을 갖춘 이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임을 강조하십니다. 그러자 그녀는 비로소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자신이 바라는대로 꼭 이루어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자신과 딸은 주님께서 베푸시는 은총을 ‘부스러기’만큼만 받아도 구원받기에는 충분할거라고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 겸손하게 낮추는 모습을 보입니다. 비로소 은총을 받아들이기에 적합한 상태가 된 것이지요. 그리고 주님은 당신께 온전히 의탁한 그녀의 바람을 이루어주십니다.

 

참된 믿음에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주님을 온전히 믿기 위해서는 그분의 뜻이라면 무조건 받아들이고 따르는 겸손한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그 겸손이 주님과 그분 뜻을 바라보는 우리 마음을 성숙하게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의 가나안 여인처럼, “그렇습니다. 그러나”의 믿음을 갖게 합니다. 한 없이 약하고 부족하며 죄 많은 비천한 내 처지를 인정하되, 주님 앞에서 주눅들거나 위축되지 않고 끝까지 그분 사랑과 자비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지니게 되는 겁니다. 그 마음이 우리가 주님 은총을 온전히 받아 누리는 복된 존재로 변화되도록 이끕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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