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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福女 강경복 수산나 님 (순교일; 7월 2일)
작성자정태욱 쪽지 캡슐 작성일2021-06-29 조회수9,205 추천수2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福女 강경복 수산나

(순교일; 7월 2일)

 

 

       

 

                                                            

                                                

   

 

         

           福女 강경복 수산나(5.29) (순교일: 7월 2일)

 

성인명강경복 수산나 (姜景福 Susan)
축일5월 29일
성인구분복녀
신분양인, 궁녀, 동정 순교자
활동지역한양
활동연도1762-1801년
같은이름 강 수산나, 강수산나, 수잔, 수잔나

 

 

 

 

 

 

 

 

 

 

 

 

 

 

      

                                         

 

     

 

 

 

 

 

 

 

 

강경복(姜景福) 수산나(Susanna)는 1762년 양인 집안에서 태어나 궁녀가 되었으며,

순교할 때까지 동정으로 생활하였다.

그녀가 살던 집은 ‘양제궁’이었는데,

사람들은 이를 ‘폐궁’(궁궐에서 쫓겨난 왕실의 친족이 거처하던 집이라는 뜻)이라고도 불렀다.

그 집의 주인은 송 마리아와 그녀의 며느리 신 마리아였다.

이들은 일찍부터 천주교에 입교하여, 주문모 야고보 신부나 여회장 강완숙 골룸바와 자주 오가고 있었다.

1798년 무렵, 집주인 송 마리아는 강 수산나를 불러 천주교 교리를 설명해 주면서 이를 믿도록 권유하였다.

이때부터 강 수산나는 다른 궁녀들과 함께 교리를 배우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또 집주인들과 함께 자주 강 골룸바의 집으로 가서

주 야고보 신부가 집전하는 미사나 신앙 집회에 참석하곤 하였다.

그러다가 주 야고보 신부에게 세례를 받은 이후로는 더욱 열심히 교리를 실천하였다.

1801년 2월, 신유박해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주문모 야고보 신부는,

노비인 남구월의 안내를 받아 양제궁으로 피신하였다.

이때 강 수산나는 어머니가 사는 집에 갔다가 우연히 ‘포졸들이 천주교 신자들을 찾으러 다닌다.’는

말을 듣고는 급히 양제궁으로 가서 이 소식을 전하였다.

이 때문에 주 야고보 신부는 다행히 그곳을 빠져나와 다른 곳으로 피신할 수 있었다.

주 야고보 신부가 피신한 뒤 강 수산나도 양제궁을 몰래 빠져나와 다른 곳으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뒤따라온 포졸들에게 체포되고 말았다.
포도청으로 압송된 강 수산나는 곧바로 문초와 형벌을 받아야만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여기에 굴하지 아니하고, “이미 천주교에 깊이 빠져 있으므로,

비록 죽음을 당할지라도 마음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라고 고백하였다.

그러자 포도청에서는 그녀를 상급 재판소인 의금부로 이송하였으며,

그녀는 이곳에서 더 혹독한 문초와 형벌을 받아야만 하였다.

이때 그녀는 정신이 혼미해진 탓에 잠시 마음이 약해져

“다시는 천주교를 믿지 않겠습니다.”라고 진술하였다.

의금부에서는 이러한 진술을 듣자 강 수산나를 형조로 내려보냈다.

그러자 그녀는 의금부에서 잠시 마음이 약해졌던 것을 크게 뉘우치면서 다시 신앙을 굳게 증언하였다.

박해자들이 주문모 야고보 신부를 밀고하고 마음을 돌이켜 신앙을 버리도록 강요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이제 신앙을 위해 형벌과 죽음을 달게 받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문초가 끝나자 다음과 같이 마지막으로 신앙을 고백하였다.

“저는 천주교에 깊이 빠져서 이를 올바른 도리라고 생각하였으며,

양제궁에 거처하면서 주문모 신부님을 찾아가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후 천주교 신앙을 믿는 마음이 갈수록 굳어져 왔으니,

형벌을 당해 죽는다고 할지라도 조금도 신앙을 버릴 생각이 없습니다.”

강경복 수산나는 마침내 강완숙 골룸바 등 동료들과 함께 사형 판결을 받게 되었다.

그런 다음 1801년 7월 2일(음력 5월 22일)에 서소문 밖으로 끌려 나가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이때 그녀의 나이는 39세였다.

 

       

*124위 복자 자료집에서

 

 

김예정의 은혜음자리

 



 

 

 

 

 

 

 

 

 

 

 

궁녀의 삶을 접은 후 폐궁에 머물면서

다른 궁녀로부터 교리를 배워 입교한 후 자매들과 신앙 생활을 유지하다가

체포된 후에 주문모 신부의 행방을 추궁하는 혹독한 형벌에 잠시 배교했으나

이내 믿음을 지키려는 일념으로 모진 매를 참아내고

 

39세에 서소문 형장에서 참수 순교하신

복녀 강경복 수산나 님이시여

 

저희가 주님의 교회를 바르게 지키는 일꾼이 될 수 있도록

천상의 기도로 저희를 이끌어 주옵소서!...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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