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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버지의 기대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6-10 조회수463 추천수6 반대(0) 신고
 
 
 

아버지의 기대 - 윤경재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마태5,17-19)

 

 어느 선생님에게 열두 살 먹은 딸이 있었습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딸에게 어머니 역할까지 해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학교 일 탓에 딸에게 시간을 충분히 내주지 못하는 게 문제였고, 그 때문에 늘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는 어서 크리스마스 휴가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크리스마스 휴가 때는 딸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막상 휴가가 시작된 첫날부터 딸아이는 자기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혼자 지내면서 식사 시간 이외에는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음날도 그랬고, 또 다음 날도 그랬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될 때까지 계속 그랬습니다. 아버지는 하루하루를 외롭게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침내 크리스마스 아침이 되자 크리스마스트리에 선물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뜨개질로 짠 양말이었습니다. 딸아이는 두 눈을 반짝이면서 말했습니다. “아빠,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까지 이걸 다 짜야 한다고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몰라요. 제가 방문을 걸어 잠그고 지금까지 했던 건 바로 이 뜨개질이었어요. 이젠 다 짰어요. 아빠 양말이에요! 좋으세요?” “암, 좋고말고! 얘야, 정말 예쁘게 짰구나, 고맙다.”

  아빠는 딸아이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딸을 덥석 껴안았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아, 이 철없는 아이야. 양말은 시장에 가서 사면되지 않니? 난 양말 같은 건 원하지 않아. 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단 말이야! 난 너와 함께 지내며 너의 사랑을 받고 너의 관심을 사고 싶었던 거야.”

 

 이 이야기에 나오는 딸아이처럼 유대인들도 하느님께 사랑을 드리고자 애썼습니다. 그러나 아빠가 진정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는 살피지 못하고 자기 나름대로 짐작하여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킴으로서 그 사랑을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율법이란 것도 하느님께서 원하신 최소한의 규정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세세한 일까지 엄격한 규정을 만들어 철저하게 지키려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장벽만 설치한 셈이었습니다. 문을 닫아 건 아이처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참 사랑의 관계를 멀리하는 오류를 범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율법과 예언서라고 지칭하여 구약의 가르침을 거스르지 말고 지키라고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그러나 그 밖의 규정은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율법학자들은 계명을 하나라도 소홀히 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가르쳐 왔으나 예수께서는 하늘나라에 들어는 가되 작은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라고 말하셨습니다. 스스로 지키고 가르치는 사람은 큰 사람이라 불릴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율법을 곧이곧대로 지키는 것보다 율법 정신을 알고 실천하는 것이 하느님께서 더 즐겨 받으시기 때문이라는 이유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으신 것은 당신께서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을 잊지 않으시겠다는 의미였습니다. 노아와 약속하신 계약의 표는 무지개였습니다. 아브라함과 맺은 약속의 표지는 할례였습니다. 탈출기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계약의 표지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귀결되는 십계명이었습니다. 그런 표지는 하느님과 인간이 서로 약속을 맺은 행위를 잊지 말자는 뜻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 밖에 법조항들은 그들이 스스로 민족적, 종교적 일체감을 느끼고 생활의 규범을 정하기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께서는 그 조항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하느님께 지니고 있는 충정을 이해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 사랑하는 마음을 올바로 전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교인이나 유대인, 이슬람 교인이 모두 한 분이신 하느님을 모시고 사랑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다만 실천 방법에 약간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이제는 하느님 사랑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인류끼리 서로 사랑하는 방법도 강조하고 모색하여야 할 때입니다. 그 작은 단서를 오늘 복음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다. 서로가 주장하는 율법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서로 간에 일치되는 것부터 나누는 계기를 삼아야 하겠습니다. 그런 것이 진정한 인류 평화를 원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에 펴는 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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