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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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육적인 철거민 <과> 영적인 철거민 [영적인 파괴자]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23 조회수465 추천수5 반대(0) 신고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금요일 복음말씀>
 
 
 
거주하고 있는 곳이 옥탑방이다. 창고로 만든 것인데 사람이 살게 했다. 그러니 부족한게 많다. 화장실은 지하에 있고 주방도 없으며 난방 시설도 안 되어 있는 방이다. 아시는 분이 방세 없이 계단만 청소해 주면서 살도록 마련해 준 것이다. 여기에도 비가 엄청 쏟아져서 지하의 물이 1층으로 역류하여 1층의 인터넷과 함께 사용하는데 이상하게 고장이 나서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했고 어제는 '노가다' (지하철 공사장)를 갔다왔다. 혹시나 고쳐졌나 했지만 아직이다.
 
비정규직으로 몇년 전에 '해고정리' 되고 (부서 소멸), 어느듯 '자살의 충동'까지 가져 경주 보문단지 호수 옆에서 어설렁 거리면서 살았다. 대학생 때는 독재에 대한 항거로 누구보다도 선두에 섰다. 시위 중에 화염병 투척을 미루는 동료의 화염병을 빼앗아 정문에서 가로막는 교수님들, 학생과 직원들을 향해 던졌다. 길을 비켜 달라는 의지였다. 그러나 화염병 속에는 휘발유 뿐만아니라 '신나'도 결합되어 있었기에 터지면서 넓게 사방으로 불꽃이 튀었다. 아쉽게도 아버지로 선생님으로 모셨던 정치학과 교수님 양복 옷에 불이 붙었다. 사람들은 모두 시간이 멈춘듯이 순간 적막이 흘렀다. 다행스럽게도 옷을 벗어 화상을 면했고 나는 잡혀가서 고문과 회유를 당하였다. 그래서 '용산사태'의 장면도 추측할 수 있다. 그 당시 순수운동 측면으로써 '인간'을 중시하였다. 가로막는 인간들은 모두 처분됨이 당연하다고 여겼는데 막상 그분이 화염에 휩싸이자 묘한 갈등에 빠졌다. 인간을 위한다고 행동하는 내 자신이 도리어 인간을 없애고 있었던 것이었다.
 
지금도 이런 모습을 볼 때가 있다. 그 당시 '이념학습'을 하면서 정당하다고 확신한 것은 <전체 인간을 위해 약간의 인간은 희생되어야 한다>는 신념이었다. 동정심을 극복하기 위한 이념학습이 기초과정이었다. 그러나 나는 달랐던 점이 있었다. 그들은 정치계파(노선)에 손을 대고 있었고 나는 철저하게 인간 중심이었다. 고등학생 때에도 '휴머니즘'에 매료되기도 하여 여러 글을 모은 산문집을 내기도 했었다. '인간을 위해서 인간을 없앤다'는 것을 화염병 투척을 통해 그 모순을 피부로 직접 느끼게 되었다. 그 후로 나는 발걸음을 돌렸다. .......
 
게시판에서는 이념 대결이 벌어진다. 한 신앙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줄곧 나는 이념적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었다. 누구보고도 좌파이니, 보수꼴통이니 하면서 말한 바가 없고 '자살'에 대해서도 나도 함께 느끼는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죽음과 부활'에서 다른 차원이다. 그 분은 죽었고 나는 살아있다. "우리는 날마다 죽음을 겪는다. 그러나 이 죽음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이다"는 뜻을 가진 성경 말씀에 나는 지금까지 살고 있다. 새롭게 살고 있는 있는 것이다. 가장 보잘것 없는 길 잃은 어린 양을 위해 내 목숨을 걸고 지킨다. 그 자리에는 예수님께서도 계신다. 나는 이것이 '부활된 삶'이다고 믿는다. 죽은 자는 부활이 아니다. 나는 "이미 죽은 몸이다" 그래서 온갖 곤궁한 처지에서도 담대하다.
 
신앙 안에 인간이 있는게 아니다. 인간 안에 신앙이 있다. 이념 안에 인간이 있는게 아니라 인간 안에 이념이 있어야 한다. 이념 때문에 인간을 없앤다면 (사람이 수단화) 이념 안에 인간이 있는 것이다. 목적은 '인간'이다. 인간 안에 이념이 있을 때 인간은 이념의 수단화가 되지 않고 인간이 산다. (생명과 평화이다) 어떤 이념을 반대하는 자들은 모두 처분되어져야 한다는 것은 바로 '목적이 되는 그 인간'을 없애는 것이다. 개발 정책에 의해 육적으로 철거되는 사람과 이념 때문에 영적으로 철거되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영적인 파괴자는 '파라오' 이다. 이념 때문에 인간을 몰아내는 (없애고자) 하는데 신앙을 가진 이들을 없애고자 하기 때문이다. 교회를 조롱하고 미사를 조롱하면서 영적인 것들을 파괴시키고자 하는 '파괴자'인 것이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위해 이념이 있고 신앙이 있는 것이지, 이념을 위해 혹은 신앙을 위해 인간이 있는 것은 아니다와 같다. 인간이 목적이 되어야지 이념이 목적이 되든가 혹은 신앙이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이념 안에서 신앙방식을 따지는 것은 신앙을 도구화 하기 때문이다. 인간을 이념의 수단화로 삼기 때문이다. 신앙 안에서 인간이 있어 인간을 소멸시키는게 아니라 인간 안에 신앙이 있어 인간을 살려야 한다. 겉으로는 인간을 위하는 척 하지만 인간을 몰아낸다. 영적인 철거민이 바로 나다. 나는 그 자리에서 부활된 삶(성체적인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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