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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8-08-16 조회수441 추천수3 반대(0) 신고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마태 19,13-15)

 -유광수 신부-

 


오늘 독서에서
"살려느냐? 마음을 고쳐라."(에제 18,32)는 말씀이 있다.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다. 정말 나는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마음을 고쳐야 한다. 어떤 마음으로 고쳐야 하는가? 오늘복음에서 모델을 제시해주신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즉 우리가 고쳐야할 마음은 어린이와 같은 마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린이와 같이 되는 것이다. 어린이의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우선 순수하다. 아직 자기 생각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무엇으로 틀이 짜여져 있지 않은 마음이다.

 

미성숙한 마음이요,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는 마음이다. 무엇을 먹고 자라느냐에 따라서 예쁜 마음으로 자랄 수도 있고 악하고 나쁜 마음으로 자랄 수 도 이는 미완의 마음이다. 어린이의 마음은 누가 무엇을 주고, 먹이느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자랄 수 있는 마음이다. 한 마디로 어린이의 마음은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어린이는 엄마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는 광고가 바로 어린이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예수님은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이 큰 선물은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선물로 받을 수 있다. 엄마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어린이만 엄마의 사랑을 먹을 수 있듯이 하느님도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하느님을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고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하느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하늘나라를 선물로 주신다. 하느님은 우리가 하늘 나라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축복해주신다. 그러나 아무나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와 같이 마음이 비어있고 순수하고 하느님께 의존하는 사람만이 받아들일 수 있다.  모두가 이 큰 선물을 받아들이는가? 아니다. 못 받아들인다. 몰라서 못 받아들이고 알면서도 받아들일 마음이 없기 때문에 받지 못한다. 자기 마음 안에 도저히 하느님의 선물을 받아들일 자리가 없는 사람도 있다.

 

왜 그런가? 자기 자신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그 동안 자기만 먹고 자랐다. 자기 생각, 자기 욕심, 자기 고집, 자기 계획, 자기 취미, 자기 건강, 자기 미래 등 항상 자기 것으로만 가득 채우기 때문에 도저히 자기 것이 아닌 그 어떤 것도 하느님 아니라, 하느님의 할아버지라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이런 사람은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왜? 그 사람 안에 하늘나라에 관한 것이 있어야 들어가지 아무 것도 없는데 어떻게 들어가는가?

 

취장암으로 3년간 고통을 겪다가 임종할 때가 가까이 다가 왔다는 것을 알고 고통 중에 지내야 했던 3년간의 생활을 되돌아보면서 자신의 삶을 정리하여 책으로 남긴 시카고의 교구장이신 베르나르딘 추기경의 저서의 마지막 페이지에 "평화의 선물"이라는 소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있다.

 

이 책을 끝맺으면서 나는 피로감에 지칠 대로 지쳐 있으나 한편으로는 큰 의미가 있는 이 책을 완성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 결말 부분을 써 내려가면서 내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하고 평온하다. 오늘은 11월 1일, 가을이 겨울에게 길을 내어주고 있다. 얼마 되지 않아 나뭇잎은 그 아름다운 빛을 잃게 되고 세상은 눈으로 뒤덮일 것이다. 땅은 휴식을 취하며, 사람들은 두꺼운 옷을 걸치고 걸음을 재촉할 것이다. 시카고의 겨울은 너무나 매서워 죽음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새 생명과 경이로움을 안고 봄은 또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돌아오는 새봄에 나는 이 세상에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전혀 다른 방법으로 나는 곧 새로운 생명을 경험하게 되리라. 내세가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일생 동안 최선을 다해 봉사하도록 이 세상으로 나를 부르신 하느님께서 지금은 본향(本鄕)으로 부르고 계심을 확신한다.


많은 이들이 내게 천국과 내세에 관해 이야기를 해 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그들보다 더 아는 것이 없기에 그저 미소로 답할 뿐이다. 언젠가 한 젊은이가 내게, 과연 하느님과 하나 되기를 고대하고 있는지 그리고 나보다 앞서 간 사람들과의 해후를 고대하고 있는지에 대해 물어왔다. 그때 나는 이 책에서 언급한 바 있는 젊은 시절의 경험과 연관시켜 말했다.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난생 처음으로 부모님의 고향인 북부 이탈리아의 토나디코 디 프리미에로를 방문했을 때, 나는 전에도 그곳에 가본 것처럼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오랜 세월동안 어머니의 사진첩을 들여다보았기에 그곳의 산과 들 그리고 집과 그곳의 삶을 이미 알고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 그곳에 처음 들어섰을 때 나는 이렇게 감탄했다. "맙소사, 내가 아는 곳이예요. 드디어 고향에 왔어요."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건너가는 것도 어쩐지 그와 유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바로 그곳이 본향임을 알게 될 것이기에 말이다.

 

하늘 나라에 대해서 참으로 알아듣기 쉽게 적은 글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 하늘 나라는 나와 전혀 낮선 곳이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좋고 아름다운 곳이라 하더라도 낮선 곳은 나의 고향이 아니다. 우리가 고향을 그리워하고 고향에 가면 마음이 편안한 것은 그곳에 나의 어릴적 삶이 베어 있기 때문이다. 이미 내 몸과 마음에는 고향의 흙 냄새가 베어있고 자연의 정취가 베어있다. 나는 어릴 적부터 고향의 흙과 바람과 물과 햇빛을 먹고 자랐다. 그런 것들이 나의 마음과 정신을 형성시켜왔다. 고향 사람들의 아름다운 정과 따뜻한 마음 그리고 구수한 이야기들이 나의 성장기를 도왔고 나는 그런 것들을 먹으며 자랐다.

 

그래서 고향에 가면 편안하고 고향을 떠나오면 고향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모든 산과 들, 바람과 나무, 구름과 물이 다른 곳엔들 없겠는가? 어쩌면 더 아름다운 자연들이 있는 곳도 많다. 그래도 그런 곳보다 고향이 더 좋은 것은 나의 몸에 고향의 정취가 베어있기 때문이다.


어린이가 엄마를 그리워하는 것은 어릴 적 자기의 생명을 편안하고 안전하게 감싸주고 덮어주고 안아주며 키워주었던 엄마의 품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 입에 생명의 음식인 젖을 갖다 주었고 몽실몽실한 젖을 만지게 해줌으로써 10개월 동안 안식처로 삼고 자랐던 엄마의 태반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체험이 없는 어린이는 엄마의 품이 어떤 것인지를 모른다. 엄마의 품속에서, 치맛자락에서 자라보지 못한 어린이는 엄마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 가를 모른다. 오히려 자기를 키워주었던 할머니의 품속을 더 그리워 할런지 모른다.


천국 즉 하늘 나라는 하늘 나라의 선물을 받아본 이만이 하늘 나라의 그리움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정말 죽은 후에 천국에 갔을 때 마치 고향에 왔다는 안도감을 그리고 평화를 느낄 수 있으리라. 우리 모두가 가고 싶어하는 하늘 나라는 이미 이 세상에서 하늘 나라의 선물을 그리고 축복을 받고 자란 이에게만이 고향과 같은 하늘 나라가 될 것이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즉 하늘 나라는 어린이가 엄마의 사랑을 받아먹고 자라듯이 하느님의 축복을 받고 하느님의  선물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사람만의 몫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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