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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8-08-12 조회수996 추천수10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8년 8월 12일 연중 제19주간 화요일
 
 
 Amen, I say to you, unless you turn and become like children,
you will not enter the Kingdom of heaven.
(Mt.18.3)
 
 
제1독서 에제키엘 2,8─3,4
복음 마태오 18,1-5.10.12-14
 
 
두 명의 정신병자가 병원에서의 탈주를 시도했습니다. 우선 시트를 찢어서 길게 묶어 창밖으로 늘어뜨렸지요. 그리고 한 명이 길게 늘어뜨린 시트를 타고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잠시 뒤 다시 올라와서는 말합니다.

“안되겠어. 너무 짧아.”

다시 그들은 심지어 속옷까지 동원하는 등 뭐든 눈에 뛰는 건 다 꺼내 묶었습니다. 다시 그 남자가 줄을 타고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다시 올라와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역시 안 되겠어. 이번엔 너무 길어.”

분명히 1층까지 내려가려면 그 줄이 바닥까지의 높이보다 길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 사람은 짧아서 안 된다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긴 것까지도 너무 길어서 안 된다면서 다시 올라온 것입니다. 그래서 정신병원에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문득 우리들도 이러한 모습을 취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즉, 주님께서는 나보다 훨씬 크시고 나의 생각을 뛰어넘는 크신 분인데도 불구하고 그래서 주님의 그 크심을 인정해야 하는데, 나에게 주님을 맞추려고 할 때가 너무나도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주님께 대한 원망도 많습니다.

왜 저에게 이러한 고통과 시련을 주시냐는 원망들, 나에게는 왜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부와 명예를 주시지 않느냐는 원망들, 내게 재주와 능력이 없음을 탓하는 원망들……. 이밖에 많은 원망을 주님께 표현하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주님께 원망을 드리고 있다는 것은 나한테 주님을 맞추려는 욕심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닐까요? 그 반대로 나를 주님께 맞춰야 하는 것이 옳은 길인데 말이지요.

주님은 부족하고 나약한 우리 인간들의 생각과는 너무나 다른 분입니다. 바로 그 점을 오늘 복음을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인구분포를 봤을 때도 어린이의 인구분포는 우리나라에서 10%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늘 나라에 들어갈 사람은 1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일까요? 물론 그것은 아니겠지요. 주님께서는 100% 모두가 예외 없이 하늘 나라에 들어가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 자격이 어른처럼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좋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또한 욕심과 이기심이 가득한 어른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린이처럼 순수한 마음. 있는 그대로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른의 마음으로 하늘 나라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 어른의 마음을 버리고 어린이의 마음을 채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게 주님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나를 맞추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 나를 맞춥시다.




마케팅을 가르친 할아버지(댄 J 샌더슨, ‘섬기는 기업 문화가 경쟁력이다’ 중에서)

어느 날 오후 할아버지께서 나를 밭으로 데려가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조그만 돌멩이들을 모두 주워 담아라.”

날이 몹시 더웠을 뿐더러, 내겐 그런 일 말고도 하고 싶은 일이 수백 가지는 더 있었다. 그래도 별 수 없이 낡은 양동이 하나를 집어 들고 돌멩이를 줍기 시작했다. 꽤나 오래 일을 했다 싶을 무렵이 되자 나는 지루함을 참기 힘들었다.

“별로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것 같구나, 얘야.”

“지겨워요. 전 돌을 줍는 거 안 좋아해요.”

“그래? 그럼 네가 좋아하는 일은 뭐니?”

“운동이요.”

할아버지가 다시 물으셨다. “혹시 농구 좋아하니?”

“엄청 좋아하죠!”

“여기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양동이가 농구 골대고 돌멩이들이 농구공이라면 어떨까? 30분 동안에 양동이를 몇 개나 채울 수 있을 것 같니?”

나는 조그만 돌멩이를 하나 집어 들고 가벼운 점프 슛을 날려 보았다. 돌멩이는 양동이 한가운데로 쏙 들어갔고 나도 모르게 탄성이 새어 나왔다. 밭의 돌멩이들은 점점 사라졌고, 나는 상상 속의 농구 게임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나는 기업의 리더들에게 광고와 마케팅의 차이에 대해 교육할 때 이 교훈을 종종 써먹곤 한다. 할아버지께서 내게 텃밭의 돌멩이들을 주워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때에는, 거기 돌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저 ‘광고’ 하신 것뿐이다. 그러나 양동이가 농구 골대고 돌들이 농구공이라는 말로 나를 설득하셨을 때 할아버지께서 하신 것은 바로 ‘마케팅’이었다. 그 일에 대한 할아버지의 관점을 내가 수용한 결과, 자갈은 메디슨스퀘어 가든(뉴욕의 대표적인 명소)이 되고, 나는 뉴욕 닉스 팀의 스타급 포워드가 되어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완수할 수 있었다. 기운 빠지고 고문 같기만 하던 순간이 갑자기 가장 즐거운 여름날의 기억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사람 중심의 문화가 바로 이러하다. 그런 문화에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광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마케팅’해야 한다.
 
 

 
Free As A Bird - Om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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