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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면을 벗겨 내시는 예수님.
작성자유웅열 쪽지 캡슐 작성일2008-08-11 조회수480 추천수4 반대(0) 신고
 

가면을 벗겨 내시는 예수님.


현대 문학은 예수님을 바보나 어릿광대의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


문학은 조롱당하는 예수님에게서

우리의 가면을 벗겨내는 바보의 원형을 보았다.


로마 병사들은 예수님을 조롱거리로 삼았다.

하지만 현대 문학은 이런 조롱을 거꾸로 뒤집어 놓았다.


조롱받는 그분이 바로 우리의 거울이 되었다.

그분은 우리의 가면을 벗기고 진실을 보게 하셨다.


예수님은 권력자들의 심기를 건드리고 경건한 척하는

사람들의 가면을 벗기고 감추어진 뒷면을 들추어내셨다.


율법마저도 무시하셨다.

바리사이들이 격분하자 그들이야말로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데려오자

예수님은 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면서 그들의 가면을

벗기셨다.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그분은

어린아이처럼 흙장난을 하며 바리사이들의 엄숙한 행동을

폭로하셨다.(요한 8,2-11참조)


예수님은 광대처럼 사람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킴으로써

그들이 속으로 생각하는 것, 원하는 것을 드러내셨다.

그들의 마음속에 하느님이 계시지 않다는 사실을 폭로하셨다.


예수님은 규범에 얽매이지 않았다.

기득권자 바리사이들의 눈에 예수님은 그저 광대일 뿐이었다.

예수님은 광대 역할을 통해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보여주셨다.


우리가 진지한 얼굴을 하지 않아도 뵐 수 있고,

어린아이나 광대나 바보처럼 즐겁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만날 수 있는 하느님이시다.

우리가 자유로운 삶을 살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이시다.


여러분은 진지하고 엄숙한 사람, 지적이고 중요한 사람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본 적이 있습니까?


가면을 벗었을 때 무엇이 드러났습니까?

여러분도 위선적인 도덕군자처럼 격분한 적이 있습니까?

그런 분노의 감정 뒤에 무엇이 숨어 있었나요?


예수께서 여러분의 가면을 벗긴다면 여러분은 어떤 모습일까요?

여러분의 진실을 주로 왜곡하는 가면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50가지 모습

오늘의 묵상:                       안젤름 그륀 신부 지음.


가톨릭교회에서는 세례예식을 통하여 새로 태어남을 성유로서

이마에 인호를 그으면서 영적인 신앙생활의 시작을 알립니다.


또 한편으로 대자, 대부의 관계를 맺음으로써 신앙생활을 확고히

할 것을 다짐하면서 서로간의 버팀목 역할을 하여 예수님이 사셨던

그 길을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의 지위와 소명을 함께 주는 예식인 것입니다.


이 엄격한 지위와 소명이 과연 어떻게 변질되어 가고 있으며

허울 좋은 가면의 겉옷을 입고 단지 세례 때에 갖추어야 하는 의식인 것처럼

형식적인 것으로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씁쓸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신비한 것은 비록 그렇게 의식과 형식적인 관계로

전락하였다 하더라도 길에서 우연히 스치더라도 그 대자, 대부의 관계는

살아나고 깊은 인연인 것처럼 서로를 기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 몇 명이나 ‘대자, 대부’의 관계를 맺었던 가!

기억조차하지 못하는 경우를 돌이켜 보면서 자기의 소명을 게을리 한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도 해보면서,

대자, 대부의 참다운 관계를 마음  속으로 그려 보았습니다.


어제는 20 여 년 전에 대자, 대부의 관계를 맺고 지내온 대자의 아버님.

그분은 사회학의 원로 학자로 작년까지 집필에 전념하신 분, 그리고 정신적인

활동을 계속하시면서 비록 세례를 받지 않으셨을 뿐 자손들에 대한 걱정을

벗어나서 하느님께 맡겨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다는 말씀으로 그분의 신앙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한 십 여일 전에 그분, 원로 교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겠다는 선택으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하시면서 나를 생각하시고 대부의 관계를 부탁하셔서,

그동안 며칠 동안 고민하다가 어제 세례예식에 참석하였습니다.


천 상 병 시인의 시구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름다운 이 세상에 조용히 소풍 나왔다가 이런 분 저런 분 만나

서로간의 외로움도 달래보면서 서로간의 버팀목이 되어 참 삶을

살다가 고향으로 돌아가 하느님께 참 잘 살았습니다.”하고 말하리라.


그분, 원로 교수님의 연세도 있고 하여 자주 만나 뵙지는 못하더라도

이곳 묵상 방에 올렸던 가식 없이 글로 옮겼던 솔직한 묵상 서를

한 달에 한 두 번씩 우송으로 전해 들여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제는 참으로 뜻 깊은 하루를 보냈습니다.

내 영혼도 제대로 추수 리지  못하면서도 세례예식에 참석하여

그분, 원로 교수님의 새로운 영적 태어남에 기쁨을 줄 수 있었던 것이

순수한 하느님의 은총임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오늘은 이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주님의 은총으로 어제 세례 받은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성령을 보내시어 충만한 삶의 의욕을 안겨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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