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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토록 위대한 분 ........ [김상조 신부님]
작성자김광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8-08-06 조회수434 추천수7 반대(0) 신고
 
 
 
사무실에서 바깥 바람이 시원해서 문을 열어두고 있었더니
모기가 들어와서 이마와 턱 밑에 한 방씩 먹이고 갔다.
미사 드려야 하는데 이마와 턱이 가려워서 화가 났다.
그러면서도 그걸 예상도 못하고 문을 열어둔 내가 어리석은 걸 인정해야 했다.
모기에 물리면 모기를 탓을 하게 되지만
모기를 탓할 게 아니다. 모기는 본성적으로 사람을 물게끔 되어 있다.
고통도 마찬가지다.
고통은 속성상 사람을 괴롭게 하고 힘들게 하므로 거기서 벗어날 생각은 할 수가 없다.
따라서 고통이 온다면 그대로 당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예수님이 보여주신 영광스런 모습은
그 고통이 어떤 결과를 가져다 주는지 가르쳐준다.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잘 알고 있듯이 모세는 모세5경의 저자고
그래서 율법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엘리야는 예언자중의 으뜸으로 죽지 않고 하늘에 올랐다가
마지막 때가 되면 다시 나타날 사람이었다.
유다인들은 성서를 율법과 예언서라고 불렀다.
율법을 상징하는 모세와 예언서를 상징하는 엘리야가 함께 나타난 것은
구약의 “성서”가 예수님 앞에 나타났다는 뜻이다.
격의없이 대화를 주고 받았다는 것을 보면
심각한 논쟁을 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굳이 구약을 대표하는 두 사람이 동시에 예수님 앞에 나타난 것이
제자들에게(정확히는 3사람) 미래 영광을 미리 보여주기 위한 것 뿐일까?
구약을 대표하는 두 사람도 예수님께 뭔가 중요한 사항을 의논하기 위해 나타났을 것이다.
루카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날 일(exodus)”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논쟁을 한 것은 아니지만 아주 심각한 문제에 대해서 의논하기 위해 두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아, 하늘나라에 들어간 성인들도 모르는 것이 있구나.
그래서 뭔가 중요한 결정사항이 있어서 사람들이(제자들)이 보는 것도 무릎쓰고 예수님과 의논하기 위해 나타났구나.’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더 잘 알 수 있는 것 같다.
위대한 성인들, 하늘나라에 들어간 성인들도 중요한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 문의를 드려야 한다.
하물며 믿음도 약하고 의지도 약한 우리는 끊임없이 예수님께 여쭈어야 한다.
이렇게 할까요, 저렇게 할까요 하고 물어야 한다.
강론준비 할 때 마다 느낀다.
이만하면 강론 준비 좀 했다 싶어서 그만 두고 싶을 때가 많다.
그 때마다 하고 나면 부족한게 있고 더 많이 준비해야 했는데,
좀더 묵상해야 했는데 하는 뉘우침이 들곤 한다.
세상에 완벽한 준비는 없다.
그러니 두 번 세 번 들여다보고 고치고 수정해야 한다.
그렇게 할수록 좀 더 완성된 강론이 된다.
그건 당연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모든 일이 다 그렇다.
한 두 번 고민하고 쉽게 처리하면 반드시 문제점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모세와 엘리야도 모르는 것이 있어서 예수님께 나타나 설명을 들어야 했다.
우리도 생활중에 자주 예수님께 여쭙고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 한 가지,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는
영광을 얻기 위해서는 고통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즉,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난 의논한 일은 예루살렘에서 일어날 일,
곧 십자가 죽음에 관한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위대한 분, 구약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중요한 결정을 하기 위해
갑작스럽게 예수님 앞에 나타나 의논을 드려야 할 정도로 위대한 분이 반드시 겪어야 할 것도 십자가였다.
안락한 삶은 아무 수고도 없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무 수고도 없이 안락한 삶이 주어졌다면,
그것은 결코 행복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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