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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너 자신을 알라 - 9.9,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09-09 조회수458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1.9.9 연중 제23주간 금요일                                                                                      

1티모1,1-2.12-14 루카6,39-42

 

 

 

 

너 자신을 알라

 

 

 

 

오늘은 ‘자기 인식(self-knowledge)’

즉 자기를 아는 것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가장 쉬운 것이 남 판단하는 것이요 가장 어려운 게 자기를 아는 일입니다.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가장 모르는 게 ‘나’일 수 있습니다.

 

모든 공부의 목적은 결국 자기를 아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 자기를 아는 것과 연결되지 않는 공부는 헛공부입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공허하다는 것은 바로 참 나를 만나지 못해서입니다.

 

이웃과의 소통에 앞서 자기와의 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와의 소통이 잘 되어 나를 알고 살아갈 때 자유와 기쁨이 있습니다.

 

 

평생공부가 자기를 알아가는 공부입니다.

철들자 망령이란 말도 있듯이 자기를 아는 공부는 참으로 지난한 여정입니다.

자기를 알아 갈수록 자기의 한계와 부족을 알아 겸손입니다.

 

소크라테스에 관한 일화가 생각납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거리를 걸으면서

 사람들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

 "너 자신을 알라" "너 자신을 알라" " 너 자신을 알라"

 어느 날 한 제자가 물었다.

 "그러시는 선생님은 당신 자신에 대해서 아십니까?"

 소크라테스가 대답했다.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나는 바로 '내가 모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무지의 지를 설파하는 진정한 현자 소크라테스입니다.

 

또 재미난 일화를 소개합니다.

사막의 안토니오 스승을 찾은 제자들에게 안토니아 압바는 질문을 던집니다.

모두 자신 있게 대답할 때 마다 ‘너는 모른다.’ 대답하던 분이

한 제자의 ‘저는 모릅니다.’라고 대답한 제자에게 ‘너는 안다.’라고

대답하며 기뻐했다는 일화입니다.

 

또 어느 정치 평론가의 인터뷰 기사 중 한 대목도 잊혀 지지 않습니다.

 

 

-이 건 좋은 정치인의 기본자세다.

  제가 지난 10년 동안 유력 정치인 중 안 만나본 사람이 없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왜 내가 안 돼?’ 나라고 못할 이유가 뭐야?’가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사실 출발점은 ‘왜 나여야 하는가?’ 그거여야 한다.

 내가 과연 자격이 있는가를 되묻는 것은

 좋은 정치인의 기본자세라고 생각한다.

 이런 자세가 되는 사람을 최근 딱 두 분을 만났다. 문재인과 안철수.-

 

부단히 자기를 묻는 것은 비단 좋은 정치인뿐 아니라

좋은 사람의 기본조건입니다.

진정 자기의 한계와 부족을 아는 겸손한 사람들은 남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연민과 공감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입니다.

 

자기를 몰라 남 판단입니다.

자기를 알 때 남을 압니다.

자기를 아는 겸손한 사람들 남을 탓하기에 앞서 자신의 부족을 성찰합니다.

 

 

자기를 아는 것은 바로 회개의 은총입니다.

모르는 사람은 알려줘도 모릅니다.

회개의 은총으로 자기를 깨달아 참 나를 알아갈 때 참 기쁨에 자유입니다.

 

이 참 나(眞我)를 깨닫지 못해 자기를 모르고

가짜 나(假我)를 사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날 수 있다.”

 

끊임없이 자기를 알아갈 때 눈 밝은 이가 되어

분별의 지혜로 형제 눈 속의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입니다.

 

참 힘든 게 무지의 병이자 죄입니다.

자기를 알기가 이토록 힘들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아는 것과 자기를 아는 것은 함께 갑니다.

 

하느님을 알아갈 때 은총으로 나를 알게 되고 이웃을 알게 됩니다.

하느님의 은총만이 치유할 수 있는 무지의 병이자 죄입니다.

하여 영적 지도자의 목적은

‘하느님을 잘 사랑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것’과

‘자기를 알게 해주는 것’ 두 가지라 하는데

이 둘은 하나로 연결되어있음을 봅니다.

 

하느님을 사랑할수록 자기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끊임없는 회개의 은총으로 나를 깨달아 알 때

존재감 넘치는, 자존감 넘치는 삶입니다.

사도 바오로가 좋은 모범입니다.

 

“나는 전에 그분을 모독하고 박해하고 학대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믿음이 없어서 모르고 한 일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주님의 자비로 무지에서 해방되어 참 나를 살게 된 사도 바오로입니다.

믿음이 없어서 모르고 한 일이라 합니다.

믿음과 함께 가는 자기 인식임을 깨닫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우리 주님의 은총이 넘쳐흘렀습니다.”

 

바로 이 믿음과 사랑과 은총 안에서 주님을 만나

무지의 병은 치유되어 참 나를 만나는 복된 미사시간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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