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식별 (구별해 냄) [과] 집중 (바라다 봄)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08-07-16 조회수494 추천수4 반대(0) 신고

 
인간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는 몸과 마음이다. 많은 과학자들은 인간의 몸이야말로 연구하면 할수록 신비로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 또한 어떤 말로도 정의(定義)할 수 없을 만큼 신비롭다. 성경에서 ''마음''은 생물학적으로 신체의 중심적 기관인 심장을 의미하지만, 상징적으로는 감정과 사유 그리고 의지의 자리를 나타내며, 신앙과 영성이 나오는 곳도 바로 마음이다. 즉 인간의 마음은 하느님의 영이 활동하시는 곳(예레 31,33;에제 36,26)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학에서는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이해할까? 마음이 육체 안에 담겨있고 또 외부의 영향을 받으면서 이원적(二元的) 존재상황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내가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는 내가 바라는 것을 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합니다… 여기에서 나는 법칙을 발견합니다. 내가 좋은 것을 하기를 바라는데도 악이 바로 내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내적 인간은 하느님의 법을 두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내 지체 안에는 다른 법이 있어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고 있음을 나는 봅니다" (로마 7,15-23). 

 

주자의 자세한 설명을 들어보자. "마음의 지각능력은 하나인데 왜 人心 道心의 구분이 있다고 하는가? 그것은 인심은 형체와 기운의 사사로움에서 생겨났고, 도심은 하늘이 부여한 본성의 바름에 근원한 것이어서 그 지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심은 위태로워 불안하고 도심은 미묘해서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형체가 없을 수 없으므로 아무리 훌륭해도 인심이 없을 수 없으며, 사람은 누구나 하늘이 부여한 아름다운 본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아무리 모자란 인간도 도심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인심과 도심 두 가지가 한 마음 사이에 섞여 있어서 다스릴 방도를 알지 못하면, 하늘의 보편적 진리가 인간의 사사로운 욕심을 이기지 못하게 된다." 결국 사도 바오로가 인간 내면에 대한 같은 이해의 관점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론의 출발점으로 삼았다면, 주자는 같은 상황에서 인간 수양론의 두 갈래 방법을 도출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인간이 하늘이 부여한 순수하고 아름다운 본성으로서의 도심을 이원론적 상황에서 어떻게 잘 식별하고 보존할 것인지, 그리고 위태롭고 불안한 인간의 사사로운 욕심으로서의 인심을 어떻게 잘 다스려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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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정리해 보자. 인간의 마음은 하나이지만 그 안에는 인심과 도심이 섞여있다. 인심은 인간의 형체와 기운에서 나온 사사로운 욕심이고, 도심은 하늘이 부여해준 아름답고 올바른 본성이다. 그래서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밀한 것이다. 마치 사도 바오로가 자신 안에 ''하느님의 법''과 ''또 다른 법''이 있어 도대체 자신을 알 수 없다고 고백한 것과 같다. 그런데 여기에서 유학의 수양론은 시작한다. 인심은 위태로우므로 그것을 다스리는 방법은 잘 살피는 것(惟精)이다. 정(精)에 대해 주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精)은 인심과 도심 사이를 살펴 섞이지 않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영성신학의 개념으로 말하면 식별(識別)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것이 하느님의 작용과 활동이고, 어떤 것이 인간의 사사로운 욕심에서 나온 생각인지 잘 분별하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중용(中庸)에서 말하는 택선고집(擇善固執)의 관점에서 말한다면 올바른 식별을 통해 선을 선택하는 ''택선''(擇善)의 과정이 될 것이다. 유학은 이러한 모든 과정을 자신의 사사로운 욕심을 제거하는 ''거인욕''(去人慾)이라는 수행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다.

 

반면 도심은 은밀하여 드러나지 않으므로 그것을 잡기 위한 수양 방법은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惟一)이다. 주자는 일(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一)은 본심의 올바름을 지켜 잃지 않게 하는 것이다"다른 말로 표현하면 집중하는 것이다. 사실 동양의 모든 종교들의 수양방법, 그 핵심은 본질적인 것을 지키고 그것에 집중(集中)하는 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중용의 택선고집(擇善固執)의 관점에서 본다면 올바르게 선택한 것을 끝까지 놓지 않고 지키는 ''고집''(固執)의 과정이 된다. 물론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도 인간 마음 수양의 최고의 경지는, 우리의 내면에서 하느님이 마음껏 활동하시고 작용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그분께 내어드리는 것이다. 식별과 집중, 그것이 관건이다. 하느님 것에 대한 식별 그리고 하느님께만 집중하는 것이다.

[유학따라 떠나는 신앙여행] 23 24 최기섭 신부(가톨릭대 신학대 학장, 동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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