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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능력 지상주의를 거부하시는 예수님.
작성자유웅열 쪽지 캡슐 작성일2008-07-16 조회수516 추천수10 반대(0) 신고
 

능력 지상주의를 거부하신 예수님.


직장과 가정에서 요즘 많은 사람들이 능력에 따라

대접을 받고 있다. 이렇듯 능력을 과시해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으려고 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능력 지상주의’를 단호하게

거부하시며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대로 살아가라고

가르치신다. 꼭 능력을 보이지 않더라도 아무조건 없이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신다.


죄수들과 가난한 사람들, 사회에서 멸시를 받고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 아무런 능력을 보이지 못한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관심을 보이신다.


예수님께서 어떤 식으로 업적 지상주의의 틀을 깨셨는지

잘 보여주는 두 비유가 있다.

첫째는, 포도원 주인의 비유에서 새벽부터 일한 일꾼이나

저녁때가 되어 일한 일꾼이나 똑같은 품삯을 지불한 것이다.


이와 같이 ‘말째가 첫째가 되고 첫째가 말째’가 될 것입니다.

(마태 20, 16) 중요한 것은 일과 품삯이 아니라 내가 일을

하면서 얼마나 성실했으며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주었느냐 하는

사실이다. 일이 건전한 삶의 모습이며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셨다.


둘째는, 잃었던 아들 비유에서 자기 삶을 살겠다고 유산을 미리

챙겨 떠난 둘째 아들이 돈을 전부 날려 버리고 밥을 얻어먹기

위해 돼지 치는 굴욕적인 일을 하게 되었고 사정은 더욱 나빠져

결국 집에 계신 아버지에게 돌아갈 결심을 한다.


그러나 맏아들은 매일같이 자기 의무를 다했으며 아버지의 명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작은 아들의 귀환에 잔치를 베풀어

주는 것을 본 맏아들은 화를 냅니다. 화를 낸다는 것은 일을 하면서도

무언가 꿍꿍이속이 있었다는 것이고 아버지의 관심과 사랑을 얻고자

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이 두 비유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공덕을

쌓을 필요가 없다는 가르침을 주신다. 하느님은 당신의 사람에

어떤 조건을 제시하시지 않는다.


누군가가 자신을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유롭게 무언가를 할 수 있고 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지지 않는다. 일이 그냥 재미있어서, 자연스럽게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일을 한다.


예수님은 무언가를 꼭 해야 한다는 생각 없이 자유로우셨다.

이런 자유를 누리셨기에 도리어 많은 일을 하실 구실이 있었다.

예수께서 공적을 세워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야겠다는 생각 없이

자유로우셨기에 비유로 말씀하신 것처럼 백배의 결실을 얻을 수

있었다. 


백배의 결실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공적 때문이 아니라

믿음 때문이다.

믿음 때문에 나를 짓누르는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내 안에 내면의 샘이 솟는다.


여러분은 무엇으로 삽니까?

여러분은 자신의 공적으로 자신을 평가하나요?

어떤 일을 할 때, 직장에서 근무할 때, 신앙 활동을 할 때,

여러분이 행동하는 동기는 무엇인가요?

일을 하시고 싶은 마음이 있나요?

                              예수님의 50가지 모습

                              안젤름 그릔 신부 지음.

오늘의 묵상.

나는 요즈음  매일 묵상 방을 찾아 들어와서

읽었던 좋은 글을 소개하면서 그에 따른 묵상의 글을 올리고,

 

또 매주 본당 주임 신부님의 주일 미사 강론 말씀을

요약 정리하여 홈 페이지에 올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행동은 누구로부터 칭찬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 두는 바입니다. 


내가 좋아서 또는 읽었던 글들이 너무 좋아서 혼자만

간직하고 있기 보다는 누군가 이웃과 나누고 싶어서입니다.


그리고 또 주일 미사 강론을 요약 정리하여

주임 신부님으로부터 혹시라도 칭찬이라도 받지 않을까 해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

나 자신이 주일 미사를 좀 더 진지하게 참여하고 혹시라도

분심 중에 잘 듣지 못한 분들, 그리고 주일 미사에 참석하지

못하신 분들을 위하여 하는 것이지,

누구의 지시나, 누구의 제청에 의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미사 강론을 옮긴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무모하기 짝이 없으며 괜한 일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주임 신부님의 의도와 달리 전해진다면 오히려 해가

될 수 있고, 사전에 어떤 양해가 있었던 것도 아니기 때문에

돌아오는 것은 어떤 책망이나 꾸지람만이 주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어쩌면 내가 외국은행에서 10여 년간 근무했었기 때문에

그 연장선상에서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지점에서 매주

연석회의를 합니다. 참석한 간부들은 매주 돌아가면서 회의 내용을

요약 정리하여 본점에 문서로 보고 합니다. 지점에서 하는 일이

본점의 의도와 같은지를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주님!

제가 하는 일은 오로지 ‘순수한 지향’을 갖고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것이오니,


주님도 잘 지켜보아주시어

제가 혹시 흐트러지거나 잘못하지 않도록

저를 이끌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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