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우리의 사명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작성자김세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2-10-21 조회수458 추천수11 반대(0) 신고
 
 
연중 제29주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 마태오 28,16-20




 무슨 일을 해야 하나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당신의 외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모든 것을 내놓으셨습니다. 그분의 다함없는 사랑 안에 머물 수 있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특별히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는 오늘 하느님의 사랑을 온 세상에 전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도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세상을 떠나시면서 마지막 당부를 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28,19-20)

 

부활하신 주님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고, 유령을 보는 줄 알고 놀란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의 반응에는 상관없이 복음을 선포하기를 당부하셨고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함께 있겠다는 약속까지 해 주셨습니다. 물론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사랑의 계명을 주시고 진리 안에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만 이것은 주님의 유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말씀을 소홀히 할 수 없는 법입니다. 그만큼 중하기 때문에 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동안에 주님의 말씀에 소홀함이 많았다면 더더욱 유언의 말씀만이라도 지키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내가 복음을 전한다 해서 그것이 나에게는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1코린9,16)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세례를 주고 계명을 가르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사도 바오로는 오늘 2독서에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로마10,17)하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먼저 주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아니 전하기 위해서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자주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말씀을 전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 전서 3장 15절의 말씀을 보면 “다만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거룩히 모십시오.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시오. 라고 적고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주님의 말씀으로 무장 되어있어야 주님을 제대로 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자주 읽고 또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주님을 깊이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르짖음이 우리 안에 숨겨지지 않도록 우리 각자의 능력에 따라 구원의 진리를 전해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다른 사람의 믿음을 부러워하고 특히 개신교 신자들의 기도하는 모습이라든지 성경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말 잘하는 것을 보고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천주교는 말씀이 죽었고, 개신교에는 말씀이 살아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성경을 읽지 않으니 문제입니다. (우리가 말을 잘 못하십니까? 말 주변이 없습니까? 뒤에서 남 얘기하는 데는 누구한테도 뒤떨어지지 않잖아요?)

 

공을 잘 차려면 열심히 공을 차야 합니다. 피아노를 잘 치려면 열심히 피아노를 쳐야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를 잘 하려면 자꾸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는 기도를 하면서 배우게 됩니다. 하느님에 대해서 잘 알려면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자주 봐야 합니다. 사실, 보는 게 아니라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루 한 구절이라도 성경을 읽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본당 생활지표가 무엇입니까? “성경대로 생각하고 성경대로 살자!”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사실 누가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행하지 않으면, 그는 거울에 자기 얼굴을 비춰보는 사람과 같습니다. 자신을 비추어 보고서 물러가면, 어떻게 생겼는지 곧 잊어버립니다.(야고1,22-24) 라고 말하였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거울을 보고 얼굴에 무엇이 묻었으면 그것을 닦아내야 하듯 말씀에 비추어 마음 곧 영혼의 상태를 살핀 후에는 잘못된 것은 반드시 고쳐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과거의 삶이 어떠했든 하느님을 믿기 때문에 지금 새롭게 변화된 삶을 산다면 그 자체가 복음 선포가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 참으로 못된 놈이었다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그 과거를 살지 않는다면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므로 저 사람 성당 나가더니 사람이 몰라보게 변했어! 하는 새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사실 주님을 전하는 것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5,16)고 말씀하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베풀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말재주로 하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말재주로 전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 뜻을 잃고 맙니다.”(1코린1,17) 우리의 삶이 복음 선포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해야겠습니다.

 

한 가지 전교의 방법을 제시합니다.

 

다른 사람을 칭찬해 주십시오. 자기자랑하지 말고 남을 자랑해 주십시오. 자기 자랑하는 사람을 보면 속이 거북하고 밥맛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남을 흉보고 험담하거나 비난하고 비방하면 그것이 반드시 자기에게 화로 되돌아옵니다. 주님께서는 너희가 내 귀에 대고 한 말에 따라, 내가 반드시 너희에게 그대로 해 주겠다.(민수14,28) 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섣불리 남을 탓하거나 판단하지 말고 많이 자랑해 주십시오.

 

 

자랑 받을 것이 없어도 억지로라도 만들어서 자랑해 주십시오. 그 사람의 인격에 상관없이 자랑해 주면 자랑 받을 사람으로 변합니다. 내가 나를 자랑하면 죄이지만, 남을 자랑하는 것은 큰 복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을, 아내를, 시부모를 자랑해 드리고 이웃을 자랑해 주십시오. 우리성가대를 자랑해 주고 평협임원들, 성모회, 구역 책임자들을 자랑해 주십시오. 서로를 자랑해 주고 감싸주고 위하는 우리공동체의 모습을 만드는 것이 곧 전교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성당에 가니까 서로를 흉보고 비난하고 비방하며 찬바람이 돌더라 하면 누가 성당 나오고 싶어 하겠습니까? 우리의 삶 때문에 이웃사람이 하느님을 알게 되는데 걸림돌이 된다면 그보다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것은 하느님 앞에 큰 잘못을 범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지켜주는 가운데 하느님의 제자라는 것을 드러내시기 바랍니다. 앞에서 얘기했죠?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5,16)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방법으로 기도의 도구를 잘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묵주반지, 묵주 팔찌, 십자목걸이, 각종 기적의 메달, 성모님, 예수님 메달 등등.그냥 매달고 다니지 말고 그에 걸 맞는 기도와 일깨움으로 주님께 성모님께 누가 되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멋으로 달거나 꾸미지 말고 의미와 뜻을 새기는 가운데 다른 사람의 모범으로 서있도록 그리하여 역시 다르구나 하는 감동을 주어야 합니다. 내가 지니고 있는 기도의 도구를 통해 다른 사람의 궁금증을 자아낼 수 있고 그에 대한 바른 설명으로 주님을 전하는 기회를 만들면 좋겠습니다.

 

가정 안에서도 십자고상이나 성상, 성화를 집안의 중심에 모셔놓고 내가 하느님의 사람이다. 라는 일깨움의 시간을 자주 갖기를 바랍니다. 어느 집에 가면 신앙의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가 없는데 자기사진이나 명화는 아주 멋있게 꾸며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왕이면 주님을 첫 자리에 모시고 살기를 바랍니다. 물론 십자가를 비롯하여 성상이나 성화를 잘 꾸며놓고도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잘못입니다.

 

 

유명한 신학자중의 한 사람인 웨슬리는 항상 빈 의자를 곁에 놔두었다고 합니다. 그 빈자리는 예수님의 자리였다. 고 고백하였습니다. 우리도 삶의 자리에 항상 예수님을 모시고 칭찬과 겸손, 사랑으로 세상에 주님을 전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개신교신자가 줄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사회봉사 및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데 인색하고, 전도활동이 지나쳐서 혐오감을 주며 헌금을 너무 강조한다. 진리 추구보다 교세 확장에 집착하고 너무 시끄럽고 요란하다. 물량 주의에 물들어 있다. 도덕적으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이원규. 감신대.종교사회학교수)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교회 세습 문제도 대두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러한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합니다.

 

 

천주교에서도 경계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천주교인들이 개인화 하고 있고, 부유해 지고 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점점 보수화, 권력화하고 있다고 합니다. 거리홍보나 공연, 작품활동을 통한 문화 선교를 개신교에서 배우는 것은 긍정적인데 기존의 좋은 것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반성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의 말씀을 통한 새 삶을 살아감으로써 주님을 증거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교주일을 보내면서 무엇보다는 내 마음을 풍요롭게 하시길 빕니다.

 

요즘 “무늬만 신자가 늘어난다” 고 합니다. 신앙인은 없고, 종교인만 늘어나는 추세랍니다. 우리 신자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우리신자가 교적상 1,100가구에 3,050명신자입니다. 이는 이 지역인구대비 30%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수계신자, 다시말하면 1 년에 한번이라도 성사생활하는 분이 1,500여명입니다. 주일미사참례자는 평균 700여명입니다. 냉담교우가 50%가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반성을 많이 해야 합니다.

 

영세 받은 지 몇 년이 되었든 나를 통해서 성당을 찾아 영세를 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것은 열매를 맺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이 되었으면서도 나의 영향으로 하느님을 찾게 된 사람이 아직 없다면 나는 열매를 맺지 못한 것입니다.

 

매괴동산의 일반 등산객이 많습니다. 미래의 고객입니다. 전교의 대상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친절한 인사와 미소로 쉼터를 이용하여 차도 사드리고....감동을 주면 어떻겠습니까?

 

가까운 곳에서부터 전교의 방법을 잘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선한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에게나 옳은 사람에게나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비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도 우리의 마음에 드는 사람들과만 어울리지 말고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향하시기 바랍니다. 초대 주임 임가밀로 신부님이 기도하였듯이 더 많은 이들이 영성체할 수 있는 특권을 차지하도록 우리 어머니 매괴 성모님의 전구를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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