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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에게 예수님을 주시는 분 ; 사제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08-07-28 조회수673 추천수8 반대(0) 신고

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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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예수님을 주시는 분 ; 사제


"사제는 '하느님의 사람'"(2티모테오 3,17)이다.

우리를 위하여 성체 성사를 준비하고 우리 주님을 우리에게 주는 분은 누구인가?  그는 바로 사제이다.  만약 사제가 없다면, 미사 성제도 있을 수 없고, 영성체도 있을 수 없으며, 감실 안애서의 예수님의 현존도 있을 수 없다.
그러면 사제란 어떤 분인가? 그는 "하느님의 사람"(2티모테오3,17)이다. 사제가 될 사람을 많은 이들 가운데에서 매우 특별한 사명을 위하여 선택하시고 부르시는 분은 하느님 뿐이시다
"아무도 이 영예를 자기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아론처럼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얻는 것입니다" (히브리 5,4).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로마 1,1) 그를 다른 모든 이들로부터 따로 가려내신다.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영원히 지속되는 거룩한 인호(印號)를 주시어 그를 "영원한 사제"(히브리 5,6)로 만드신다.  그리하여 그가 하느님의 일만을 위하여 완전히 봉헌되도록 사제로써의 임무를 위한 초자연적인 능력들을 부여해주신다. 사제는 "사람들 가운데서 뽑혀 사람들을 위하여 하느님의 일을 맡고 있다. 그것은 그가 예물과 속죄의 제사를 바치기 위함이다" (히브리 5,1-2).


동정이며, 가난하며, 십자가에 못박혀 있다

서품을 통하여 사제는 영혼과 육신이 다 봉헌된다.  그는 하느님이신 사제, 즉 예수님을 닮아 완전히 신성한 존재로 된다.  그리하여 사제는 참으로 예수님의 연장(延長)이 되며 예수님의 성소(聖召)와 사명에 참여하게 된다.  그는 구속 사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들, 즉 하느님을 예배하며 복음을 전파하는 예수님의 일을 수행하게 된다. 그의 삶에 있어서 그는 예수님의 삶, 즉 동정이셨고, 가난하셨고, 십자가에 못박히셨던 그분의 삶을 완전히 재현하도록 불림받아 있는 것이다.  자신을 예수님과 같게 함으로써 그는 "이방인들 가운데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공복(公僕)"(로마15,16)이 되며 "영혼들을 지도하고 가르치는 이"(마태오 28,20)가 되는 것이다.

니싸의 성 그레고리오는 이렇게 썼다. "어제까지만 해도 백성 중의 한 사람이었던 그가 그들의 주인이 되고, 그들의 윗사람이 되며, 거룩한 것들에 대한 스승이 되고, 신성한 신비들에 있어서의 지도자가 된다." 
이렇게 되는 것은 천주 성령의 역사하심에 의해서이다. 왜냐 하면, "사람에게 사제직을 부여하는 것은 사람이나, 천사나, 대천사나, 그 어떤 피조물의 힘이 아니라 천주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성령께서 사제의 영혼을 예수님의 모상이 되게 하시며, 사제가 예수님의 일을 하게끔 능력을 주시어 "제대 앞에 선 사제는 예수님과 동일한 위격(位格) 안에서 예수님의 임무를 행하게 되며"(성 치쁘리언),  "하느님의 일이 전적으로 그에게 위탁되어 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그러므로 사제의 존엄성에 대하여 "천상적이다"(카씨언), "무한하다"(성 에프렘), "모든 위대함의 절정이다"(성 이냐시오 순교자), "천사들에 의해 사랑으로 존경된다" (성 그레고리오 나지안젠), 너무나 위대하여 "사제가 미사 성제를 드릴 때에는 천사들이 그의 주위를 에워싸고 희생되시는 주님께 대한 찬미를 합창한다"(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이러한 선언들에 대하여 놀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미사 때마다 일어나고 있다.


존경과 경의를 표시함

우리는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가 자신이 고귀한 사제직에 합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사제가 되지 않으려고 했음을 알고 있다.  성인은 사제들에 대한 특별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을 그의 "주인들"이라고 불렀다.  왜냐 하면, 성인은 그들 안에서 "천주 성자"만을 보았기 떄문이다.  그의 성체께 대한 사랑은 예수님의 몸과 피를 축성하며 나누어주는 사제들에 대한 사랑과 한데 융합되었다.  그는 특히 사제의 손을 존중하였다.  그래서 자주 무릎을 꿇고 사제의 손을 경건하게 친구하였다.  그는 사제의 발도 친구했으며 심지어는 사제가 걸어가면서 남긴 발자국들을 친구하였다.

성 요한 보스꼬는 모든 이들에게 이렇게 권고했다. "나는 여러분들이 사제들을 지극히 존경하시기를 촉구합니다.  사제들과 이야기하거나 길에서 만날 때에는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하십시오.  그리고 그들의 손을 경건하게 친구하십시오.  특히 말과 행동에 있어서 그들에 대한 경멸을 표시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이 거룩한 목자들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의 큰 징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신자들이 사제의 축성된 손을 경건히 친구하여 존경을 표시하는 것은 교회 안에 늘 계속되어왔던 관습이다.  로마 제국에서의 박해 시대에 주교들과 신부들이 더 이상 축성을 하지 못하고 강복을 줄 수 없도록 그들의 손을 잘라버리는 잔인무도한 관습이 행해졌다.  크리스챤들은 잘라진 손들을 찾아서 향료를 뿌려서 잘 보존하였다.

사제의 손을 친구하는 것은 또한 사제가 대리하는 예수님께 대한 신앙과 사랑의 섬세한 표현이 된다.  신앙과 사랑이 많을수록 사제 앞에 꿇어서, 예수님께서 매일 그 안에 기꺼이 임하시는 그들의 거룩하고 존경스런 손을 친구하려고 할 것이다.

성 아오스딩은 외쳤다. "오, 사제의 존엄성이여!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동정녀의 태 중에 임하셨던 것처럼 그의 손 안에 임하시는도다." 아르스의 거룩한 사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거룩하신 동정녀와 아기 예수의 죽그릇 등 로레또에서 전해지고 보존되어오고 있는 물건들이 매우 큰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사제의 손가락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귀한 몸을 만졌으며, 그분의 피가 담긴 성작과 그분의 몸이 있는 성합 속으로 넣어졌었는데, 이 손가락들보다 더 고귀한 것들이 있겠는가?"  아마도 우리는 그렇게 생각해본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다.  성인들의 예들을 살펴봄으로써 이것이 확인될 것이다.


사제의 양손을 친구한 성녀 헤드위가 왕비

가경자 카타리나 바니니는 탈혼 중에 천사들이 미사드리는 사제의 손 주위에 모여서 성체와 성작을 거양할 때 손을 받쳐주는 것을 보았다. 하느님의 종인 이 가경자가 어떠한 존경심과 사랑으로 사제들의 손을 친구했었을지 우리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성녀 헤드위가 왕비는 매일 아침 궁전의 소성당에서 바쳐지는 모든 미사들에 참례하였다. 그리고 성녀는 미사 성제를 드린 사제들에 대하여 매우 감사하고 존경스럽게 생각하였다. 성녀는 사제들에게 친절을 표시했으며 그들의 손을 경건하게 친구하였다.  그들이 식사를 걸르지 않도록 챙겼으며 그들에게 온갖 경의를 표하였다.  성녀는 이렇게 외쳤다. "하느님, 천국으로부터 예수님께서 내려오게 하시고 그분을 저에게 주신 신부님을 축복하여 주소서!"

성 파스칼 바일론은 수도원에서 짐나르는 일을 맡고 있었다. 사제가 도착할 때마다 이 거룩한 평수사는 꿇어서 사제의 양손을 경건히 친구하였다. 사람들은 성 프란치스꼬에 대해서 그랬던 것처럼 성 파스칼이 "사제들의 축성된 손들에 대한 애착심을 가지고 있었다."라고 말하였다.  성인은 사제들의 손이 그들을 존경스럽게 대하는 이들을 위하여 악을 쫓고 축복을 내려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왜냐 하면, 그들은 예수님께서 사용하시는 손들이기 때문이다.

삐에트렐치나의 비오 신부는 사제의 손을 애정 깊게 친구했으며, 때로는 갑자기 그 손들을 꼭 쥐었다. 하느님의 또 한 분의 종이었던 돈 돌린도 루오톨로 신부는 자기 손을 친구하려는 사람들을 거절할 신부가 어디 있겠느냐라고 말하였다.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존경의 행위에 대하여 기적들로써 보답해주셨다. 하루는 성 암브로시오가 미사 성제를 드린 후에 중풍걸린 여인이 가까이와서 그의 손에 친구하려고 하였다. 그 여인은 성체를 축성했던 손에 대한 깊은 신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즉시 치유되었다. 이와 비슷하게 베네벤또에서 15년 간 중풍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교황 레오 9세에게 미사 중에 교황이 손가락을 씻은 물을 마실 수 있게 허락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거룩한 교황은 예수님께 "주인의 식탁으로부터 떨어지는 빵부스러기라도" (마태오 15,27) 청했던 가나안의 여인처럼 겸손한 이 간청을 허락하였다.  이 여인 또한 즉시 치유되었다.


먼저 사제에게, 그리고 나서 천사에게

성인들의 신앙은 참으로 깊었으며 놀라운 결실들을 가져왔다.  그들은 "신앙에 의해서"(로마 1,17) 살았으며, 예수님을 섬기는 일이라면 한계를 모르는 신앙과 사랑으로써 행동하였다.  그들에게는 사제가 더 이상도 아니고 더 이하도 아니고 예수님을 대리하는 분이었다. "사제들 안에서 저는 하느님의 아드님을 봅니다."라고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는 말하였다.  아르스의 거룩한 사제는 설교 중에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사제를 볼 때마다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드 빠찌가 사제에 대하여 말할 때에는 사제를 "이 예수님"이라고 칭하였다.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와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는 사제가 걸어간 마루나 땅을 친구하곤 하였다.  하루는 성녀 베로니카 쥴리아니가 병자에게 성체를 모셔다주려고 사제가 수도원의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성녀는 그 계단의 맨 밑에 가서 무릎을 꿇고 계단을 올라갔다. 매 계단을 친구하면서, 그리고 그녀의 사랑으로 인하여 흐르는 눈물로 적시면서 올라갔다.  이 어떠한 사랑의 표양인가?

아르스의 거룩한 신부는 이런 말을 자주 하였다. "내가 사제와 천사를 만난다면, 사제에게 먼저 인사를 드리고, 그 다음에 천사에게 인사를 드릴 것입니다....... 사제가 없다면, 예수님의 수난과 죽으심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보물함에 금이 가득 들어있다고 하여도 아무도 이를 열어주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사제는 천상 보물들의 열쇠를 가지고 있습니다....."

흰 면병의 외양 안에 예수님께서 내려오시도록 하는 이가 누구인가? 누가 예수님을 감실 안에 모시는가? 누가 예수님을 우리들에게 주는가? 누가 우리들이 예수님을 모실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정화시켜주는가? 그 일을 하는 이는 사제이며, 오직 사제 뿐이다.  그는 "성소(聖所)를 돌보며"(히브리 13,10), "화해의 봉사직"(2코린토 5,18)을 맡아 있으며, "하느님의 신비를 관리하는"(1코린토 4,1) 분이다. 오, 예수님을 양떼에게 주기 위하여 자신들을 희생했던 영웅적인 사제들이 얼마나 많았던고!  많은 예들 중에서 하나만 들어본다.


"천국에서 만날 때까지 안녕히"

오래 전 브리따니의 한 본당에서 늙은 본당 신부가 임종을 맞고 있었다. 바로 그 때 본당 신자들 중의 한 명이 또한 죽음에 가까워 있었다.  그는 하느님과 교회로부터 떠나있던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신부는 일어나서 그에게 갈 수가 없었으므로 상심이 되었다.  그래서 보좌 신부를 그에게 보냈다.  그리고 죽어가는 이에게 언젠가 그가 성사들을 받지 않고서는 죽지 않겠다고 약속하였음을 상기시키라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들은 그 신자는 변명을 하였다.  "나는 그 약속을 본당 신부에게 한 것이지 당신에게 한 것이 아니요."  보좌 신부는 하는 수 없이 그를 남겨두고 올 수밖에 없었다.  본당 신부는 실망하지 않았다.  자신이 몇 시간 밖에는 더 못 살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들것에 실려서 그 죄인의 집까지 갔다.  그 집에 들어가서 죽어가는 사람의 고해를 듣고 성체를 영하여 주었다.  그리고 그에게 말하였다.  "천국에서 만날 때까지 안녕히!"  용감한 본당 신부는 들것에 실려서 다시 사제관으로 돌아왔다.  도착했을 때 담요를 들쳐보니 신부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사제들은 "생명"을 가져다주는 분들이요, 예수님과 영혼들 사이의 구원을 중재해주는 분들이다.  사제들이 모자라는 곳에서는 사람들의 영적, 도덕적 상태가 참으로 놀랄 정도로 타락된다.  사제 성소(聖召)와 선교 성소(聖召)에 대한 응답이 없는 곳에서는 예수님이 증가되지 않으며, 신앙이 약화되고 성숙되지 않는다.

한 번은 일본의 어느 부락의 지도자가 성 프란시스 사비에르의 하느님께서 인간들을 사랑하심에 대한 설교를 듣고 난 후에 그에게 물었다. "어째서 신부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렇게도 좋으신 하느님께서 이렇게 오랜 세월 후에야 크리스챤 신앙을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까?" 성인은 슬픈 어조로 대답했다. "그것을 알고 싶으십니까?  바로 이것이 이유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많은 크리스챤들에게 여러분들에게 와서 복음을 전하도록 영감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그분의 부르심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훌륭한 사제들은 교회에 안정과 풍성한 결실을 준다. 가경자 안토니 쉐브리에르는 "모든 참된 교회의 토대는 거룩한 신부들입니다. 그 기둥들도 거룩한 신부들입니다. 그 등불도 거룩한 신부입니다. 강론대에는 거룩한 신부가 있고, 제대에는 거룩한 신부가 있습니다. 신부는 또 한 분의 그리스도입니다 (alter Christus)!"라고 말하였다.


"성인 아니면 마귀입니다."

우리도 사제가 우리에게 주님을 모셔옴으로 인하여 그를 존경하고 그에게 감사드리자.  무엇보다도 그의 고귀한 사명, 즉 예수님의 사명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기도드리자.  "성부께서 나를 보내셨음같이 나도 또한 너희를 보내노라" (요한 20,21).  그것은 우리가 참으로 깊이 생각해보면 사랑으로 머리가 돌고 미쳐버리게 하는 하느님께로부터의 사명이다.
사제는 "하느님의 아드님에 비유된다" (히브리 7,3). 그리고 아르스의 거룩한 신부는 "우리가 천국에 가서야만 사제직의 위대함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가 이것을 지상에서 깨닫는다면, 죽을 것이다. 놀라서가 아니라 사랑으로 인하여....  하느님 다음에는 사제가 전부이다."라고 자주 말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숭고함과 위대함은 크나큰 책임감을 동반하며, 그것이 다른 이들과 똑같은 사제의 약한 인간성 위에 무겁게 놓이게 된다. 성 벨라도는 "사제는 본성으로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데, 존엄성으로는 지상의 다른 어떤 이보다도 초월한다.  그의 행동으로는 천사를 닮아야 한다."

하느님께로부터의 소명(召命), 고귀한 사명, 천사적인 삶, 지극히 높은 존엄성 - 약한 인간의 본성에게 주어진 얼마나 엄청난 짐인가! "사제직은 십자가이며 순교이다" 훌륭한 사제였고 하느님의 종이었던 에드워드 포쁘 신부는 이렇게 사제직을 잘 묘사하였다.

사제에게 주어진 영혼들의 구원을 위한 무거운 책임을 생각해보자. 그의 사명은 신앙을 불신자들에게 가져가는 것이며, 죄인을 회개시키고, 미지근한 자를 뜨겁게 하며, 좋은 것을 자극하여 더 좋게 하고 거룩한 이들을 격려하여 더욱 완덕에로 매진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참으로 예수님과 일치되어 있지 않으면 이 모든 것들을 어떻게 해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삐에트렐치나의 비오 신부는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사제는 성인 아니면 마귀입니다."  사제는 영혼들을 거룩함에로 이끌어가든지 아니면 멸망에로 이끌어간다.  자신의 성소를 합당하지 못한 행동으로 더럽히며, 주님께로부터 선택받은 봉헌된 지위를 저버리면서 성소를 짓밟는 사제는 얼마나 엄청난 파멸을 초래하는가!

성 요한 보스꼬는 이렇게 말했다 "사제는 천국에 가든 지옥에 가든 혼자 가지 않습니다. 그는 항상 대단히 많은 영혼들을 함께 데리고 갑니다. 그들은 사제의 좋은 사목과 표양으로 인하여 구원되든가 아니면 그의 사목상의 태만과 나쁜 표양으로 인하여 멸망합니다."

성 요한 비안네의 시성 조사록에서 우리는 이 거룩한 신부가 "그들의 성소의 거룩함에 맞지 않게 살아가는 신부들로 인한 파멸을 생각하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음에 대하여 읽을 수 있다.  삐에트렐치나의 비오 신부는 합당치 않고 불충한 사제들의 죄로 인하여 예수님께서 무서운 고통들을 받으시는 환시를 보고서 가슴이 찢어지는 듯 했다.


그분들을 위해서 기도드리자

천사적인 갈멜회 수녀였던 리지외의 성녀 테레사는 임종 떄에 다음과 같은 의향을 위하여 마지막 영성체를 하였다.  즉 그의 성소를 저버리고 탈선한 한 사제가 되돌아 오기를 위하여.  그리고 그 사제는 그의 임종 때에 예수님을 부르면서 회개를 하였다.

우리는 사제들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으로 바쳤던 영혼들, 특히 동정 영혼들에 대하여 알고 있다.  이런 영혼들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 매우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사제들을 위하여 기도와 희생을 봉헌하자.  위험에 처한 사제들을 위하여 그리고 확고하고 안전하게 나아가고 있는 사제들을 위하여.  탈선하고 있는 사제들을 위하여 그리고 이미 완덕에 이르고 있는 사제들을 위하여.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사제들의 부족함에 대하여 너무나 쉽게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 기도드려주어야 하는데.

유명한 스위스의 성인이었고 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플루에의 성 니콜라스는 사제들의 흠을 지적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퉁명스럽게 말해주었다. "그런데 당신은 사제들의 거룩함을 위하여 몇 번이나 기도드렸소? 교회를 위하여 좋은 성소들을 주시도록 무엇을 하셨소?  말해보시오."

그리고 우리가 제대에 선 사제를 볼 때마다 성모님께 기도드리자. 가경자 챨즈 지아친또처럼: "오 나의 사랑하는 성모님, 당신의 성심을 저 사제에게 주소서.  그리하여 미사를 합당하게 바치도록 하여주소서."

우리는 또 소화 테레사 성녀처럼 제대의 사제들이 성모님의 순결함과 섬세함을 가지고 예수님의 지극히 거룩한 몸을 만지도록 기도드리자. 더욱이 성모님과 지극히 일치되어서 미사 준비를 하였던 성 까예딴을 모든 사제들이 본받을 수 있도록 기도드리자. 성인은 마치 자신이 성모님인 것처럼 미사를 드렸다라고 사람들이 말하였다. 그리고 참으로, 성모님께서 베틀레헴에서 예수님을 당신의 품안에 안으신 것처럼, 사제가 미사 성제 중에 예수님을 그들의 손에 모시는 것이다.  티없으신 분께서 예수님을 갈바리아 산 위에서 희생 제물로 바치셨던 것처럼 사제도 제대 위에서 희생되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을 바치는 것이다.  동정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인류에게 주셨던 것처럼, 사제도 영성체 때에 예수님을 우리에게 준다. 그리하여, 성 보나벤뚜라는 제대에 선 모든 사제는 성모님과 밀접하게 일치되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그는 "성모님께 의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지극히 거룩하신 몸이 사제의 손에 의해서 봉헌되어야 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는 성모님께서 사제들이 어떠한 거룩함을 지녀야 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거울이 되신다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마리아의 태 속에 말씀이 강생하신 것과 사제의 손에 의해서 성체가 축성되는 것과의 지극한 가까운 연관성 때문이다.

우리들도 또한 성인들로부터 사제들을 존경하는 것을 배우며, 그들의 성화를 위하여 기도하며, 그들의 지극히 고귀한 사명을 위하여 도와드리자.

(성체 성사의 예수님께 대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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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성인의 통공 안에 있는 가족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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