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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묵상모음 [사순 제3주간 화요일 3월13일]
작성자원근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7-03-12 조회수460 추천수1 반대(0) 신고
♡ 3월13일 사순 제3주 화요일 복음모음 묵상 ♡

    <저희의 부서진 영혼과 겸손해진 정신을 받아 주소서.> ▥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25.34-43 그 무렵 25 아자르야는 불 한가운데에 우뚝 서서 입을 열어 이렇게 기도하였다. 34 “당신의 이름을 생각하시어 저희를 끝까지 저버리지 마시 고, 당신의 계약을 폐기하지 마소서. 35 당신의 벗 아브라함, 당신의 종 이사악, 당신의 거룩한 사 람 이스라엘을 보시어 저희에게서 당신의 자비를 거두지 마소서. 36 당신께서는 그들의 자손들을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 래처럼 많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37 주님, 저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민족이 되었습니다. 저희의 죄 때문에 저희는 오늘 온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백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38 지금 저희에게는 제후도 예언자도 지도자도 없고, 번제물 도 희생 제물도 예물도 분향도 없으며, 당신께 제물을 바쳐 자비를 얻을 곳도 없습니다. 39 그렇지만 저희의 부서진 영혼과 겸손해진 정신을 보시어 저희를 숫양과 황소의 번제물로, 수만 마리의 살진 양으로 받아 주소서. 40 이것이 오늘 저희가 당신께 바치는 희생 제물이 되어, 당 신을 온전히 따를 수 있게 하소서. 정녕 당신을 신뢰하는 이들은 수치를 당하지 않습니다. 41 이제 저희는 마음을 다하여 당신을 따르렵니다. 당신을 경 외하고 당신의 얼굴을 찾으렵니다. 저희가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해 주소서. 42 당신의 호의에 따라, 당신의 크신 자비에 따라 저희를 대 해 주소서. 43 당신의 놀라운 업적에 따라 저희를 구하시어, 주님, 당 신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소서.”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마태18,21-35 21 그 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 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 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23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 에게 비길 수 있다. 24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 왔다. 25 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 고 명령하였다. 26 그러자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7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 채도 탕감해 주었다. 28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그러자 그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29 그의 동료는 엎드려서, ‘제발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 고 청하였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그리고 가서 그 동료 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31 동료들이 그렇게 벌어진 일을 보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죄다 일렀다. 32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33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34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 리에게 넘겨 빚 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35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우리는 서로 수많은 마음의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갑니다. 이러한 마음의 상처는 미움과 복수심의 근원이며, 또한 상처 로부터 자신을 지켜 내기 위한 공격 본능을 자극합니다. 그러나 공격 본능을 통해 나타나는 미움과 복수심은 상처를 치유해 주는 역할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상처의 고통을 가중시킬 따름입니다. 1995년 미국 오클라호마의 연방 정부 청사에 대한 폭탄 테러 사건은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낸 커다란 참사였습니다. 이 사건 의 범죄자는 곧 붙잡혀 사형 선고를 받고 희생자들 부모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처형되고 말았습니다. 많은 언론에서는 사형 이 집행된 이후 이 장면을 지켜본 희생자들 부모들의 마음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희생자들 부모와 가족들은 한결같이 무엇인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느낌과 허무한 마음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또한 안타깝기 그지없는 한편으로, 후련해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상처의 가해자에 대한 공격이나 처벌이 자신이 받은 상처의 치유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상처의 진정한 치유는 오직 용서로만 가능 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에 비로소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일곱 번뿐만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용서가 죽기보다 힘겨울 때> 죽었으면 죽었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다른 것은 다 하겠다. 그러나 그 인간만큼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용서하자고 용서하자고 수백 번 수천 번도 더 다짐해도 그 때뿐이다. 그 인간 얼굴만 떠오르면 자신도 모르게 혈압이 오르면서 살인하는 사람들 마음 이해가 간다는 분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 마음 정녕 이해가 갑니다.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망쳐 놓은 사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해친 사람, 단란한 가정을 망쳐 놓은 사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 준 사람, 견딜 수 없는 모욕을 준 사람을 용서하기란 진정 어려운 일입니다. 입으로야 얼마든지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정한 용서는 우리 인간적인 힘만으로는 어렵습 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합니다. 결국 진정한 용서는 신앙 안에 서만이 가능합니다. 진정한 용서는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 해결이 가능합니다. 진정한 용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의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과 진지한 숙고 그 위에 가능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들은 바처럼 근본적으로 우리 인간 존재는 용서여부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셀 수도 없이 많은 용서를 받아 온 우리들 입니다. 그 많은 죄악, 진홍 빛같이 붉은 죄악에도 불구하고 한량없는 자비를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바는 오직 한가지입니다. 당신께서 우리를 향해 그러하셨듯이 우리 역시 끊임없이, 무조건적으로, 무한히 용서하는 일입니다. 용서가 정말 힘겨운 날, 지금까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 셨던 자비를 생각해보십시오. 용서가 죽기보다 힘겨울 때, 지금까지 이어져 온 하느님 자비의 날들을 기억하십시오. 결국 우리 인생은 하느님 자비로 인한 은총의 나날들 이었습니다. 그분의 용서로 인한 축복의 나날들이었습니다. 용서가 있는 곳에 내적 평화도 있습니다. 영적인 삶도 있습니다. 기도다운 기도도 있습니다. 의미 있는 신앙생활도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무슨 수를 써서든 다시 한번 진정으로 용서 하고자 노력하는 하루, 훌훌 털고 홀가분하게 하느님 앞에 다시 서는 하루가 되길 기원합니다. 자 료 : 가톨릭 넷톨릭 ◆ 묵 상 오늘의 복음은 용서에 관한 말씀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잘못한 형제를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하느냐고 예수님께 여쭈면서, 일곱 번이면 되겠느냐고 제안하였습니다. 사실 그 정도면 크게 잡아서 말씀 드린 것인데, 예수께서는 일곱 번이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대답하십니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면 숫자상으로 계산을 해 봐도 490번 이라는 많은 횟수가 나오고, 그 뜻을 헤아린다면 끝없이 용서 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른 뺨을 때리면 왼 뺨을 내어 주라는 말씀도 그렇지만 한없이 용서하라는 말씀은 지킬 엄두가 나지 않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바꾸어 생각해보니 예수님의 말씀이 조금은 마음으로 다가옵니다.나는 과연 하느님께로부터 그리고 형제들로부터 몇 번이나 용서 받고 싶은지를 생각해보면 말입니다.남에게는 조금 밖에 주지 않으면서 나만 많이 받으려고 한다면 그건 얌체 같은 욕심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용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누군가로부터 모함을 받거나, 내게 상처나 피해를 준 사람을 용서하려고 애써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께서는 그러한 우리에게 몸소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루가23,34) 오늘은 형제를 용서할 힘을 주님께 청하면서 십자가의 예수님을 묵상해야겠습니다. ◆ 이 야 기 3월 16일 성 또렐로 Torello 은수자 / 카센티노 / 1282년 또렐로 성인은 카센티노의 뽀삐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매우 열성적인 분들이었으므로 부끄럽지 않은 생활을 해 왔으나, 아버지를 여의고 난 후부터 나쁜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하루는 같은 패거리들과 함께 나무공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닭장에서 수탉 한 마리가 날아와 그의 팔 아래 앉아서 세 번 울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그는 이것을 하느님의 섭리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게 되었다. 그는 그 길로 산 페델레 수도원으로 가서 고백을 한 다음, 권고 말씀을 따르게 되었다. 그는 고향 뽀삐를 떠나 8일 동안 숲 속을 방황하다가 어느 큰 바위 밑에 쉴 곳을 마련하여 8일을 머문 뒤 그 곳을 은둔 생활 예정지로 정하였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전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준 뒤 다시 은둔할 곳으로 찾아가서 움막을 짓고 고복을 입고는 철저한 회개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하루에 3시간 이상 자지 않았고, 빵과 물도 없이 이틀씩 단식을 하곤 하였으며, 평소의 음식은 빵 한 조각과 냉수뿐이었다고 한다. 또렐로는 너무하다 싶을 만큼 극심한 극기의 생활을 하며 거의 40년 동안 은수 생활을 하였다. 그에게는 많은 영적 은사들이 잇달았고 수없이 많은 기적들이 일어났다. 그는 발룸브로사 혹은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라고도 하지만, 어느 수도회에도 속하지 않던 뽀삐의 어느 원장으로부터 수도 복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가장 신빙성이 있다. ◆ 기 도 주님, 제 잘못을 용서받기는 원하면서도 형제를 용서하는 데 인색한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께서 용서받을 만하지 못한 저에게 끊임없이 자비를 베푸셨으니 저도 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형제들의 잘못을 용서하게 하소서. 주님, 제게 아픔을 준 형제를 용서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것이 저희가 평화를 얻는 방법임을 알기에 아픔을 주님께 맡겨 드리며 용서하겠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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