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미리읽는 성서묵상 [일요일]& 영상으로 초대
작성자원근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7-03-24 조회수457 추천수1 반대(0) 신고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나의 백성에게 물을 마시게 하리라.> ▥ 이사야서 43,16-21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 분은 바다 가운데에 길을 내시고 거센 물 속에 큰길을 내신 분, 병거와 병마, 군대와 용사들을 함께 나오게 하신 분. 그들은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고, 꺼져 가는 심지처럼 사그라졌다. 예전의 일들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의 일들을 생각하지 마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정녕 나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리라. 들짐승들과 승냥이와 타조들도 나를 공경하리니, 내가 선택한 나의 백성에게 물을 마시게 하려고 광야에는 샘을 내고, 사막에는 강을 내기 때문이다. 이들은 내가 나를 위하여 빚어 만든 백성, 이들이 나에 대한 찬양을 전하리라.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분의 죽음에 동참할 것입니다.> ▥ 사도 . 3,8-14 형제 여러분,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 율법에서 오는 나의 의로움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로움, 곧 믿음을 바탕으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지니고 있으려는 것입니다. 나는 죽음을 겪으시는 그분을 닮아, 그분과 그분 부활의 힘을 알고 그분 고난에 동참하는 법을 알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어떻게 든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이미 그것을 얻은 것도 아니고 목적지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차지하려고 달려갈 따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미 나를 당신 것으로 차지하셨기 때문입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이미 그것을 차지하였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내달리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하늘로 부르시어 주시는 상을 얻으려고, 그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요한. 8,1-11 그 때에 예수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이른 아침에 예수님께서 다시 성전에 가시니 온 백성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앉으셔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그 때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에 세워 놓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줄곧 물어 대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마침내 예수님만 남으시고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그 여자에게,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 여자가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오래 전 미국 뉴욕의 한 법정에서 빵을 훔치다 잡힌 한 가난한 사람에 대한 재판이 있었습니다. 그는 며칠을 굶주리다 더 이상 배고픔을 견디기가 어려워 상점에서 빵을 훔쳐 나오다 발각되었던 것입니다. 자초지종을 모두 들은 재판관은 다음과 같이 판결을 내렸습니다. “피고는 자신의 굶주린 배를 채우려는 개인적인 욕구를 절도라는 범죄의 방법을 통해 충족하려 했으므로 이에 대한 마땅한 대가를 받아야 하는 바, 벌금 100불을 선고합니다.” 이 가난한 사람은 하루 한 끼조차 해결할 수 없는 자신이 어떻게 저 벌금을 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얼굴이 하얗게 변했습니다. 그런데 판사의 선고문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피고가 자신의 굶주림을 이러한 방식으로밖에 해결할 수 없도록 만든 본인을 포함한 우리 모두는 사실 이 피고의 죄를 용인한 사회적 공범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벌금을 본인과 배심원 여러분들에게 함께 부과하는 바입니다.” 판결문을 다 읽은 재판관은 즉시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몇 달러를 꺼내 모자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배심원들에게 돌려진 이 모자에 담긴 벌금, 아니 성금은 이 가난한 죄인이 다시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재판관의 지혜가 담긴 이 판결은 참으로 모범적인 판례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자비가 필요한 죄인들입니다. “여러분은 장차 자유의 법에 따라 심판받을 사람으로서 말하고 행동하십시오. 자비를 베풀지 않은 자는 가차 없는 심판을 받습니다.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야고 2,12-13).

    묵 상 양승국 신부님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끔찍한 세월> 안개가 심하던 새벽 고속도로를 과속으로 달리던 한 젊은이가 추돌사고를 당했습니다. 다행히 생명은 건졌지만 후유증이 컸습니다. 하반신을 못쓰게 되었고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야만 했습니다. 워낙 자존심이 강했던 젊은이는 자신의 처지가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다 싫었습니다. 그 누구의 얼굴도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시 암담했던 자신의 심정을 그는 이렇게 글로 표현했습니다. "나는 물 한잔을 마시려고 휠체어를 밀어 냉장고 앞으로 다가갔다. 물을 따르던 나는 실수로 유리컵을 놓쳐 버렸다. 바닥에 흩뿌려진 유리 파편들을 바라보던 나는 이런 생각에 잠겨 들었다. <이 유리 조각들은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어버리고 회색 빛 나날을 살아가고 있는 내 신세와 어찌 그리도 똑같은가?>" 그렇게 끔찍한 세월이 흘렀습니다. "세월이 약이겠거니" 하고 견뎌 왔지만 마음 같지 않았습니다. 당장 죽을 것만 같은 깊은 슬픔에, 도저히 못 견딜 것 같은 심연의 고통에 젊은이는 가까운 성당을 찾았습니다. 젊은이는 힘겹게 휠체어를 밀고 앞으로 나갔습니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대성당 한 가운데 통로를 거쳐 십자가상 바로 아래까지 도착했습니다. 올려다보니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께서 고통스런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마치 이런 말씀을 하시는 듯 했답니다. "애야, 힘 내거라. 네 십자가도 무겁겠지만 내 십자가는 더 무겁단다." 두 사람은 그렇게 말없이 서로 고통스런 십자가를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 십자가 뒤쪽 배경은 은은한 빛깔의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성당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던 스테인드글라스의 아름답고 신비로운 색조가 마침내 젊은이 마음에 와 닿던 순간, 머릿속이 환해지는 느낌과 함께 이런 생각이 밀려왔답니다. "그래! 저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도 결국은 유리를 조각 내어 만든 작품이 아닌가? 그렇다면 산산조각 나 버린 내 인생으로도 아름다운 작품 하나 정도 만들 수도 있겠지? 그래, 충분히 방황했으니 이제 다시 한번 일어서야겠어." 하느님께서는 가끔씩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하는 방법을 통해서 우리를 치시고 우리를 바닥에까지 끌어내리십니다. 용광로같이 뜨거운 시련을 통해서 우리를 재창조하십니다. 우리를 일으켜세우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지혜의 말씀 한마디로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혀 온 한 여인을 죽음으로부터 일으켜 세우십니다. 그 오랜 질곡의 세월에서 해방시키십니다. 그 여인은 갈 데까지 갔던 여인이었습니다. 더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던 여인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런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손을 내미십니다. 그녀를 일으켜 세우십니다. 그녀에게 새 인생을 되찾아 주십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다가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단죄가 아니라 구원"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해야 할 일인 지요. 복음서 전체는 "단죄가 아니라 구원"이라는 예수님 사명을 구체화시키는 하나의 장(場)이 틀림없습니다. 오늘 예수님 손을 잡고 다시 한번 일어서는 여인의 삶을 묵상합니다. 여인 안에 자리잡고 있는 제 자신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그 여인이나 저나 크게 다를 바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여인 못지 않게 밥 먹듯이 많은 죄와 과오 속에 살아온 제 지난날을 돌아봅니다. 아마도 인간이란 존재는 현재를 살면서도 과거에 종속되어 살아가는, 그래서 평생 자유롭지 못한 존재인가 봅니다. 늘 돌아보면 돌아볼 때마다 부끄럽고 안타깝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부끄럽다, 창피하다" 면서 살 아서 만은 안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젊은 시절, 미성숙함으로 그어졌던 우리 인생의 빨간 줄을 지우고 싶지 않은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한 순간 판단착오로 저질렀던 초대형 과실을 원점으로 되돌리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느님 보시기에 인간이 사랑스러운 이유는 상처 때문이리라 확신합니다. 허물이 있기에, 부끄러운 과거가 있기에, 그로 인해 괴로워하기에 우리는 하느님 자비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 인생여정에 상처는 필수입니다. 상처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존경하는 정호승 시인의 말씀처럼 "상처없는 아름다움은 없습니다. 진주도 상처가 있고, 꽃잎에도 상처가 있습니다. 장미꽃이 아름다운 것은 바로 그 상처 때문입니다."

    묵 상 금주의 말씀은 우리를 회개의 삶으로 초대하십니다. 오늘의 복음에는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당시 유대 법에는 간음한 여인은 거리로 끌어내어 돌로 쳐 죽이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잡힌 경우에는 재판조차도 없이 즉결심판을 하였던 것입니다. 복음에 나오는 여인은 현장에서 잡혔으므로 아무런 항변도 할 수 없이 돌팔매질에 맞아 죽을 운명에 처한 셈입니다. 마침 그 자리에 예수께서 계신 것을 보고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께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고 질문을 던집니다. 이 질문은 정말로 어찌할 것인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를 가르치시는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릴 속셈으로 쳐 놓은 술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런 난감한 상황을 통해서 우리가 서로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 이유를 가르쳐 주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요한8,7) 여인에게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어 보내시는 예수께서는 회개의 삶에로 초대하시는 것을 잊지 않으십니다.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8,11) 이제 사순절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회개의 시간도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지금껏 부족한 삶을 살았다 할지라도 남은 기간만이라도 열심히 산다면 주님은 그것을 보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8,11) .......... 이 야 기 잃어버린 지갑 1984년 11월, 볼일이 있어 수원에 들른 김 종린 씨는 일을 끝내고 역 대합실 공중전화 박스에서 수원의 고모님께 안부전화를 드렸다. 그리고 고향으로 내려가기 위해 서둘러 매표구로 향했다. "영동이요" 이렇게 말한 뒤 주머니를 뒤적이던 김 종린 씨는 주머니 어디에도 지갑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짚이는 것이 있어 다시 공중전화 박스로 뛰어가 보았지만 지갑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지갑엔 주민등록증을 비롯하여 친구들의 주소가 적힌 메모, 그리고 얼마의 돈까지 들어 있었다. 혹 주머니에 남은 돈이 있을까 하여 살펴보던 김 종린 씨는 갑자기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주머니 속엔 돈이 한 푼도 없었던 것이다. 걸어서 가까스로 고모님 댁을 찾은 김 종린 씨는 차비를 얻어 그 길로 고향으로 내려갔다. 몇 달 후 김 종린 씨는 생각지도 않던 잃어버린 그 지갑을 우편으로 돌려받았다. 지갑은 조금 너저분해 있었지만 주민등록증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면허증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으나 김종린 씨가 생각한대로 돈은 들어 있지 않았다. 해가 바뀌어 다시 6년의 시간이 지났다. 어느 날 김종린 씨에게 낯모르는 편지 한 통이 배달되었다. 보낸 이가 불분명한 그 편지는 6년 전 김종린 씨의 지갑을 주운 사람이 보낸 것이었다. 편지 내용은 대강 이랬다. “지갑을 주워 바로 보내려 했으나 너무나 배가 고픈 나머지 지갑 안에 있는 만 원을 써버렸습니다. 다시 돈을 마련해 지갑과 함께 보내려 했으나 그것마저 쉽지 않아 지갑만 먼저 보냈습니다. 그 뒤 늘 죄책감에 시달리다 이렇게 편지 드립니다.” 봉투 안에는 빳빳한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 들어 있었다. 그 돈을 들고 김종린 씨는 이렇게 말했다. "난 이 돈을 평생 쓰지 않을 테다. 나의 아이들에게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고결한가를 보여 주기위해서…." ([좋은 생각] 중에서) ............. 기 도 주님, 저희가 열매 맺기를 기다려 주시는 주님께 나름대로 향기로운 열매를 맺게 하소서. 앞날을 내다볼 수 없는 저희가 기회는 늘 있다고 착각하지 않게 하시고, 주님께서 허락하신 회개의 기회를 무의미하게 흘려 버리지 않게 하소서. 주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나날이 되게 하소서. 아멘.

    ◇ 삶의 여유를 아는 당신이 되기를 ◇ 살아온 날보다 살아가야 할 날이 더 많기에 지금 잠시 초라해져 있는 나를 발견하더라도 난 슬프지 않습니다 지나가 버린 어제와 지나가 버린 오늘 그리고 다가올 미래 어제같은 오늘이 아니길 바라며 오늘같은 내일이 아니길 바라며 넉넉한 마음으로 커피한잔과 더불어 나눌 수 있는 농담 한마디의 여유 초라해진 나를 발견하더라도 슬프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누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바랄 뿐입니다 우리는 하루를 너무 빨리 살고 너무 바쁘게 살고 있기에 그냥 마시는 커피에도 그윽한 향기가 있음을 알 수 없고 머리 위에 있는 하늘이지만 빠져 들어 흘릴 수 있는 눈물이 없습니다 세상은 아름다우며 우리는 언제나 사랑 할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 난 초라하지만 넉넉한 마음이 있기에 커피에서 나는 향기를 맡을 수 있고 하늘을 보며 눈이 시려 흘릴 눈물이 있기에 난 슬프지 않고 내일이 있기에 나는 오늘 여유 롭 고 또한 넉넉합니다 가끔은 커피를 향으로 마실 수 있고 너무 파란하늘을 보고 가슴 벅차 눈물도 흘릴 수 있는 여유로 운 당신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에겐... 내일이 있으니까요... - 좋은 글 -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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