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바알 앞에 무너진 이유 -판관기8
작성자이광호 쪽지 캡슐 작성일2007-09-23 조회수458 추천수4 반대(0) 신고

 바알 앞에 무너진 이유 -판관기8 

<생명의 말씀> 

 이스라엘 백성은 바알들을 섬겨 야훼의 눈에 거슬리는 못할 짓들을 하였다. 자기네 조상을 에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조상의 하느님 야훼를 저버리고, 주위 백성들이 섬기는 다른 신들을 따르며 절하여 야훼의 노여움을 샀다. 그들은 야훼를 저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다. 야훼께서는 크게 화를 내시어 이스라엘로 하여금 적에게 침략을 받아 노략질을 당하게 하셨다. 또한 둘러 싸고 있는 원수들 손에 팔아 넘기셨으므로 그들은 도저히 원수들과 맞설 수가 없었다. 그들이 출정할 적마다 야훼께서 손수 그들을 치셨던 것이다. 야훼께서 경고하시며 맹세하신 대로 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심한 곤경에 빠지면, 야훼께서는 판관들을 일으키시어 약탈자들의 손에서 그들은 건져 내시곤 하셨다. (판관기 2:11-15)

<말씀의 길잡이와 실천>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알신을 섬기면서 급속도로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져 갔습니다. 그 바알신이 무엇이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 탈출과 홍해 통과 그리고 수많은 전쟁승리를 통해 자기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은혜를 베풀어준 신을 버리고 만 걸까요?

가나안 농경 민족이 섬겼던 바알신은 풍요의 신, 쾌락의 신이었습니다. 농사를 짓는 정착민들이었던 가나안 사람들은 씨를 뿌려놓고 비가 내리게 해 달라고 그래서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게 해 달라고 바알 신당에서 제사를 드리는 관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농경민족으로서 당연한 관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제사의 방식이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서 신상 앞에 모인 남녀들이 그룹 섹스를 벌이는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풍요를 기원한다는 미명 아래 사람들에게 쾌락의 문을 활짝 열어 주는 신이 바로 바알이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로 여기서 무너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야훼 하느님께서 분명히 음란이라는 죄로 명시하셨기 때문에 억제할 수밖에 없었던 행위에 바알은 풍요를 기원하는 예배의식라는 그럴싸한 포장지를 씌워 놓았으니 그 문화권 안에서 이런 행위는 음란이 아니라 미덕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농경민이 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당연히 여러 가지 제약 조건인 율법을 지키며 하느님을 섬기는 것보다 음란함을 정당화해주는 바알의 풍습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던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우리는 더 이상 들판을 헤매고 돌아다니면서 연명해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땅의 풍요를 구하기 위해 새로운 예배 전통이 필요하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그 풍요를 약속해 줄 새로운 신을 섬길 수 있어야 한다.'

바알이 던져 주는 쾌락에 빠져들기 시작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해 가졌던 생각이 바로 위와 같을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서 사람은 회개하기보다는 자기 정당화를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양심에 좀 걸리지만 그 정당화가 반복되다 보면 자기자신도 속게 됩니다.  그러고도 무엇이 잘못인지 깨닫기는커녕 자신을 진보적인 사람, 새로운 시대에 새 삶의 방식을 창조하는 사람으로까지 생각하게 됩니다. 풍요로운 농경민으로 일대 전환을 시작한 이스라엘 백성의 생각이 그랬던 것입니다.

4000년 전 사탄이 하느님의 백성을 유혹했던 방식이 이와 같습니다.

여러분,  지금은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현대사회도 다르지 않습니다. 현대 사회에도 젊은이들을 하느님과 교회로부터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이탈하게 하는 요인은 바로 이성교제 혹은 연애라는 이름의 음란함, 섹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세대 젊은이들의 삶의 방식이란 정당화된 이름으로 매스미디어들은 음란과 쾌락을 사람들에게 권하고 있고 우리 젊은이들은 헛된 철학에 속아 영혼을 팔면서 음란 속에 빠져 들어갑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알이 제공해 주는 음란과 쾌락 속에서 하느님 백성의 정체성을 상실해 나갔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느님께로부터 그 권리와 능력을 충분히 받았는데도 자기가 정복하고 다스려야 할 사람들에게 오히려 정복당하고 노략질을 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꼴을 보여 줍니다. 

세상은 우리를 다양한 방식으로 유혹합니다. 유혹자는 계절마다 아니 시시때때로 다른 옷을 입고 나타나서 우리를 유혹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늘 변하기 마련인 시대상황이나 유행에 따른 삶을 우리도 모르게 살고 있지는 않나 되돌아 보아야 합니다.

내 마음에 맞고 내 스타일에 맞는 신앙을 택해서는 하느님께 이를 수 없습니다. 내 생각, 내 마음, 내 바람과는 차이가 있더라도 성경과 교회가 제시하는 신앙을 마음에 새기려고 노력해야 성령께서도 그 사람을 도우실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법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이 맞은 가장 큰 아픔이 무엇인지 잊지 맙시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적들 편에 서셔서 손수 자기 백성을 치셨다는 것입니다.

자비와 사랑의 하느님 모습에만 중독되어 있는 사람들이 우리라는 것을 인정하고 하느님 인식의 편향성에서 조금 벗어난 위치에서 판관기를 읽고 묵상한다면 판관기 전체는 우리에게 참으로 살아 있는 경고의 말씀이 되지 않을까요?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