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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1 부활 제5주간 토요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5-20 조회수1,079 추천수1 반대(0) 신고

1독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6,1-10
그 무렵 1 바오로는 데르베를 거쳐 리스트라에 당도하였다.
그곳에 티모테오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는 신자가 된 유다 여자와 그리스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서,
2 리스트라와 이코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좋은 평판을 받고 있었다.
3 바오로는 티모테오와 동행하기를 원하였다.
그래서 그 고장에 사는 유다인들을 생각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베풀었다.
그의 아버지가 그리스인이라는 것을 그들이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4 바오로 일행은 여러 고을을 두루 다니며,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원로들이 정한 규정들을
신자들에게 전해 주며 지키게 하였다.
5 그리하여 그곳 교회들은 믿음이 굳건해지고 신자들의 수도 나날이 늘어 갔다.
6 성령께서 아시아에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막으셨으므로,
그들은 프리기아와 갈라티아 지방을 가로질러 갔다.
7 그리고 미시아에 이르러 비티니아로 가려고 하였지만,
예수님의 영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
8 그리하여 미시아를 지나 트로아스로 내려갔다.
9 그런데 어느 날 밤 바오로가 환시를 보았다.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오로 앞에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는 것이었다.
10 바오로가 그 환시를 보고 난 뒤,
우리는 곧 마케도니아로 떠날 방도를 찾았다.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1

바오로가 반대 방향으로 가기 때문에 두 도시의 순서가 바뀌었다.

 

디모테오는 바오로의 선교활동중에 만난 인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는 사도행전의 저자에게뿐만 아니라 바오로 자신에게도 명백히 인정받은 사람이다. 바오로는 디모테오를 동료 협력자와 특별한 사절로 여긴다, 또한 디모테오는 바오로의 여러 서간의 공종저자인 것처럼 소개된다. 1디모와 2디모는 바오로가 그의 협력자 디모테오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잘 보여준다. 2디모 1-5에서 바오로는 디모테오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계의 훌륭한 믿음에 대해 언급하고, 1디모 3.15에서는 디모테오가 어릴 때부

 

터 성서를 배워 왔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의 부모는 국제결혼을 한 셈인데, 이런 결혼은 유다인으로서의 신분을 지켜나가는 데 언제나 장애가 되었다. 어머니 쪽의 유다인 혈통을 인정하게 된 시기가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밝힐 수 없으나 루카는 이를 일반화한 관계로 받아들인다. 디모테오의 어머니가 유다인인데도 왜 그에게 할례를 베풀지 않았는지 여러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그의 어머니가 유다교보다는 이 새로운 그리스도 운동에 더 적극적으

 

로 투신했었을 가능성, 유다교의 고정관념에 따라 이방인 아버지를 둔 디모테오가 정식 유다인으로 간주되지 않아 하례를 받을 필요가 없게 되었을 가능성, 또는 헬라계 아버지가 어머니로 하여금 디모테오에게 할례를 베푸는 것을 금지시켰을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다. 이 가운데 3절의 매용에 비추어 마지막 가능성이 가장 그럴듯하다.

 

3

14-15장에서 할례 논쟁이 종식된 뒤에 바오로가 디모테오에게 할례를 베푼 사실은 다소 의외다. 루카는 바오로가 유다인들 앞에서 현명하게 처신함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바오로가 디모테오에게 할례를 베푼 것은 그의 유다인 어머니를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 지방 유다인들 때문이었다. 디모테오의 할례는 바오로가 조상의 전통을 존중한다는 사실을 유다인들에게 보여주는 행위다. 그 고장 유다인들은 디모테오의 아버지가 헬라인이기 때문에 디모테오의 할례를 반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5

또 한번 공동체의 내적 성숙과 수적 증가에 대해 언급한다.

 

6

프리기아와 갈라디아 지방의 지명에 대해 고대 문헌들은 혼동된 보고를 하는데 루카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바오로의 전도여행 경로에 대해서도 학자들간에 끊임없는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지리적 문제야 어떻든 루카는 이 구절에서 성령이 또다시 선교의 방향을 직접 인도하고 있음을 밝힌다.

 

7

성령이 서쪽 끝 아시아로 가려는 것을 막았기 때문에 그들은 반대방향인 미시아 근처에 도착했다. 이 지역은 서쪽으로는 에게인들의 지역, 북쪽으로는 헬레스폰트인들의 지역, 동쪽으로는 마티니아, 남쪽으로는 리디아와 접경을 이루는 곳이다. 그들은 기원전 65~63년에 폼페이우스가 로마 자치령으로 창건하 비티니아를 향해 동진하려고 했다.

 

그러나 다시 예수의 영이 이를 허락지 않는다. “예수의 영은 사도행전에서 오직 이 대목에만 나온다. 루카는 이 표현을 초기교회의 전통에서 빌려왔을 것이다. 성령을 예수의 영과 동일시하는 6-7절의 견해가 루카에게 생소한 것임을 일전한다 하더라도 사도행전에서 성령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다른 어느 신약성서 저서들에서보다 밀접하다. 루카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계속 나타나 영향력을 행사하심을 증언했다.

 

8

바오로 일행은 미시아 지방을 통과하여 해변가에 있는 트로아스에 도착했다. 여기까지 바오로의 전도여행 경로는 그 지리적인 부정확함 때문에 다소 모호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루카가 전하려는 한 가지 신학적 사실은 분명히 드러난다. 성령은 인간 주도로 결정된 온갖 방향을 차단하고 유럽으로 가는 길만을 남겨놓았던 것이다.

 

9

바오로의 소명과 고르넬리오의 개종에서처럼 현시는 전환점을 마련하는 데 중대한 구실을 한다. 현시의 내용은 어떤 마케도니아 사람이 바오로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마케도니아는 아카이아의 북쪽 지방으로서 서쪽으로 아드리아 해역을 바라보고 동쪽으로는 에게 해역을 항하며 그 주요 도시는 하느님의 도움, 곧 구원을 요청하는 성서적 기도에 자주 등장한다.

 

10

바오로는 자기가 본 현시에 대해 전도여행의 동행자들과 의견을 나누고 마케도니아를 향해 떠나기로 결정한다. 여기서부터 논란을 불러일으킨 저 유명한 우리 대목이 처음 등장한다.

 

 

 

 

 

 

복음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다.>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18-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20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고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여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고,
내 말을 지켰으면 너희 말도 지킬 것이다.
21 그러나 그들은 내 이름 때문에
너희에게 그 모든 일을 저지를 것이다.
그들이 나를 보내신 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18

제자들은 예수에게 속해 있기 때문에 세상이 그들을 미워할 수밖에 없음을 전제한다. 원문의 표현도 제자들이 이미 세상의 증오를 실제로 체험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이 말은 예수가 제자들에게 미리 말해줌으로써 위로하고 믿음으로 견고케 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그들을 격려하여 세상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또한 증언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와 같은 임무를 수행하고 또한 같은 길을 가야 한다. 예수는 그들보다 앞서 이미 세상의 증오를 받았다.

 

제자들을 적대시하고 증오하는 세상은 하느님이 파견하신 자를 배척하여 하느님을 등진 인간세계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 세상도 하느님 사랑의 대상으로서 구원 가능성은 있다. 모든 증오와 박해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바로 그런 세상에 예수를 증언해야 한다. 요한복음에서는 세상개념이 양면성을 지닌다. 한편 구원이 필요하고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다른 한편 완고한 불신과 증오로 가득 찬 인간세계다.

 

따라서 세상은 심판의 대상이면서도 구원의 대상이다. 그러므로 예수와 제자들의 복음선포 상황은 증오와 박해의 상황인 동시에 신뢰와 믿음의 상황이다. 이 구절에서는 다만 부정적 체험 선상에서 예수의 말이 언급되고, 제자들이 세상의 그런 상황을 보도록 일깨우며 격려한다.

 

19

세상이 제자들을 증오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이 세상은 하느님을 등진 인간세계로서 제자들마저 적대시하는 세상으로 언급된다. , 제자들과 분리되고 대립된 세상을 가리킨다.

 

20

예수의 역사적 사건까지도 상기시키는 뜻을 담고 있다.

 

제자들이 상기해야 할 예수의 이 말은 아마도 박해받던 당시 요한 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제자들 복음선포 결과의 두 가능성, 곧 거절과 박해, 신뢰와 믿음이 언급된 이 말은 지속적 선포활동을 당부하는 의미를 지닌다. 또한 예수의 활동이 헛되이 않듯이 제자들의 증언활동 역시 헛되지 않음을 시사한다.

 

21

현 문맥상 증오와 박해를 가리킨다. 16,1-2에서 더욱 명료하게 언급된다.

마르 13.13// 참조. 여기서는 종말론적 상황보다 제자들이 처한 상황을 시사하고, 제자들에 대한 증오와 박해는 예수에 대한 증오와 박해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뜻한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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