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어린이처럼 사신 이의 동화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10-08-11 조회수457 추천수2 반대(0) 신고
                  어린이처럼 사신 이의 동화
                                          배봉균 요아킴 님의 ‘파랑새’ 사진을 보고





며칠 전 ‘굿 뉴스’ 자게에서 배봉균 요아킴 님의 ‘파랑새’ 사진들을 보았습니다. 파랑새 사진들을 보는 순간 아! 하고 탄성을 머금었습니다. 불현듯 선친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그리움 속으로 빠져들었고, 감미로운 상념에 취해 볼 수 있었습니다.

1986년 선친께서 66세라는 아까운 연세로 별세하신 후 선친의 넋을 기리기 위해 몇 가지 뜻 있는 일을 했습니다. 선친의 유고 동화작품들 중에서 절반인 13편을 묶어 1993년 『팥죽할머니와 늑대』라는 동화집을 펴내었습니다. <산하출판사>에서 펴낸 이 책은 <어린이도서연구회>와 YMCA, YWCA 등에서 ‘우수도서’로 선정했고, 아동문학부문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1994년에는 충청남도 ‘문예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선친의 유고 시들을 모아서 『바람 뫼뿐이어라』라는 유고 시집을 펴내었습니다. 그리고 1998년에는 나머지 13편의 유고 동화작품들을 묶어 두 번째 유고동화집 『까마귀할머니와 파랑새』를 펴내었습니다. 선친의 유고 시와 유고 동화작품들을 모두 책으로 묶어 세상에 내놓고 빛을 보게 한 것이지요.    

선친의 유고 작품들을 책으로 묶어 펴내는 일을 1990년대 초에 시작해서 1998년에 마무리 지었는데,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도 벌써 10여 년 전 일이 되었군요. 당시 큰 짐을 벗은 느낌이었지요. 선친 생전에 하지 못한 효도를 조금은 벌충한 것 같아 홀가분했던 감정이 새롭게 되살아나는 느낌입니다.

선친의 두 번째 유고동화집에 수록된 13편의 작품들 중에는 「할머니까마귀」라는 작품과 「되살아난 파랑새」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참 아름답고 재미있는 동화들이지요. 그런데 <글벗출판사>에서 책을 만들 때 책의 이름을 『까마귀할머니와 파랑새』로 정해서 실제로 「까마귀할머니와 파랑새」라는 작품이 있는 것처럼 되어서 좀 아쉬운 마음입니다.

이 유고동화집에 수록된 13편 동화작품들의 제목을 소개해 봅니다.

  할머니까마귀
  되살아난 파랑새
  왕자인형과 공주인형
  민들레
  아기송아지 독순이
  용용 아로루리
  토 선생과 노 선생
  푸른 나라 이야기
  봉길이의 무지개
  숲 속의 생일잔치
  아기예수님께 드린 장난감
  동산 조무래기들
  고마운 바람

오늘은 선친의 두 번째 유고동화작품집 『까마귀할머니와 파랑새』에 수록된 ‘엮은이의 말’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물론 제가 쓴 글이지요. 첫 번째 유고동화작품집 『팔죽할머니와 늑대』, 그리고 유고 시집 『바람 뫼뿐이어라』에 수록된 ‘엮은이의 말’과 그 책들의 출간과 관련하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은 다음의 적절한 기회에 소개하겠습니다. ‘적절한 기회’가 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자게에 멋진 ‘파랑새’ 사진들을 올리심으로써 저로 하여금 선친의 유고동화작품집 『까마귀할머니와 파랑새』을 떠올리게 하고, 잠시나마 아련한 그리움 속을 유영하도록 해주신 배봉균 요아킴 성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소개하는 이 글이 하느님 신앙 안에서 살아가시는 형제자매님들께 좋은 정신적 음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엮은이의 말 



                                 
어린이처럼 사신 이의 동화




이 책의 동화를 쓰신 지동환 선생님은 평생 동안 순진무구한 어린이의 마음으로 사셨고, 늘 어린이들을 사랑하면서 어린이가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사신 분입니다. 그리고 돌아가실 때도 꿈속에서 어린이들과 어울리고, 어린이들에게 둘러싸여 하느님께로 가신 분입니다.

간경화라는 병을 얻어 가난 때문에 큰 병원에도 가지 못하고 집에서 석 달 동안 앓다가 돌아가셨는데,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한 번도 자인의 처지를 슬퍼하거나 가족들의 마음을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름답게 죽음을 맞이하고 하느님께로 갈 수 있게 되기만을 소원하였습니다.

지동환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시기 하루 전의 일입니다. 몸의 고통을 잊은 듯 한동안 고즈넉이 잠을 잔 선생님이 빙그레 웃으며 눈을 떴습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딸이 왜 그리 웃으시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열 명도 넘는 소년 소녀들이 꽃다발을 들고 와서, 나를 빙 둘러싸고 서로 자기 꽃을 받으라고 내미는 통에, 어떤 것부터 받아야 할지 곤란해서 웃은 거여.”

그런 신비스러운 꿈을 꾸고 난 선생님은 하루 종일 무척 즐거운 기색이었습니다. 찾아오는 분들과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는 부인에게 무슨 음식이 먹고 싶으니 어떠어떻게 만들어서 갖다 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부인이 반가운 나머지 얼른 일어나 방을 나가니,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에그, 내가 그 음식을 어떻게 먹을 거라고 내 말을 곧이듣고 나가는 저 할망구, 순진맞기가 세계에서 일등이다.”

그 말에 가족들이 모두 웃었습니다. 말하자면 선생님이 부인을 마지막으로 그렇게 놀려먹은 것입니다.

죽음이 가까이 다가온 순간에도 그렇게 여유를 지닐 수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분의 그런 여유는 그분이 평생 동안 지니고 사신 동심에서 우러나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그런 꿈 역시 동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이 세상에 남겨 놓으신 동화들과 시들을 읽어보면, 그리고 그분의 평생을 떠올려보면 그런 아름다운 꿈이 매우 당연하고 자연스럽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지동환 선생님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잠을 달게 자면서 최후로 꾼 꿈이 어린이들로부터 꽃다발을 받는 꿈이었습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선 그 꿈속의 소년 소녀들은 하느님이 보내신 천사들일 수도 있습니다. 어린이의 모습으로 많이 나타난다는 천사들이 선생님의 영혼을 영접하기 위해서 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진정코 어린아이가 되지 않고서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성경 말씀도 있습니다만, 어린이의 마음으로 사셨던 선생님은 그러므로 하느님의 나라에 드셨다고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아버님이신 지동환 님이 세상을 뜨신 지도 벌써 11년이 되었습니다. 운명하시기 하루 전에 아들의 손을 잡고 당신의 동화들을 어린이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그분께서 내게 부탁하셨습니다만, 그분의 그런 부탁과 아들 된 도리에 의해서만 이런 책을 만든 것은 아닙니다. 그분의 욕심 없고 가난했던 평생과 티 없이 맑았던 동심이 너무도 고귀하고 아름답게 느껴지기에 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버님의 동심과 그 뜻을 기리고자 하는 나의 청을 높이 사서 이 책을 펴내 주신 <글벗사>에 감사하는 마음 큽니다. 아버님 동화의 절반을 묶어서 93년에 <산하출판사>에서 펴낸 동화집『팥죽할머니와 늑대』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주신 <어린이도서연구회>에 깊이 감사하며, 이 책 또한 많은 어린이들에게 좋은 선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


                                                  1997년 9월, 충남 태안 샘골에서
                                             지동환 님의 아들 지요하(소설가) 적음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