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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8 부활 제6주간 토요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5-27 조회수1,030 추천수1 반대(0) 신고

1독서

<아폴로는 성경을 바탕으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논증하였다.>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8,23-28
바오로는 안티오키아에서 23 얼마 동안 지낸 뒤 다시 길을 떠나,
갈라티아 지방과 프리기아를 차례로 거쳐 가면서
모든 제자들의 힘을 북돋아 주었다.
24 한편 아폴로라는 어떤 유다인이 에페소에 도착하였는데,
그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달변가이며 성경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25 이미 주님의 길을 배워 알고 있던 그는 예수님에 관한 일들을
열정을 가지고 이야기하며 정확히 가르쳤다.
그러나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다.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설교하기 시작하였는데,
프리스킬라와 아퀼라가 그의 말을 듣고 데리고 가서
그에게 하느님의 길을 더 정확히 설명해 주었다.
27 그 뒤에 아폴로가 아카이아로 건너가고 싶어 하자,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그곳의 제자들에게 그를 영접해 달라는 편지를 써 보냈다.
아폴로는 그곳에 이르러,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미 신자가 된 이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28 그가 성경을 바탕으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논증하면서,
공공연히 그리고 확고히 유다인들을 논박하였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23

안티오키아는 바오로를 언제나 지원한 고향 같은 공동체였기에 이곳에 꽤 오래 머물렀다. 바오로는 이곳을 늘 선교의 근거지로 삼는다. “차례로는 바오로 자신이 전에 창립한 지역교회들에 조직적인 사목방문을 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그런데 루카가 바오로의 행선지를 나열하면서 왜 여기서는 16.6과 달리 갈라디아 지방을 프리기아보다 먼저 말하는지 풀리지 않는 문제로 남아 있다.

 

24

알렉산드리아는 기원전 323년에 알렉산더 자신이 이집트에 건립한 도시다. 건립되자마자 이곳은 즉시 거대한 도시로 탈바꿈했다. 훌륭한 박물관과 도서관을 갖춘 이 대도시는 고대 지중해 세계에 학문의 중심지로 자리잡게 되었고, 특히 칠십인역 그리서 성서를 비롯하여 찬란한 헬라 유다계 문학을 꽃피웠다.

 

유다인 필로는 이 문학이 가장 중요한 대변자다. “아폴로가 성서에 능통했다는 묘사는 성서를 바탕으로 유다인들과 격렬한 논쟁을 벌이게 되는 사실로도 증명된다. 아폴로의 이 탁월한 성서해석 능력은 히브리서가 그의 저서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헬라계 유다이즘과 맥을 같이하는 이 서간의 세심하고 유려한 수사학적인 논증들은 대부분 성서해석에서 그 근거를 찾는다.

 

25

서방 사본군은 이 구절 첫 부분을 그가 자기 고향에서 주님의 말씀을 배웠고라고 약간 달리 소개하여 아폴로가 알렉산드리아에서 개종한 사람임을 강조한다. 이런 소개조차 없다면 이집트의 대도시 알렉산드리아에 어떻게 그리스도교가 전파되었는지 설명할 길이 없다. 아폴로는 아직 성령의 세례를 받지 않았지만 예수에 관해 정확하게 가르쳤다. 루카에게 요한의 세례는 언제나 예수와 연결된 성령의 세례를 준비하는 전단계다.

 

26

서방 사본군은 여성의 역할을 낮추기 위해 아퀼라를 브리스킬라보다 앞에 놓는다. 루카는 그들이 아폴로에게 가르친 내용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으나 이야기의 흐름으로 보아 성령의 세례에 관한 가르침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27

아폴로가 아카이아로 건너가려 했다는 기록은 에페소에 이미 유다인 그리스도교로 공동체가 존재했음을 뜻한다.

 

28

성서에 근거한 논증은 이미 바오로가 데살로니카에서 시도한 바 있다. 고린토 공동체가 유다인 회당과 결별했기 때문에 아폴로는 더 이상 그곳에서 유다인들의 비위를 맞추는 일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복음

<아버지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믿었기 때문이다.>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23-2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3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24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25 나는 지금까지 너희에게 이런 것들을 비유로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더 이상 너희에게 비유로 이야기하지 않고
아버지에 관하여 드러내 놓고 너희에게 알려 줄 때가 온다.
26 그날에 너희는 내 이름으로 청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청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27 바로 아버지께서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28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23ㄴ절

예수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의 기쁨과 부활한 그리스도의 현존으로 인해 그들이 번민한 문제나 의심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물론 여기에는 예수로 인해 파견된 협조자의 역할이 함축되어 있다.

 

제자들에 대한 예수의 약속이다. 이 약속은 제자들의 충만된 기쁨에 대한 약속에 직결된다. 제자들이 예수에게 더 물을 필요가 없게 된 이유도 시사된다. 제자들은 직접 아버지께 향할 수 있고 기도 가운데 모든 어둠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자들의 문제나 질문은 아버지께 기도함으로써 받아들여져 풀린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기쁨을 누리는 제자 실존의 상징이요 표지다. “내 이름으로라는 말은 아버지께서 제자들이 예수에게 속해 있음을 고려하신다는 것을 뜻한다. 또는 아들 예수는 아버지와 일치된 행동을 언제나 하기 때문에,“예수를 대신해서라는 의미도 있다.

 

24

제자들이 의기소침과 몰이해 가운데 있던 시간을 가리킨다. 기쁨에 찬 시간과 대조된다.

14.13-14 참조. 여기서는 제자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기도하도록 격려하고 당부하는 의미가 시사된다. 제자들이 이제까지예수의 이름으로기도하지 않았던 것은 예수가 아직 영광스럽게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예수의 이름으로바친 제자들의 실존을 시사한다. 이로 인해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자유로이 청할 수 있고 아버지께서 들어주심으로써 더욱 기쁨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25

예수의 고별담화가 끝나감을 시사한다. “수수께끼로 표현된 예수의 현재적인 말과 분명하게 알려주는예수의 미래적인 말이 우선 대조된다. 대조의 역점은 후자에 있다. 제자들에게 아직도 감추어진 채 표현되는 신비스런 수수께끼 같은 말이 분명하게 두루 알려질 시간이 온다는 것이다. 문맥상 이 일은 협조자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여기서 예수의 역할로 강조된 예수의 지상 계시와 부활 이후에 이해되는 그 계시의 연속성을 말하고자 하는 신학 사상을 반영한다.

 

당시 제자들에게 말한 예수가 이제 들여높여져 현존하면서 신앙공동체에 계시한다는 것이다. , 부활한 예수는 성령 안에서 영적으로 말하고 제자들 즉, 부활한 예수는 성령 안에서 영적으로 말하고 제자들, 곧 신앙공동체는 성령 안에서 영적으로 말하고 제자들. 곧 신앙공동체는 성령이 예수의 복음을 자기들에게 설명해 주는 것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또한 스스로 그 말씀을 다시 선포한다는 것이다.

 

이런 신학적 관점은 금세기에 문제점으로 대두된 이른바 역사상 예수와 신앙상 그리스도의 관계에 대한 물음에 다소나마 해답을 준다. 하지만 그 신학사상적 긴장은 여전하다. 이 구절의 내용은 지상 예수와 신비스런 계시말들이 부활 이후에 명백하게 드러난다는 데 역점이 있고, 지상 예수와 부활한 그리스도의 동일성 관계 문제는 당시에는 낯선 신학적 주제였기 때문이다.

 

26

25절에 언급된 시간”, 곧 예수의 부활 이후를 가리킨다.

예수를 믿고 사랑하는 결속관계를 시사한다.

23-24절 참조. 여기서는 청을 들어준다는 약속의 관점이 아니라 아버지께 직접 청할 수 있다는 관점으로 언급된다.

예수가 제자들을 위해 아버지께 중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27

예수의 중재가 필요하지 않은 이유를 제시한다. 이 말은 그 날에아버지의 충만한 계시가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데도 상응한다.

 

제자들이 예수와 일치된 결속관계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바로 이런 관계 안에서 제자들은 아버지에게 친히 사랑받고 있다는 것이 확실하고 또한 예수의 이름으로아버지께 청할 수 있다는 것이다(15.15-16 참조).

 

28

요한복음의 그리스도론에 따른 그리스도의 전체적인 을 요약한 말로서 예수의 활동들을 신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신적 배경을 제공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문맥상 예수가 아버지께로 간다는 점을 강조한다. 바로 그 아버지께서 친히 제자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은 예수의 이름으로그분께 직접 기도한다는 것이다. 또한 예수가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곧 아버지께로 가는 이고, 그것은 제자들에게 이롭다것도 시사한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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